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바야흐로 복고 열풍이다. 지난해 누구도 예상 못했던 '써니'의 기록적 흥행은 충무로의 시계를 일제히 20세기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댄싱 퀸'의 시작도 그렇다. 1990년대 초반 서울, 런던 보이즈의 '할렘 디자이어'가 BGM(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가운데 철없는 대학생 황정민과 엄정화는 시위 현장에서 전투 경찰들과 육탄전을 벌인다. 이내 영화는 팍팍한 현실로 넘어간다. 원리원칙을 앞세우는 인권변호사 타이틀을 가진 정민은 실상은 하루하루가 버거운 40대 가장으로 변했고, 왕년의 '신촌마돈나' 정화는 가수 꿈을 접고 평범한 주부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중늙은이가 되어 버린 둘의 삶에 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이 즈음이다. 서울 시장 후보가 된 정민과 드디어 가수로 데뷔할 수 있게 된 정화. '댄싱 퀸'은 거짓말 같은 '판타지'를 경험하는 두 중년남녀의 좌충우돌기를 통해 꿈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유쾌하다. '댄싱 퀸'은 '방과후 옥상' '두 얼굴의 여친'을 연출한 이석훈 감독의 3번째 장편 영화. 설을 맞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가족 대상 영화답다. '댄싱 퀸'은 코미디와 드라마, 웃음과 감동 등 전 연령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투 톱 황정민과 엄정화의 기막힌 캐릭터 연기는 극의 내러티브에 힘을 확실히 싣는다. '모비딕' '부당거래' 등 최근 진지한 사회 고발 영화에만 등장했던 황정민은 두 어깨에 들어간 힘을 확실히 뺀다. 펄펄 나는 황정민은 드라마에 더해 코미디 장르에서도 탁월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의 전사(前史)에서 캐릭터를 가져온 탓에 엄정화는 연기와 실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캐릭터 체화력을 선보인다. 가수가 되려고 죽을 노력을 하는 극 중 정화의 모습에서는 가수 데뷔를 꿈꾸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던 자연인 엄정화가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또 하나, '댄싱 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 3의 주연배우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다. 극 중 부산에서 태어난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아내 단속을 못했다는 이유로 정적에게 공격받는 정민은 누가 봐도 노무현이며, 극 말미 서울 시장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 대회에서 벌어지는 감동적 연설 역시 그와 판박이다. 실제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하고 날카로운 풍자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언론 홍보를 위해 장애아를 발가벗기고 억지로 목욕시키는 여자 정치인이나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 '썩소'가 절로 나온다. 돈 벌기 위한 코미디 상업 영화도 정치와 사회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음을 '댄싱 퀸'은 온 몸으로 입증한다. '댄싱 퀸'은 오랜만에 찾아낸, 영리하고 똘똘한 한국 상업 영화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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