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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 영어교사 '나홀로 강의'.."규정 무시,수업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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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김종일 기자] 학생들의 실질적인 영어 소통능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수 천 억원을 들여 시행하고 있는 '원어민 영어회화' 제도가 일부 학교 현장에서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아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당국은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원어민 교사의 수업에 반드시 한국인 교사가 함께 들어가도록 지침을 정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규정을 어기고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원어민 교사가 혼자서 수업을 떠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파행 수업의 현장은 지난달 21~29일까지 본지가 직접 취재한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6학년생 약 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영어회화 수업시간. 교단을 혼자 지키고 선 원어민 A교사(29ㆍ남ㆍ미국인)가 '여기를 보세요' '조용히 하고 수업에 집중하세요'라는 말을 영어로 쉴 새 없이 하지만 말을 듣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영어회화에 관심이 비교적 큰 것으로 보이는 앞 줄의 몇몇 학생만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A교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대부분 떠들거나, 엎드려 자거나, 돌아다니거나, 옆에 앉은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었다. A교사가 떠들고 있는 한 학생을 지목한 뒤 서툰 한국말로 "조용히 하세요"라고 했지만 이 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A교사의 발음이 웃기다는 듯 킥킥거릴 뿐 태도를 바꾸려 하진 않았다.


수업은 A교사 혼자서 자료를 읽다시피 하다 끝났고, 학생들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국인 교사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A교사는 하루에 3~4회씩 배정된 영어회화 수업을 모두 이런 식으로 혼자 진행하고 있었다.


A교사는 "제가 한국말을 하면 어눌해서 학생들이 비웃는다. 영어는 학생들이 잘 못 알아듣고. 이러니 수업 분위기는 엉망이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한국인 선생님과 함께 수업하는 걸로 돼있는데 저 혼자 떠맡다보니 바보가 돼가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A교사는 또 "우리 학교에 원어민 교사가 한 명 더 있는데, 그 선생님도 저와 사정이 같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이 학교에서 일했다는 A교사는 "지금까지 몇 차례 학교 담당자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잠깐 수업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학생들도 회의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수업에 참여했던 6학년 김모군은 "원어민 교사 수업은 한마디로 개판이다. 처음에는 외국인 교사와 수업을 한다고 해서 기대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못 알아들으니까 재미가 없다"면서 "보통 절반 정도는 자거나 딴 짓하고 절반만 수업에 참여한다. 자거나 떠들어도 원어민 교사는 대충 넘어간다"고 했다.


5학년에 재학중인 유모군 역시 "영어회화 수업은 별로 재미가 없다"면서 "어떤 때는 선생님에게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이 똑같이 비효율적이고 난처한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A교사와 이 학교 학생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엄연한 규정 위반이다. 2일 교육 당국에 따르면, 일선 초ㆍ중ㆍ고등학교가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회화 수업을 시킬 때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수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한국인 보조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토록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은 각 교육청 업무규정에 명시돼있고, 원어민 교사와 교육청의 고용 계약도 이를 전제로 이뤄진다. 규정을 어기는 학교는 향후 자금지원 등의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상당수 원어민 교사가 혼자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인 교사들이 원어민 교사의 수업을 '남의 일'로 여기고, 이들의 수업 시간을 밀린 업무를 처리하거나 쉬는 시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게 A교사의 설명이다.


A교사는 "한국인 교사들의 경우 본인의 수업을 준비하기에도 바쁘고, 행정적으로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원어민 교사의 수업을 돕는 데 부담을 많이 느낀다"면서 "그래서 원어민이 진행하는 영어회화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고, 이 시간을 본인의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거나 그냥 휴식시간으로 삼는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다른 학교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본지가 제보를 바탕으로 파악한 결과, A씨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외에 서울 용산구의 B고등학교, 광진구의 C고등학교, 서초구의 D중학교 등에서도 대부분의 원어민 교사 수업이 한국인 교사의 도움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에 확인된 사례에 근거해 문제를 전체 초ㆍ중ㆍ고교로 확대하는 건 신중해야겠지만, 이미 많은 학교에서 이런 현상이 결코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걸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B고교의 한 관계자는 "원어민 교사가 단독 수업을 하는 것은 단지 우리 학교를 포함한 일부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면서 "서울 시내 초ㆍ중ㆍ고교에 비슷한 문제가 만연해있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런 실상은 전해들은 윤석화 원광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큰 틀에서 보면 원어민 영어교육은 매우 중요하다"며 A교사 같은 원어민 교사들의 영어회화 수업이 필수적임을 강조한 뒤 "교육 당국이 철저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조속히 만들어 규정이 반드시 지켜지도록 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원어민 교사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공문이나 편람을 보내고 현장지도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절대 원어민 교사 혼자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꾸준히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 "지원을 받은 대부분의 학교가 성실하게 제도를 운용하는데 일부 학교에서 다소 미비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실적으로 완벽한 관리ㆍ감독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서 제도가 더욱 공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원어민 교사 고용 및 관리에 투입되는 세금은 올해 기준으로 3094억5966만원이다.




김효진 기자 hjn2529@
김종일 기자 live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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