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원순, 말문은 텄는데...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8일 국무회의에서 만났다. 박 시장이 지난달 27일 취임한 지 12일 만이다. 이 대통령은 박 시장에게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등 오랜 인연을 과시했지만,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 대통령과 박 시장이 만난 곳은 청와대 세종실. 이날 오전 8시에 시작하는 제47회 국무회의를 앞두고 박 시장은 다른 국무위원들과 마찬가지로 10분 가량 일찍 도착해 환담을 시작했다.
박 시장은 아직 국무회의 참석이 낯선 듯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뒷편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뭇 진지한 표정의 두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 몰두하고 있었다. 김 장관이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무언가 열심히 설명했다.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박 시장도 중간중간 말을 주고 받았다.
그들의 모습만으로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대화가 아닐까 짐작케 했다. 박 시장은 전날인 7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미 FTA 서울시 의견서'를 외교통상부와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 대통령이 입장하기 전까지 5분 이상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김황식 국무총리와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함께 환담장으로 입장해 곧바로 박 시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이 대통령과 박 시장, 김 총리는 나란히 서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서울)시장 때 (박 시장의 시민단체 활동에) 많이 협조했다"고 옛인연을 끄집어냈다. 박 시장은 "네, 맞다. 그때는 자주 뵀다"며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나도 김대중 대통령 때 국무회의에 참석했다"며 야권 출신 박 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너무 어색해하지 말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췄다. 이 대통령은 이어 "노무현 대통령 때 5년은 참석하지 못했다"고 덧붙여 묘한 여운을 남겼다.
박 시장은 지난주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염두에 둔 듯 "(김 총리 주재로 열린) 지난번 국무회의 때 (국무위원들에게) 인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시 자문기구인 '에코카운슬'에 참여해 서울시정에 자문을 했던 이야기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서울시장 시절) 서울숲을 만들 때 박 시장이 애를 많이 썼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 시장은 "그린트러스트(도시숲 만들기 사업) 단체에서 일을 했다. 그때 감사(직)를 했었다"면서 "기회를 주시면 여러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한미 FTA 등 현안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지 않았다. 박 시장도 이 대통령에게 "국정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시냐"는 인삿말을 애써 꺼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현시점에서 주고받아야 할 이야기는 피했다. 대통령과 야권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정책 현안마다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첫 만남부터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듯 했다.
이 대통령과 박 시장은 5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환담을 마치고 국무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곧바로 진행된 국민의례가 끝나자, 박 시장은 이 대통령의 왼쪽 끝부분 좌석에 앉아 회의 안건이 담긴 책자를 펼쳤다. 그가 어색함을 벗어내고, 국무회의에서 합리적인 정책제언으로 조화를 이뤄갈 지 주목된다.
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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