만화가, 기자, 작가, 어쨌든 마감을 업으로 하는 모든 이들이 이 인터뷰를 읽었으면 좋겠다. 아니, 자기 일에서 어쨌든 프로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으면 좋겠다. 아니, 계속되는 부침 속에 자신의 길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좋겠다. 웹툰 작가로서 독보적일 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5년이 넘게 <마음의 소리> 연재를 이어온 ‘그’ 조석의 성공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내가 나를 대단하게 안 보는 건 운이 너무 좋아서”라며 네이버가 웹툰을 키우려는 시기에 데뷔할 수 있던 천운의 타이밍에 성공의 공을 돌린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성공의 비법이 아니다. 다만 성공이 운에 좌우된다면, 운 외에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치열한 노력 밖에 없다는 명제를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허락된 단 하나의 길은 사실, 정답의 다른 이름이다.
<#10LOGO#> 곧 600회다. (인터뷰는 600회를 앞둔 시점에서 진행되었다) 특집에 대한 압박은 없나.
조석 : 뭐라도 해야지. 예전에 3, 400회 할 때에는 내가 굳이 뭘 해야 해, 라며 괜한 오기에 일부러 아무 것도 아닌 거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거 같아서 500회 땐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게 하려 했다. 이번에도 재밌어 보이는 건 많이 떠오른다. 만화 속 등장인물을 실사로 보여주며 이벤트 만들까도 생각해보고, 특집 영화처럼 좀 빤한 특집 영화 같은 구성도 떠올려봤다. 아니면 600회니까 600컷으로 그려볼까. (웃음)
“<마음의 소리>는 애들이나 보는 거, 그 말이 좋다”
<#10LOGO#> 오기로 안 하다가 최근 하는 건, 스스로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가.
조석 : 그전까진 독자와 싸운다는 마음이 많았다. 어쨌든 만날 뭐라 뭐라 싫은 소리를 하는 건 독자들이니까. 그 땐 마인드가 만화가라기보다는 그냥 인터넷에 글 올리는 유저 정도였던 거 같다. 어떤 계기가 있던 건 아닌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0LOGO#> 이젠 좀 만화가 같나.
조석 : 최대한 그렇게 생각하려 한다. 요즘은 그게 흔하지 않지만, 전에 출판 만화가 중심이었을 땐 도제 시스템에서 배우고 펜으로 선을 잘 써야 하는 그런 정도(正道)가 있었는데 그 반대가 나다. 그런 얘길 많이 듣다보니 괜한 겸손에서라도 누가 ‘만화가 되어서 어떠세요’라고 하면 ‘만화가란 하기엔 부족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선 오래 그리니 만화가 같고, 또 내 만화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화가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맞는 거 같다. 독자들도 전에는 내가 그린 걸 재밌어는 해도 만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고 하다가 이젠 만화로 봐주는 거 같고.
<#10LOGO#> 실제로 좀 더 보편적인 개그 만화가 된 면도 있다. 데뷔 때만 해도 <멋지다 마사루> 등과 비교되는 마니악한 만화였는데.
조석 : 대중적인 방향으로 가겠다고 계산하며 했다면 더 프로 같겠지만 노렸다고 하긴 그렇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귀귀 작가님이랑 이말년 작가님이 나오면서 내 만화가 전체 등급이 된 게 있다. 그분들이 더 마니악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또 소위 ‘병맛’이란 걸로 경쟁하기엔 그 부분에선 그 작가님들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보편적으로 가게 됐다. 내 만화가 ‘우리의 친구 누구’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예전에 아무렇게나 쓰던 ‘새끼’나 ‘지랄하네’ 그런 표현 못 쓰겠다. 사실 전에 군대 관련 에피소드 그릴 때 중대장이 소대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대결 상품으로 사랑의 러브러브 관심증을 주는 장면을 그리며 ‘나쁜 새끼’란 대사를 썼었다. 원래 콘티에선 ‘개새끼’였는데 (웃음)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집이라 네이버 메인에 걸린다고 해서 ‘나쁜 새끼’로 순화한 거였다. 그 때 네이버 만화 쪽에서 회의해서 그래도 ‘새끼’는 아닌 거 같다고 해서 그냥 ‘나쁜...’으로 나갔다. ‘새끼’가 포인트였는데. (웃음)
<#10LOGO#> 그럼 지금은 스스로 검열하나.
