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박차고 가정경영연구소 차린 강학중씨
10여년 전 40대 초반의 한 대기업 사장이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당시 주위사람들은 도저히 그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둘만한 결정적인 사건도 없었고, 그동안 누리던 것들을 한 순간 모두 과감히 버릴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연했다. 퇴직 후 2년 만에 그는 경영과 가정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았다. 현재 그는 가정학 박사다. 연구소를 운영하고 방송과 각종 강연회에 나가며 힘찬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저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인공인 강학중(54) 한국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느리게 살아왔습니다.”
웃으면 반달눈이 되는 인상 좋은 강 소장. 퇴직 후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느냐고 묻자 ‘느리게 살고 있다’면서 활짝 웃는다. “삶을 느리게 산다는 건 그만큼 시간을 버는 일이죠. 저는 연구소를 집근처로 '갖고' 다닙니다. 연구소를 집 가까이 두고 출퇴근 하는 거죠. 시간도 많이 벌고 걸어 다니니까 환경도 깨끗하게 할 수 있어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 평소 하고 싶은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고요.” 그의 사무실은 광화문에 위치해 있다. 얼마 전까지 분당에 집과 사무실을 두고 있었는데 자녀들의 직장 위치 때문에 이참에 모두 종로로 옮겨왔다.
“광화문에 오게 되니 정말 좋아요. 모든 게 집중돼 있어 업무를 보기도 편한데다 시간도 절약되고 심심할 때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읽을 여유도 있어요. 저는 심심할 때 서점에서 책읽기를 즐기곤 합니다. 하하하.” 표정에서 여유와 행복이 느껴진다. 그것들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대기업 사장자리 놓는 것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강 사장은 1997년 12월 31일 약 20년의 직장생활을 접었다. 눈높이 교육으로 알려진 대교 대표이사로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 그만두느냐’ ‘앞으로 뭘 하며 살거냐’며 강 사장의 앞날에 대해 걱정과 함께 궁금증을 쏟아냈다.
“그만두는데 결정적인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어요. 그 자리에 있어보니까 평생 매달릴 가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었어요.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고 연륜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노후 대비인 셈이었죠.”
모든 것을 한 순간 놓는 것이 아깝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아깝지 않았다”고 답했다. “연봉도 적지 않았고 회사에서 기사 딸린 차도 내 주고 골프회원권이며 헬스권도 정기적으로 제공되고 판공비도 나오고 그만하면 괜찮았어요. 아니 너무 괜찮았죠. 그렇지만 그런 기본적인 욕구보다 좀 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더 강했다고 봐요.”
특별한 계획을 세워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가정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만두면 뭘 할 거냐고 물으면 2년 후 대답하겠다고 했어요. 2년 정도면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일·가정 양립 고민하다 적성 맞는 가정경영 본격 공부”
예정대로 그는 2년 후 인생 2막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답을 찾아냈다. 기업에서 경영을 해왔던 경험과 경력을 살리고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던 가정과도 관련된 일을 찾은 것이다. “한 기업의 대표이사의 일이 업무량만 해도 결코 적은일은 아니예요. 당시 전국 400개 지점을 갖고 있었고 직원이 1만5000명이나 됐어요. 기업의 대표로서 직원과 그들의 가족들의 삶을 생각하다 보니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찾게 됐어요. 게다가 저는 책 읽고 글 쓰고 강의하는 일이 제 적성에 맞아요.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하게 된 거죠.”
결심이 서자 그는 대학원에서 가족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한국가정경영연구소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가정경영을 주제로 컨설팅과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점점 가정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TV와 라디오 등 방송출연도 잦아졌고 명성이 높아지자 대한가정학회부회장, 한국가족복지학회 부회장, 건강가족실천운동본부 총재 등 대외적으로 맡게 되는 일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한국사이버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해왔으나 새해부터는 그마저도 정리하고 연구소 일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한다.
강 소장은 가정경영의 개념에 대해 ‘가정을 경영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가족이 경영하는’ 가족경영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조사를 강조하며 헷갈리는 두 용어를 구분했다.
그는 이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도에 맞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선 가족구성원들도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리경영, 투명경영, 지속가능경영 등도 얼마든지 가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기업이 비전 메이킹을 하듯이 우리가정의 5년 후, 10년 후 모습도 그려볼 수 있고 연말에 회사에서 신년 계획을 짜듯이 우리가족 내년엔 어떻게 살까를 구상해볼 수도 있습니다. 고객만족 측면에서 ‘아내가 만약 내 고객이라면?’ 또는 ‘아이들이 내 고객이라면’ 등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강 소장은 특히 가정경영이 은퇴가정에서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은퇴는 누구나 다 하는 일이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안 되거나 준비부족으로 가정불화와 노인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 혼자놀기 잘하면 부부·가족관계 원만”
강 소장은 은퇴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자발성, 은퇴시기, 관계, 가족의 지지, 역할 등을 꼽았다. “은퇴를 자발적으로 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 은퇴자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다릅니다. 은퇴시기도 너무 이르면 힘들고요.”
