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만 공개된 것이 원인… “재정마련·정부지원책 확실히 마련해야”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3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한 ‘뉴타운 정비사업 신정책구상’에 대해 시장에서는 “밑그림만 공개돼 되레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공통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은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최대 현안으로 꼽고 3개월간 수십여 차례 토론을 통해 끌어낸 방안으로서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분석이다. 재정마련 여부나 정부지원 등이 확실치 않아 조례개정 과정을 두고봐야 하고 이 과정에서 더욱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먹거리 줄어든 건설사… ‘고분양가·상품저하’ 우려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을 줄곧 지겨본 건설사들은 “이제 더 힘들어졌다”는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분양시장 탓에 그동안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먹거리를 찾아왔는데, 이제는 물량감소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백지화가 가능해져 진행과정에서 돌발변수가 더욱 늘어나고 사업도 지연되며 수익성도 저하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설명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보완이 필요해 정비사업들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억제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낸 만큼 정비사업 물량 감소로 건설사들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물량을 싹쓸이해온 대형사들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매년 조 단위의 일감을 수주해온 상황에서 일감감소는 불가피해졌다. 추진위 단계 이전부터 이미 발을 들여놓고 수주를 위해 열을 올려온 사업장은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현장팀을 통해 이미 홍보활동을 시작한 부분도 있는데다 내부에서도 따로 전략을 꾸려오는 등 예산은 물론 시간, 인적낭비도 우려된다”고 조심스레 언급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지로 사업이 추진되는 사업장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대안으로 꼽힌 마을공동체와 지역경제 활동이 보전되는 마을만들기 등 주거재생사업의 경우 수익을 낼수 있는 규모가 아닌 이유에서다. 공동이용시설이나 집수리비 등으로는 ‘돈 벌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사업진행이 결정된 사업장들의 분양가 상승 우려다. 주택건설전문업체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으로서는 사업축소로 발생한 손실액을 분양가를 통해 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시장에 직접적인 신호를 보내기보다 구체적인 추가대책을 동시에 마련해 시장 혼란을 줄이는게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 역시 “비용부담의 경우 시나 자치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지금처럼 추진의도만을 앞세워 진행할 경우 영세한 세입자들마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기존 방식처럼 대규모 새 아파트로 개발된다 하더라도 사업성 악화로 대형사들이 손을 떼면 경험이 부족한 건설사들만 몰려 주택품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취소지… “주민불만 가중될 수도”
이번 발표안의 직접 대상이 된 사업시행인가 이전단계 610개 구역의 진행과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610개 구역 중 추진위가 구성되지 않은 317개 구역은 토지등소유자의 30%이상 반대시 해제되고 추진위가 구성된 나머지 293개 구역 역시 토지등소유자 10~25% 이상의 반대가 전제될 경우 해제가 가능해지는 이유에서다.
선순위로 꼽히는 사업장은 단연 추진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한 사업장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영등포구 영등포뉴타운의 20개구역과 종로구의 창신·숭인뉴타운 14개구역 등 총 72개에 달한다. 서울시 전체 뉴타운 구역 240여곳 중 3분의 1 규모다.
창신·숭인뉴타운 일대 주민은 “오랜기간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다보니 지금까지 공개된 개발안들에 대한 주민 신뢰도마저 떨어지고 있다”며 “비용처리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된다면 해제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다른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실태조사 등을 통해 사업추진이 결정될 경우 상대적으로 공공지원과 함께 사업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 동의 등을 거쳐 거주자들이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 구역이나 재개발이 크게 필요 없는 곳들은 ‘매몰비용’ 처리를 놓고 다시 고민해야한다.
김규정 부동산114리서치 센터장은 “610개 구역의 구역점검과 조사, 동의 절차 등 시행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시스템과 인력 운영, 해산시 추진위원회의 법정비용 보조방안에 투입될 실비 등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문제된다”고 언급했다. 이어 “조합이 취소된 경우에는 법적근거가 없어 서울시 비용 보조가 없을 것으로 발표됐다”며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서는 정부 지원이 필수적으로 지원과 참여가 없다면 해제 구역들의 불만과 항의, 소송 등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사업시행인가 이후 단계의 사업장은 불확실성 해소라는 호재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관악구 봉천동 봉천제12-2구역, 동대문구 답십리동 답십리제18구역,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7촉진구역 등 총 256개로 해당 지역들은 희소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됐다. 윤지해 부동산114리서치센터 대리는 “향후 투자자들은 정비사업 진행단계에 따라 수익성이 높아지는 구역을 선별하고 단지규모와 입지,교통, 조망권 등 사업완료 이후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를 고려해 투자시기를 고민해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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