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000선생님 병세가 위중하셔서 내년 초 운명하실 것 같아요. 선생님의 작품이 스무점 정도 남았는데 곧 작품 값이 엄청 뛸거에요. 선생님 작품 구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요. 선생님 작품 좋아할 만한 분 계시면 소개해주세요.”
얼마 전 화랑 운영하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000선생은 전통 공예의 명인이다. 선생에게는 제자가 없다. 작업이 너무 고되기에 배우겠다고 제발로 찾아온 이들이 한 달을 채 못넘기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선생도 후계자를 포기한 상태다.
기자도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주제 넘지만 제일 저렴한 작품 하나 구입할까? 그럼 그게 몇 년 후 어떤 우량주보다 확실한 효자가 될텐데’ 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남들은 뭐 적금을 들어 명품 백 산다는데 허리띠 졸라매고 예술품 구입하는 건 좋은 일 이라 합리화했지만, 허리띠 졸라매도 해결 안되는 작품 값을 확인하고는 미련을 버렸다.
비디오 아티스트의 거장 고 백남준 선생을 인터뷰 했을 때 나누었던 얘기가 기억났다. “내 주변사람들은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래. 그래야 작품 값이 오르거든. 예술가는 불행해”라던 백선생은 당시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예술가의 아이러니한 삶에 대해 웃으며 얘기했다.
살아서는 가난하고, 사후에 비로소 존중 받는 이름. 우리가 아는 유명 예술가의 삶은 대부분 그렇다. 최근엔 경제적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사는 예술가도 많다. 그럴 때마다 ‘예술가는 배 고파야 진정성 있다’던 얘기가 중첩된다.
기자는 지난 토요일 ‘팔무전 八舞傳’이라는 무용을 경험했다. 한국 춤의 명인이라 할 수 있는 8명의 명인이 한자리에 선, 기적같은 무대였다. 태평무, 한량무, 승무, 호남 살풀이춤 등 8개의 춤사위가 펼쳐질 때마다 기자의 동공은 커졌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몸짓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싶었다.
공연이 열렸던 장소는 삼성동에 위치한 코우스라는 아주 작은 무대였다. 기자는 공연 보는 내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평소 집 회사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곳이 공연장일 정도로 콘서트, 무용 공연을 좋아한다. 공연장에 가든 안가든 유명 연주자 공연 스케줄은 미리 체크해두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자칭 문화 마니아다.
그런 기자에게 ‘팔무전’ 무대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 준 무대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처음엔 작은 공연장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이 너무 작은 장소에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싶었다. 큰 무대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큰 공연장에서 많은 이들이 감상할 수 있는 무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떠나질 않았다. 작은 무대에 너무 큰 거장들을 모신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늦게 관객이 된 기자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었으리라.
조흥동 - '진쇠춤'
이흥구 -'무산향'
공연이 진행될수록 작은 무대가 너무 다행이라 여겨졌다. 무대와 가까이에 앉아 - 작은 공연장이라 가능한 일이다 - 이토록 위대한 우리 시대 명인의 춤사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공연이 끝나자 조금함이 밀려왔다. 이 분들이 얼마나 더 건강하게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을까? 경솔한 생각이지만 마음이 아려왔다.
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춤꾼의 버선발이 그려낸 아름다운 발자취가 그러하듯.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은 그 순간 사라진다.
그럼에도 이 좋은 공연을 좀 더 큰 무대에서 펼치고, 더 많은 이들이 감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공연 내내 들었다. 오지랖일까?
무대에 선 8인의 춤꾼을 통해 보는 스타일을 엿보는 것도 숨은 재미였다. 구김살 하나 없는 두루마기, 흰 눈 위에 떨어진 동백 꽃잎처럼 다가왔던 흰 장삼과 어깨에 두른 가사. 무대에 선 이들은 평균 연령 70세를 넘긴 분들이었으나 몸짓 하나하나에는 요염함과 에너지가 가득했다.
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춤꾼의 버선발이 그려낸 아름다운 선은 그 순간 빛나고 이내 사라진다. 벽에 걸어두고 볼 수 있는 그림도, 근사한 상자에 보관할 수 있는 조각품도 아니다.
그래서 ‘팔무전’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소비에는 경험과 소유가 있다. 여행, 봉사, 다양한 장르의 예술의 통해서 쌓는 경험적 소비와 물건에 집착하는 소유의 소비가 있다. 무엇을 택하든 자유다. 단, 소비와 경험이 균형을 갖는 스타일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특히 우리 시대 명인의 무대라면 꼭 참석해 박수 보내기를 권한다.
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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