조석 : 검열도 검열인데 굳이 험한 말 안 쓰고도 더 재밌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 같다. 욕하고 때리고 그런 게 재밌긴 한데, 내가 거기에 익숙해지면 그 외에 다른 아이디어를 잘 생각 안하게 된다. 가령 전에 머리끄덩이 잡아당기는 것도 많이 그렸는데 거기에 의지하게 되니까 다른 장면으로 그릴 수 있는 걸 간과하게 되더라. 오래 그리다보니 소재나 주제 뿐 아니라 표현도 많이 겹쳐져 고민이 많다.
<#10LOGO#> 그래도 계속 새로운 표현을 만든다. 팔꿈치로 밀어내는 장면 같은 거.
조석 : 다른 만화가 형들이랑 장난치다 나온 표현이다. 아스널 유니폼 정품을 사서 입은 적이 있는데 (김)선권이 형이 만지려는 거다. 마킹이 비닐이 아닌 고무라 자칫 떨어질 거 같은데, 떨어지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 좀 추잡스러운 거 같아서 팔을 뒤로 휘둘렀는데 좀 재밌는 거다. 이걸 만화로 표현하긴 어려운 장면이라 독자들이 알아볼까 했는데 뭔지 알더라. 그런데 이것도 너무 많이 써서 잘 안 쓰려 한다.
<#10LOGO#> 하지만 또 많이 쓰기 때문에 맥락을 이해하게 되는 게 있다. 세계와 캐릭터에 익숙해지며 보편적으로 보게 된다.
조석 : 누군가 나 싫으라고 한 소린데 오히려 난 좋았던 게, <마음의 소리>는 애들이나 보는 거, 라는 말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굉장히 보편적인 거니까. 어느새 여기까지 왔나 싶지. 다만 내 만화 세계와 캐릭터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더 만화적으로 정립을 해서 스테이지를 많이 만들어놓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미리 계보를 만들어놓고 정리했으면 보는 사람들도 확 이해했을 텐데. 594회에선 애봉이 동생이 나오는데 전에 애봉이 동생이 있다는 식으로 정리해놨으면 굳이 설명 안 해도 됐겠지. 그런 게 부족했다.
“독자들에게 쫓기고 쫓기면서 여기까지 왔다”
<#10LOGO#> 처음부터 그런 걸 알았더라면 연재가 지금까지보단 편할 수 있었을까.
조석 : 너무 오래 걸려 배웠지. 기왕 내가 지금 하는 소재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가족 시트콤 구조에 스테이지를 여러 개 둬서 가족 얘기, 회사 얘기, 군대 얘기 같은 걸 하면 좋았겠지. 지금은 이야기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데 만화적 설정이라는 점에선 네모난 공간에 뜬금없이 한 캐릭터가 툭 튀어나오니까.
<#10LOGO#> 아무래도 600회를 다 모아봤을 때 완결성이 부족할 순 있다.
조석 : 네이버에서 일본에 어플리케이션으로 웹툰 서비스를 하더라. 그쪽에는 <마음의 소리>가 13회까지 올라왔는데 보니까 아쉽더라. 여력만 되면 1회부터 다시 그리고 싶다. 그림 문제가 아니라 지금 보니 좀 예스럽다.
<#10LOGO#> 실제로 많이 변했다. 컷 수도 엄청나게 늘었고. 그냥 하다 보니 좋아진 걸까 원래 구현하고 싶던 게 이제야 구현되는 걸까.
조석 : 그냥 그 땐 그런 걸 잘했다. 군대에 있을 땐 이랬다, 하는 농담을 그대로 만화로 그리는 거. 지금까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7, 8번 정도 바뀌었다. 우선 계속 연재하며 살아남기 위해 바뀐 거고, 앞뒤 재지 않고 앞으로 더 나은 걸 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들이 있었다. 계산을 하며 변화했다기보다는 어떤 걸로 하다가 반응 안 좋으면 바꾸고 또 안 좋아지면 또 바꿨다. 기본이 없다보니 독자들에게 쫓기고 쫓기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경우랄까. 내 만화는 말하자면, 부실 공사 때문에 건물에 균열이 왔는데 무너뜨리는 대신 아까워서 시멘트를 바르고 보수해 63층 건물이 된 거다. 밖에서 보면 되게 이상하고 불안하게 생긴 건물.
