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코리아 이끈 강철 아이콘, 박태준(1927~2011)
청조근정훈장수훈···사회장으로 치르기로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조슬기나 기자] 세상 최고의 독종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다.
공사현장에서 틈이 보이는 직원을 발견하면 군화발로 정강이에 피가 터지도록 수도 없이 까고, 들고 다니던 지휘봉이 부러질 때까지 안전모를 쓴 머리를 내리쳤다. 조상이 흘린 피의 대가로 받은 막대한 돈(대일청구권자금)을 들여 짓는 국내 첫 고로 일괄 제철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가혹하리만치 강하게 밀어부쳤어야 했다. 덕분에 포스코는 성장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꼭 그렇게 독하게 했어야 했을까'라는 후회감이 밀려든다. 그 때 같이 일했던 '동지'들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진심어린 심정은 이랬다. 자신은 세계 철강사를 새롭게 쓴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그 대가로 주변 사람들이 겪은 고통은 너무나도 컸다는 점에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다.
지난 13일 고인의 별세 후 공개된 유언에서도 그는 "포스코 창업 1세대 중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가 많아 안타깝다"며 마지막 가는 길까지 동지들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고인에게는 늘 짐이었다. 유언에서 박 명예회장은 부인 장옥자 여사에게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말하고, 가족들에게는 "화목하게 잘 살 것"을 강조했다. 일만 하느라 돈에 욕심 한번 안내고, 한 푼의 재산도 없어 자식들에게 도움 받아 살았을 만큼 청빈한 생활을 한 그였지만, 그렇게 살아온 것 조차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나처럼 살지 말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포항제철소 건설 당시, 직원들이 박 명예회장에게 부쳐준 별명은 '효자사 주지스님'이었다. 근무시간을 더 벌기 위해 효자동에 건설한 사원주택단지인 '효자사'에 집을 얻은 뒤 혼자 생활하는 박 명예회장의 열정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은 별명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다른 어떤 별명보다 직원들이 지어준 '효자사 주지스님'에 많은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미안함을 안고 마지막 길을 떠나는 박 명예회장. 하지만 사죄를 받기보다는 고맙다는 뜻을 전하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 국가와 국민은 고인이 이뤄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고의 예우를 다하기로 했다.
유족측 대변인인 김명전 삼정KPMG 부회장은 14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 명예회장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루기로 정부와 유족측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장례기간은 5일로, 발인은 오는 17일이다. 대전 국립 현충원이 잠정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저명인사가 사망하였을 경우 사회 각계 대표가 자발적으로 모여 사회의 명의로 거행하는 장례의식을 말한다. 국가장 다음으로 예우를 갖춰 거행하는 장례로, 정부에서는 장례절차와 방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으나, 장례비용 중 일부를 보조하거나 고인의 업적을 감안해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국가장과 마찬가지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절차와 방법 및 장지 등을 결정하고 거행하지만 장례의식은 고인의 유언 또는 유가족의 희망에 따르며, 고인이 특정 종교의 신자일 경우 그 종교의식을 영결식에 포함해 거행하기도 한다. 장례위원회는 김남석 행정안전부 제1차관이 빈소를 방문하는 데로 구체적인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고인에게 청조근정훈장(1등급, 구 청조소성훈장)을 수여한다. 근정훈장은 직무에 정려해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채명석 기자 oricms@
조슬기나 기자 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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