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라샤펠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 160여 점의 작품을 보는 세 가지 키워드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이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21일, 전시 오프닝과 기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의식하고 예의 농담을 던지는 유쾌한 모습이 그의 첫 인상. 라샤펠은 진행된 질의응답에 놀랄 정도의 솔직한 대답을 해주었다. 마음을 열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두 번째 인상. 그리고 그가 깊은 고민과 성찰을 이어오고 있으며, ‘명상’이란 단어를 자주 언급하더라는 것.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세 번째 인상이다.
그날 라샤펠로부터 사진 세계를 향한 그의 열정을, 한국의 관객에게 던지는 당부를 들었다. 그의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라 짐작되는 것들이지만 정리해본다. 데이비드 라샤펠의 전시를 보는 세 가지 키워드.
하나, 그의 사진이 특별하다는 것
라샤펠은 어릴 적부터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그는 이것을 어떤 ‘부름’이 있었다고 했다). 사진을 공부했고, 생계를 잇기 위해 앤디 워홀을 찾아갔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앤디 워홀은 자신이 만든 잡지 <인터뷰>에 그를 소개한다. 데이비드 라샤펠이 패션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보그’ ‘GQ’ ‘롤링스톤’... 패션 잡지와 맺은 인연은 십 년 넘게 지속된다. 운이 좋았고, 감각이 있었으며, 빨리 자리를 잡은 그는 쉬지 않고 일한다. 안젤리나 졸리, 레이디 가가, 우마 서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이클 잭슨, 힐러리 클린턴까지. 많은 셀러브리티들이 그의 피사체가 되었다. 그는 셀러브리티를 촬영했기 때문에, 유명 인물을 촬영할 만큼 실력자이기 때문에 유명했다.
라샤펠은 이 시기를 술회했다. “패션 잡지 일을 하면서 사진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약 15년 간 패션 잡지 일을 했고, 점차 내 작업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 것이다. 패션 잡지 일을 하면서 세계를 다각도로 보게 된 덕분이다. 패션 잡지에서의 일은 일종의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등장인물만으로도 눈에 띈다. 생전의 마이클 잭슨, 알렉산더 맥퀸과 나오미 캠벨을 위시한 당대 최고의 모델들이 있다. 사진은 철저히 계산된 세트에서 촬영되었고, 초현실적이다. 때론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비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사진 속 이미지들은 때론 신비롭고 때론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현실을 기록하되 비평의 시각을 함께 담고 있다는 것’.
라샤펠은 이번 전시를 컨설팅한 이정용 이사의 말처럼 “대중에게 전달력 있는 몇 안 되는 세계적인 작가”다. 관객은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작품들 앞에서 속도를 늦추게 될 것이다.
둘. 그의 코멘트, 내러티브를 읽어라
한창 패션 잡지 일에 열을 올리던 1990년대, 라샤펠은 미국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다. 여기서 미국의 모든 것이란, 미국이 추구하는 본질과 사고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담으려 했다는 얘기. 그의 작품은 작업 초반부터 메시지를 내재하고 있었고, 이것이 그의 사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생전의 마이클 잭슨이다. 그가 대천사 미카엘이 되어 악마를 정복한 모습이다. 그런데 정복자임에도 불구하고 영웅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외로운 전사의 모습에 가깝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우상을 필요로 하다가도 그들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하려는 비뚤어진 쾌락을 가진 대중을 향한 일침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유명한 작품 ‘비너스와 마르스’를 패러디한 것이다. 마르스를 정복하는 미의 여신 비너스가 원작이라면 이것은 마르스에게 정복당하는 비너스를 보여준다.
여기서 좌측 나오미 캠벨은 유럽에 정복당한 아프리카를 상징한다. 유럽에 침탈당한 아프리카를 표현하기 위해 소품 선택에 고심한 라샤펠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사진 속 세 아이는 양이 있는 곳에서 위협적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고, 마르스 옆에는 정복의 부산물로 보이는 황금십자가와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을 연상시키는 낡은 다이아몬드 해골이 뒹굴고 있다. 르네상스 회화에 매료된 라샤펠의 영감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셋. 그의 결행, 전후의 차이를 느껴라
그에게는 2006년이 중요한 시점이다. 패션 잡지를 위한 작업을 모두 내려놓고 무작정 하와이로 건너가 농장을 일구던 해다. 이후의 사진들은 좀 더 조밀한 메시지를 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패션 잡지보다는 갤러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난 일중독이었다. 들어오는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고 수락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경쟁에 실패할까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을 2006년에 그만두었다. 패션 잡지 일을 하지 않기로 했고, 하와이로 가 농장을 일구며 자연 안에 있었다. 자연은 피난처다. 나는 마음의 균형을 찾았다. 그런 삶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돈의 노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할머니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용기를 가져라. 편지의 마지막에 늘 그녀는 이렇게 써 주었다. 나는 정말 용기를 얻었고 삶을 바꿨다.”
그는 이곳에서 앞으로는 갤러리를 통한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을 라샤펠은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표현했다.
위 작품은 1997년에 작업한 것이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데이비드 라샤펠의 작품은 패션 세계나 할리우드 시스템보다 종교적 숭고함과 같은 내면적인 것에 치중한다.
2005년 작품으로 '파괴' '재해'라는 주제를 담았다. 폐허가 된 배경을 뒤로하고, 오뜨꾸뛰르 의상을 입고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이 있다. 이 작품은 물질만능 강박증에 대한 라샤펠의 풍자가 신랄하다. 작가는 말하려는 메시지를 초현실적인 세트 연출과 비현실적인 크기 대비, 강렬한 색채 스펙트럼을 통해 전하고 있다.
여기서 느낄 수 있다. '아름답지 못한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이를 기록하여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이것이 라샤펠이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명작들이 파괴되어 물속에 잠긴 모습이다. 강렬한 이미지 안에 담긴 미술시장을 향한 날선 비판이 읽힌다.
“누군가는 내 작품이 예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관계없다. 나는 글래머, 뷰티, 플래시를 수긍한다. 육체는 상품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써 이것을 조명할 수 있다.” 자신의 작업에 확신을 가진 작가의 단호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라샤펠이 한국 관람객에게 전하는 말이다. “한국에 있는 것이 흥미롭다. 서울(그는 ‘소울 Soul'이라고 했다). 재미있고 기분 좋다. 예측하지 못했던 미래다. 여행을 많이 해 보니 사람은 어디가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알고 예술에 공감한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연결된다. 내 전시를 보는 이들이 일부나마 마음이 동하길 기대한다. 전시를 본 후에 당신에게 어떠한 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러한 전시를 통해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 그러나 가장 큰 전시다. 그의 작품 16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012년 2월 26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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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선 기자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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