<#10LOGO#> 부실 공사 얘기를 했는데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도 있지 않았나.
조석 : 정말 끝내려 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내 만화를 재미없다고 하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만 그릴 거야, 다른 거 그리면 되지 했었다. 그런데 이걸 그만두면 난 아무 것도 못할 거 같고 어디서도 날 불러주지 않을 것 같았다. 석 달 너무 괴롭고 밥도 잘 안 먹어서 체중이 십 몇 킬로가 빠졌다. 이게 스트레스구나. 그 땐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비군 훈련을 5일 연속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게 너무 싫은 거다. 훈련 가서 밥 먹고 풀밭에서 쉬면서 이것만 끝나면 너무 좋겠다, 그러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데 너무 바보 같은 거다. (웃음) 뭔 고민을 그렇게 했나. 그냥 내가 열심히 그리면 되는 건데. 왜 이렇게 짧아란 악플이 달리면 컷 수 늘리면 되고, 재미없다고 하면 두 세 편 할 아이디어 넣어서 그리면 되는데 그건 귀찮아서 안 하고 잔머리만 굴린 거다. 그때부터 분량도 늘리고 배경도 그리면서 나아졌다. 그러다보니 이 만화를 그만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5년 채운 거고. 사실은 5년 채우면 정말 한 달 쉬려고 했다. 그런데 5주년 됐을 때 담당자가 단 한 번의 펑크도 마감 지연도 없다는 식의 말을 달아서... (웃음) 이러니 또 쉴 수가 없는 거다.
<#10LOGO#> 그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더 강해진 것 같다.
조석 : 전에는 사람들이 재미없어 하면 하루 종일 머리에 남았다. 당장 반년 전만 해도 재밌을 거라 생각하고 올렸는데 반응이 안 좋아서 반나절 동안 방에만 누워있던 적이 있다. 나름 쇼크를 받은 거다. 요즘은 그냥 거기서 마음을 닫고 다음 화를 준비한다.
“요즘은 뜬금없이 미친 짓 하는 게 안 떠오른다”
<#10LOGO#> 그럼 요즘 다음 화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쓰는 건 뭔가.
조석 : 이야기 주제를 명확하게 잡으려고 한다. 전에는 친구랑 있던 얘기, 엄마 아빠랑 있던 얘기를 막 섞었으면 요즘은 친구랑 목욕탕 갔을 때 있던 얘기 정도로 주제를 선명하게 잡으려 한다.
<#10LOGO#> 그게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그날의 주제 혹은 소재가 바로 보인다.
조석 : 전에는 제목을 재밌게 하고 싶어서 이상하게 지었다. 그런데 내가 벌칙으로 하루 종일 이름을 원빈으로 하는 에피소드를 찾으려는데 그게 몇 화인지 못 찾겠는 거다. 벌칙 관련한 제목도 아니고. 그래서 최근 한 달 전부터는 제목은 제목처럼 짓자고 생각했다.
<#10LOGO#> 주제가 명확해지면서 그리기 용이한 게 있나.
조석 : 시작할 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콘티 짤 때 무슨 얘기를 해야 웃길 것인지 생각하는 것과 어떤 이야기로 출발할까 생각하는 건데 전에는 전자였으면 요즘엔 후자로 간다. 그러면 소재도 더 잘 나오고, 이야기에 일관성이 있으면서 만화가 깔끔해지는 게 있다. 전에 고민이었던 게 만화가 너무 너덜너덜하단 거였다. 애봉이 대사를 치는데 그걸 설명하는 글이 있고 또 그 글을 설명해야 하는 내레이션이 있어야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제를 잡고 쭉 이어나가면 안 그래도 된다.
<#10LOGO#> 그런 게 궁금했다. 스피드 퀴즈 중 ‘노래하기 전에 하는 것?’이란 질문에 ‘JYP’라는 대답이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스피드 퀴즈가 먼저인지 ‘JYP’가 먼저인지.
