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 타쿠야의 새 드라마 <남극대륙>이 승승장구 중이다. TBS 개국 60주년 기념 드라마로 제작된 <남극대륙>은 기타무라 타이이치의 소설 <남극 월동단 타로 지로의 진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화려한 일족>, < Mr. Brain >으로 이미 기무라 타쿠야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후쿠자와 카츠오가 연출을 맡았고, < Rookies >, <야왕> 등의 각본을 썼던 이즈미 요시히로 또한 참여했다. 완전 사전 제작 드라마로 기획돼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모든 촬영을 마쳤으며, 정확한 제작비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속 드라마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여됐다는 중론이다. 출연진의 위용도 대단하다. 기무라 타쿠야를 선두로 카가와 테루유키, 사카이 마사토, 테라지마 스스무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며, 기무라 타쿠야의 처제 역으로 아야세 하루카가, 기무라 타쿠야의 아내 역으로 나카마 유키에가 출연한다. 최근 일본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역 스타 아시다 마나도 가세했다. 톱스타와 유명 연출가, 탄탄한 원작과 거대한 규모가 만난 대작이다.
10월 16일 1회를 시작으로 현재 4회까지 방영된 <남극대륙>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2시간 5분으로 확대 방영한 첫 회는 시청률 22%를 넘겼다. 첫 회가 시청률 20%를 넘긴 것은 올해 들어 오오사와 타카오 주연의 판타지 사극 < JIN-인- > 이후 두 번째다. 23일 방영된 2회는 19%를 기록했다. 쇼와 3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남극대륙 원정에 도전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남극대륙>은 일본 부흥과 향수로 시청자를 공략한다. 아버지의 못 다한 꿈을 어깨에 짊어진 쿠라모치(기무라 타쿠야)는 실패한 과거를 다시 써줄 주인공이며, 가족 품을 떠나 불모지 남극으로 떠난 원정대는 전쟁의 상처를 위로하는 대체물이다. 전후 역사를 소재로 한 일본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스토리 그대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기타무라 타이이치의 원작에 대체로 충실하면서, <남극대륙>은 냉혹한 현실과 도전에서 시작해 꿈과 미래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감동의 서사극을 그린다.
“침울해진 국민 정서를 독려하는 기획”
명배우들의 호연, 박진감 있는 전개와 규모의 스펙터클에도 불구하고 <남극대륙>은 한국인들이 보기에 불편한 구석이 꽤 많다. 패전 이후의 과제를 반성이 아닌 자위와 부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실패한 전쟁의 역사를 상쇄하고 대체 역사를 쓰려는 시도로 보인다. 심지어 남극으로 향하는 쇄빙선 소야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야마토 전함 설계자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접근불가’ 지역 프린스 해럴드 해안으로 떠나는 원정대의 모습에선 카미가제 특공대의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기무라 타쿠야의 최근 영화 <우주 전함 야마토>가 SF의 세계에서 야마토의 역사를 다시 썼다면, <남극대륙>은 과거로 돌아가 야마토의 실패를 수정한다.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도 지루하다. 기무라 타쿠야의 어깨에 모든 걸 걸고 시작하는 드라마는 주변 인물들을 전형적인 역할에 매어놓는다. 과거엔 친구였지만 이젠 서로 대적하게 된 동료 히무로(사카이 마사토), 관조하는 조언자 호시노 교수(카가와 테루유키), 쿠라모치를 믿고 따르는 순박한 청년 이누즈카(야마모토 유스케)는 주인공 쿠라모치의 대업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만 기능한다.
<남극대륙>의 이야기는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느낌도 짙다. 일본의 문화 평론가 이나마스 타츠오는 “일본의 부흥이라는 중대한 테마를 정면에서 그린다. 침울해진 국민 정서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지금 이 시대에 딱 들어맞는 기획”이라 말했다. 1950년대 패전의 아픔을 상쇄하기 위해 꾸려진 남극 원정대가 2011년 자연 재앙 앞에 무릎 꿇은 일본의 자위대가 된 셈이다. 일부에선 <남극대륙>의 높은 시청률이 반 한류 움직임에서 나왔다는 견해도 있다. 한류 프로그램 편성 집중으로 일본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던 후지TV는 가을 신작 드라마로 김태희 주연의 <나와 스타의 99일>을 편성했다. TBS가 개국 60주년 기념으로 일본 역사 소재의 작품을 집중 제작하고 있는 것과 달리 후지TV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류 드라마 편성의 기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어느새 TBS 대 후지TV의 구도가 형성됐고 이로 인한 이득을 <남극대륙>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재료는 좋다. 패전 이후 남극 원정 도전담은 드라마가 욕심낼 만한 소재다. 단, 지금까지 수많은 일본 블록버스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를 감동과 눈물로 포장하려고만 한다면, <남극대륙>은 그저 화려하고 지루한, 그리고 못된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열도 안에 갇힌 일본 블록버스터. 과연 반전의 날은 올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