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레반테가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즌 초반이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기록적으로 높은 레반테이기에 사실 그들은 "내려갈 팀은 언젠가는 내려간다"는 공식의 적용을 받을 공산이 매우 크다(3일 간격 경기를 치르고 있는 그들에겐 당장 이번 주말 오사수나 원정도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레반테가 불과 몇 해 전 선수들의 급료조차 장기간 지급하지 못해 파업과 파산으로 몰렸던 클럽임을 고려한다면, 지금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선전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레반테는 아직도 갚아 나아가야 할 빚이 많다. 선수들은 타 구단 유명 스타들의 주급보다도 적은 연봉을 받고 있으며, 구단은 자잘하고 기본적인 돈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잉글랜드에서 1위를 달리는 클럽은 스페인 1위 레반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클럽이다. 레반테가 '이적료 제로'의 선수들로써 경기를 치르고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 시티)가 활용했던 선수들의 이적료는 무려 5천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물론 선수들의 연봉과 각종 혜택, 제반 시설 등의 차이까지 고려하면 맨 시티와 레반테의 차이는 수치적으로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어찌됐건 두 클럽의 유일한 공통점은 각 클럽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시즌 스타트를 끊고 있다는 것일 게다.
레반테와 같은 유형의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현재의 모습은 분명히 인상적이며 살펴 볼 가치가 있다. 특히 경기를 거듭할수록 맨 시티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가 자신이 보유한 선수단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비결을 터득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이러한 결론은 가장 나빴던 경기와 가장 좋았던 경기의 비교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듯이 가장 나빴던 경기는 바이에른 뮌헨 원정(0-2 패), 가장 좋았던 한 판은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6-1 승) 경기다.
두 경기의 가장 큰 구조적인 차이는 사미르 나스리와 제임스 밀너, 에딘 제코와 마리오 발로텔리로부터 비롯된다. 나스리와 제코는 바이에른 뮌헨(이하 바이에른) 전에, 밀너와 발로텔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전에 각각 선발로 기용됐다. (물론 발로텔리는 징계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는 어차피 빠져야 했다. 그러나 그 시기까지만 해도 선발 기용에 있어 제코가 발로텔리를 앞서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변화야말로 만치니의 전술적 선택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선 바이에른 전에서 맨 시티는 프랑크 리베리와 필립 람이 포진한 왼쪽 측면 공격에 지속적으로 휘둘려야 했다. 마이카 리처즈로서는 절정의 컨디션을 달리고 있는 리베리와 람의 콤비네이션을 제어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대답은 미드필드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이 날 맨 시티의 오른쪽이었던 다비드 실바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와의 위치 변경을 통한 유기적인 공격을 창조해내는 일에 주력했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맨 시티에겐 '독'이 됐다. 실바와 아구에로 모두 수비적으로 어정쩡한 상태가 되면서 람을 따라붙는 선수가 없는 상황들이 연출된 것. 바이에른을 상대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실바를 선발에서 제외했어야 할까? 그것은 아니다. 실바는 누가 뭐래도 맨 시티의 가장 재능 있는 공격 선봉장이다. 따라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해야 했던 선수는 나스리였다. 나스리 대신 밀너를 기용해 람과 리베리가 포진한 측면을 맡기고, 실바는 약간이라도 부담이 덜한 반대편에서 뛰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실바가 마음먹고 열심히 수비에 가담할 경우 그는 수비적으로도 결코 나쁜 선수가 아니다. 이는 맨유 전에서도 증명된다.)
바이에른 전에서 '쓴 약'을 먹은 만치니는 맨유 원정에서는 이 교훈을 매우 잘 활용했다. 밀너가 기용되어 맨유의 파트리스 에브라-애쉴리 영 라인을 상대했다. 또한 밀너의 성실한 활동량은 단지 측면 수비에 그치지 않고 중앙의 야야 투레, 개럿 배리에게도 도움이 됐다. 실바는 부담이 덜한 크리스 스몰링 쪽에 위치했다. 밀너는 공격에까지 쏠쏠한 기여를 함으로써 만치니의 선발 라인업을 더욱 더 정당화했다.
아군의 측면 수비를 보호해주는 미드필더의 중요성은 사실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국가대표 팀의 왼쪽 측면 수비가 이영표의 은퇴 이후 계속 문제를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이영표 만큼의 훌륭한 수비수가 출현하지 않고 있는 현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지능적인 도움 수비가 뛰어났던 미드필드의 박지성이 이영표와 더불어 한꺼번에 사라졌기에 더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지성의 적절한 위치 선정과 활동량 등을 되새겨보면 알기 쉽다.
다시 맨 시티 이야기로 넘어와, '슈퍼 마리오'와 '매드 마리오'의 경계를 오가는 발로텔리의 맨유 전 기용 또한 매우 적절했다는 생각이다. 발로텔리가 제코를 능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덕목은 역시 '예측불가능성'이다. 이 예측불가능성이 일상생활에서까지 발현되는 발로텔리이기에 통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만치니가 발로텔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만 있다면 발로텔리의 예측불가능성은 특히 강팀들을 상대로 하는 큰 경기에서 매우 유익하게 작동할 수 있다. 또한 발로텔리는 잘만 북돋워 주면 주변 동료들과의 유기적인 연동에 있어서도 제코보다 더욱 능란할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말해 (상대에 따른 다소간 차이는 있겠으나) 특히 강팀을 상대로 하는 큰 경기라면 수비적으로는 나스리보다는 밀너, 공격 면에서는 제코보다는 발로텔리를 앞세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나스리와 제코가 필요 없는 선수들인 것은 결코 아니다. 상대의 전력, 상대 선수들의 구성과 성향, 경기 상황들에 따라 나스리와 제코 또한 얼마든지 중요한 쓰임새를 지닐 수 있는 까닭이다.
실리주의 성향의 만치니는 통상 약팀들을 화끈하게 공략해 승점을 챙기는 일에 약하다는 비판을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론, 바이에른 전과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실리적이지가 않아서 오히려 문제였다. 그러던 그가 맨유 전에서는 마침내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내며 역사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만치니가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작업에 성공할 수 있다면 맨 시티의 '천문학적 군단'은 더 큰 위력을 지니게 될는지도 모른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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