조석 : 원래는 다른 콘티였다. 군대에서 암구호가 생각 안 나서 ‘JYP’라고 하는 거였다. 이건 이 아이템을 어떻게 써먹을까 하는 경우인데, 만약 스피드 퀴즈부터 생각해서 ‘JYP’가 나오면 로또 맞은 거지.
<#10LOGO#> 그럼 요즘은 스피드 퀴즈부터 생각하는 건가.
조석 : 그렇다. 대신 요즘의 단점은 뜬금없이 미친 짓 하는 게 안 떠오른다. 가령 전에는 여자가 길을 물어볼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춤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게 잘 안 나온다. 또 나를 사람들에게 많이 인식시켜 준 ‘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유행어도 그 땐 많이 생각났는데 요즘은 그 방향으로는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계속해서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 건데, 그게 나은 거 같다.
<#10LOGO#> 그렇게 5년 이상 이어온 것도 대단하지만 마감을 안 늦은 건 정말 대단하다.
조석 : 5년 칼 마감이라고 하지만 그 중 2년 반은 칼 마감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컷도 적었고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도 많았고. 정말 열심히 한 건 그 후 절반 밖에 안 된다. 그 시기 동안 안 늦을 수 있던 건, 우선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몰라서다. 요즘에는 만화 그리는 거 외엔 하는 게 없다.
<#10LOGO#> 다른 재밌는 건 없나. 가령 < World Of Warcraft >(이하 < WOW >)라든가.
조석 : 전에는 재밌었다. 일종의 반비례다. 만화가 재밌을 땐 오락이 재미없고, 오락이 재밌을 땐 만화가 재미없고. 만화가 최고로 재미없을 땐 < WOW >를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이 했다. 전기술사를 키웠는데 오락 중 누가 ‘언더후크 님 안녕하세요, 저번 공성전 때 뵈었어요’ 그러는 거다. 또 친구 퀘스트 도와주러 가는데 레벨 낮은 유저들이 ‘어, 언더후크 님 아니세요’ 이러는 거다. 또 어떨 땐 ‘저희는 이러이러한 공대입니다’라고 귓말이 오더니 술사가 필요하다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너무 많이 했구나 싶어서 끊었다. (웃음) 그런데 요즘은 만화 그리는 게 제일 낫다. 또 요즘처럼 네이버 웹툰에 히트작 많을 때가 없다. <목욕의 신>이나 <패션왕>은 목요웹툰인데도 순위표에 금요일에도, 주말에도 있고. 그거 보면 나도 잘하고 싶다 그런 게 있다.
“전제는 만화를 재밌게 그리는 것”
<#10LOGO#> 말 그대로 요즘처럼 웹툰이 전성기인 시기가 없다. 젊은 창작자들이 이쪽에 많이 모인다.
조석 : 나 때만 해도 만화 잘 그리는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게임회사였고, 웹툰은 실력 안 되는 애들이 하는 거였다. 지금 사람들이 모이는 건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 때문일 거다. 나는 한 달 고료가 2000만 원이라는 소문도 있다. (웃음) 이쪽에 실력 좋은 사람이 모이는 건 장점인데, 단점은 시장이 커지면서 이러이러 해야 연재가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거다. 그러면 자기 생각을 배제하고 남의 생각으로 만화를 만든다. 전에는 그림을 못 그려도 발상이 특이하고 연출이 재밌는 만화가 있었는데 요즘은 다 똑같다. 지금 내게 ‘도전 만화가’에서 재밌는 만화 추천해보라고 하면 없다고 할 거 같다. 웹툰이 다음 단계로 가려면 이걸 깨야 한다. 일종의 사이클이다. 출판 만화가 그랬다. 뜨려면 이런 거 그려야 한다면서 다 똑같아지고 재미없어지고 시장이 무너졌다. 폭력만화가 청소년 망친다고 하는 것도 그 때 출판 만화에서 다 있던 사이클 아닌가. 사실 인터넷 안 해서 무슨 일인지 모르고, 귀귀 작가가 <조선일보> 일면에 나왔다기에 ‘와, 성공했구나’ 이랬는데. (웃음)
<#10LOGO#> 웹툰 불모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재하는 작가로서 이 플랫폼을 지키고 싶단 책임감 같은 건 없나.