강 소장은 은퇴가정에 불화가 없으려면 무엇보다 부부관계,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야 된다고 강조한다. “은퇴 준비하면 돈이나 건강과 많이 연결하는데 돈과 건강만이 다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관계’예요. 은퇴 전까진 바깥일이 전부였던 남편이 은퇴 후 집안에서 24시간 짜증내고 애들한테 잔소리 하면 가족이 반갑겠어요? 수입도 줄었는데 잔소리 많아지면 반길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은퇴 전 주위사람들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소 잘 나갈 때 주위사람들을 겸손하게 대하고 특히 부부관계를 좋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는 그것을 ‘부부농사’라고 불렀다.
“남자들을 보면 지나치게 일 중심으로 사는 데 은퇴를 하면 다시 부부관계에 적응을 해야 해요. 부부관계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세요. 평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접대비를 사용하는데 배우자를 위해 투자하고 접대하세요.”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물론 가족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모임도 열심히 나가고 평소 아는 사람들과도 종종 만남을 갖는다. 또한 가족들과는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누고 연극이나 영화 등을 함께 보며 여가 시간을 함께 즐기곤 한다. 최근엔 ‘카카오톡’에서 가족채팅을 하며 가족행사 일정 조율은 물론 가족 간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평소 배우자 또는 자녀들과 좋은 관계는 은퇴 전후 가족들의 지지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강 소장은 은퇴 후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가족의 지지를 얻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퇴 전 가족과의 상의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그도 회사에 사직서를 내기 전 빼먹지 않고 한 일은 가족에게 동의를 구한 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사장의 아내가 아니어도 좋은지, 사장의 아들, 딸이 아니어도 좋은지. 아이들이 아빠가 평소 우리한테 하고 싶은 일하서 살라고 했는데 아빠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대는 안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지지를 받은 거죠. 이런 게 준비입니다.”
강 소장은 더욱 성공적인 인생2막을 위해서는 혼자놀기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평소 혼자 밥도 잘 먹고 영화도 잘 본다고 했다. 심지어 혼자 노래방에 가서 좋아하는 노래도 부른다. 시간이 나면 수시로 메모를 한다고 했다.
“제 인생의 항로에 대해 써봅니다. 내가 내 인생에서 큰 가치를 둬야 하는 부분에 대해 써보죠. 또는 내가 70세가 되면 딸내미 나이가 몇이 되는지 계산도 하구요. 곧 새해니까 내년에 해야 할 일들도 막 써봅니다.”
은퇴 후엔 가정에서나 직업적으로 역할 축소가 일어나는 만큼 그로 인해 위축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여가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여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전엔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어울리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가족단위, 부부단위로 여가를 보내는 추세입니다. 돈으로 사는 여가도 지양해야 합니다. 요즘은 돈을 안들이고도 할 수 있는 여가도 많아요. 다운로드 받아서 영화도 볼 수 있고 산책을 해도 좋고 화초를 기르거나 강아지를 돌보는 일을 해도 좋습니다. 배움이 좋은 이유기도 합니다.”
그는 혼자 잘 놀기 위해서는 의존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의존적이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만약 의존적이라면 평소 혼자노는 연습을 많이 해야합니다.”
가정경영연구소 어떤 곳
교육과 상담, 코칭을 통해 가족 문제를 예방하는 ‘가족문제 예방센터’라 할 수 있다. 병원 경영, 기업경영, 국가경영처럼 어떤 조직이든 경영마인드가 중요하듯 가족 역시 조직의 한 형태로 경영마인들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개념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가정경영을 통해 기업이나 조직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려는 CEO와 경영진, 가정경영 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HRD 담당 임원이나 관리자, 행복한 가정을 소망하는 기혼남성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정경영아카데미를 실시한다. 교육내용은 행복을 부르는 부부농사기술을 비롯해 가족간 대화법, 고부관계 가사분담지혜, 부모자녀관계 개선, 은퇴·노후준비 비결 등이 마련돼 있다. 문의전화 02-733-3447
강학중 소장은 행복한 가정문화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각종 ‘가족’을 주제로 한 행사와 강연회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가족영화제(위)와 맞벌이 남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 소장.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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