조석 : 그런 생각하면 내 만화가 되게 재미없어질 거 같다. 굉장히 이기적으로 혼자 잘 먹고 잘 살 궁리를 하는데 요즘은 딱히 답이 없는 거 같다. 다만 만화를 재밌게 그려야 한다. 내가 사업수단이 있고 천리안이 있어서 만화로 돈 벌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전제는 만화를 재밌게 그려야 한다는 거다.
<#10LOGO#> 만화가로서의 노련함이나 성숙을 느낄 수 있는데, 그와 총기는 반비례할 수 있다.
조석 : 늘 느낀다. 당장 예전에는 그냥 말하듯 그려도 사람들 반응이 좋았는데, 지금은 며칠 쥐어짠 콘티로도 반응이 덜한 것만 봐도 그렇지. 다만 나는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전에는 내 안에 이~만큼 있어서 그걸 쓰며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요만큼 만들어서 요만큼 보여주다가 조금 시간이 날 때마다 뭔가를 더 만들 궁리를 한다. 아무래도 노련해졌으니까 같은 시간 안에 더 할 수 있을 거 같고. 전만큼 총기발랄한 건 무리겠지만 만화가로서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10LOGO#> 다른 만화가들보다 스스로 강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건가.
조석 : 내가 굉장히 독창적이고 그런 건 아니다. 천재라서 척척 이야기가 나오는 과도 아니고. 다만 남들보단 좀 더 성실한 거 같다. 다만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친구들이 밥 한 번 먹자고 해도 난 너무 바쁜 거다. 지금 일을 안 하면 늦으니까. 여자 친구랑 5년 만났는데 어디 놀러 간 게 두 번, 그것도 연애 초반이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일에 있어 시시하게는 안 되는 거 같다.
<#10LOGO#> 남들 많이 하는 트위터도 안 한다.
조석 : 못하겠다. 하도 트위터, 트위터 하기에 열어본 적은 있는데 굳이 내 개인적 일을 이렇게 많이 떠벌려도 될까 싶었다. 트위터로 익살스런 말이나 명언 많이 하고 유쾌한 남자가 되어서 내가 얻을 게 뭔가. 결국 돌아오는 건 트위터 할 시간에 만화나 더 그리라는 말일 텐데. 마감 못 지켰는데 트위터에 글은 올라오고, 마감 못 지켰는데 인터뷰 올라오고, 마감 못 지켰는데 광고 만화 올라오면, 결국 이거 할 시간에 마감하라고 한다. 1번은 만화, 2번이 그 외일 텐데 나는 1번을 하고 나면 2번을 할 여력이 없다.
<#10LOGO#> 경계하는 느낌이다.
조석 : 성격이 그렇다. ‘너 인기 있다, 뜬다’ 할 때도 조심해야겠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수한 건 없나 싶고. 물론 자신을 어필하는 시대이고, 거기에 트위터 같은 도구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 기대게 될까봐 그런 거다. 가령 만화가 재미없어서 사람들이 욕할 때, 트위터에 ‘맞아요, 저는 만화 못 그리는 쓰레기입니다’ 하면서 절하는 사진을 올리면 쿨하다는 반응이 있을 수 있지. 나도 그렇게 해봤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만화가 재미없을 땐 재미없다고 혼나야지 다음에 더 열심히 그리게 된다. 만화를 그려 관심을 받는 만화가 입장에서 트위터 통해서도 관심 받을 수 있고 분명 그쪽이 더 쉽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건 그런 경우 만화가 재미없어지더라. 착각하게 되는 거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잘할 땐 팬이 차츰차츰 계단식으로 늘어난다. 그러다 퀄리티가 떨어지면 어느 순간 쑥 빠져나간다.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말할 즈음에는 이미 복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게 싫다.
<#10LOGO#> 매주 마감이 쉽지 않고, 게으름에 대해 경계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되뇌는 말이 있나.
조석 : 나의 스무 살은 굉장히 어두웠다. 딱히 반항하고 그런 건 없었지만 그냥 미래가 없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어디서 대접도 받는 건 만화를 그려서다. 이게 아니었으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고, 내게서 만화를 빼면 시시한 사람이란 걸 아니까. 그래서 생각한다. 일하니까 힘든 거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힘든 거지. 인기 만화가라고 했을 때, 인기는 남이 주는 거고 만화만 내가 그리는 거니까 그걸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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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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