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준희의 축구세상]주연 아닌 조연이었던 북유럽의 천재

시계아이콘02분 24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한준희의 축구세상]주연 아닌 조연이었던 북유럽의 천재 미카엘 라우드럽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AD


'신체조건 및 힘에 의존하는 북유럽 축구'라는 표현들이 있지만 이는 일반화될 수는 없는 주장이다. 북유럽 선수들 모두를 이와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팀 전체가 '우직한 축구'와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세계 축구사에 있어 이와 같은 가장 극명한 사례가 바로 1980년대 중반의 덴마크일 것이다. 80년대 중반의 덴마크 대표 팀은 그로부터 약 10년 전 요한 크루이프의 '토털풋볼 네덜란드'가 펼쳐 보였던 스타일에 비견될 만한 축구를 구사하고 있었다. 빠르고 화려한 드리블, 물 흐르듯 연결되는 패스 게임, 극단적 공격 성향으로 무장했던 덴마크의 축구는 북유럽 축구에 대한 선입견들을 깨뜨리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덴마크는 유로84 혹은 1986 월드컵에서 심지어 정상을 차지했다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팀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멋진 축구의 중심에 미카엘 라우드럽이 있었다.


더 이전에도 위대한 북유럽 출신 선수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필자의 생각으론 미카엘 라우드럽은 틀림없이 북유럽 축구가 낳은 가장 재능 있는 축구 선수다(지금까지의 모든 북유럽 선수들을 고려해도 그러하다). 특히 그는 현대 축구의 가장 흥미로운 역할이라 할 만한 이른바 '플레이메이커'를 논함에 있어 언제나 몇 손가락 안에 꼽혀야만 하는 인물이다.

라우드럽이 활약했던 시대(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만큼 위대한 플레이메이커들이 많았던 때도 없었다는 생각이다. 브라질에는 지코, 우루과이에는 엔조 프란세스콜리가 있었으며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가 전 유럽에 걸쳐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베른트 슈스터(서독), 게오르게 하지(루마니아), 카를로스 발데라마(콜롬비아), 드라간 스토이코비치(유고슬라비아), 엔조 시포(벨기에), 루드 굴리트(네덜란드)와 같은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들도 대체로 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 그리고 바로 그 사나이,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 해도 좋을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었다. 위대한 플레이메이커들 간의 전쟁, 더 나아가 플레이메이커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의 전쟁이 펼쳐졌던 것도 이 때다.


마라도나만큼의 카리스마, 플라티니만큼의 득점력은 아니었지만 라우드럽 또한 아주 특별한 선수였다. 그는 패스가 투입될 경로와 각도가 별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절묘한 패스를 자주 성공시키는 사나이였으며, 우아한 개인기와 드리블로 상대를 여럿 제쳐내는 일에도 매우 능했다(86 월드컵 우루과이 전에서의 골은 그의 드리블 능력의 '맛보기'에 해당한다). 어쩌면 라우드럽은 지금의 바르셀로나 후배들인 샤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특성을 합쳐놓은 것과도 같은 플레이메이커였는데, 물론 이들보다는 더 공격적인 버전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아함과 다재다능함, 효율성을 겸비했던 라우드럽은 주변으로부터 언제나 최고의 찬사를 받아왔다. 바르셀로나 시절의 동료 호마리우, 레알 시절의 까마득한 후배 라울은 라우드럽을 "함께 뛰어본 선수들 가운데 최고"라 칭했으며, 유벤투스 시절의 동료 플라티니는 "충분히 이기적이지 않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지닌 선수"라 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위의 한 마디야말로 라우드럽의 재능을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베켄바워는 "60년대 최고의 선수는 펠레, 70년대는 크루이프, 80년대는 마라도나, 90년대는 라우드럽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우드럽은 마라도나, 플라티니 같은 '주연'의 이미지보다 '조연'의 이미지를 더 많이 남긴 것이 사실이며, 그 결과 역대 슈퍼스타들의 순번을 나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록에서 실제적인 실력에 비해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우선 라우드럽이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슈퍼클럽들에서 뛰어왔다는 사실도 그의 조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한 몫 했다. 그의 소속 클럽들에는 언제나 많은 골을 터뜨리는 다른 스타들이 존재하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우드럽의 조연 이미지 형성에 더 결정적으로 작용한 요인은 라우드럽이 '매우 중요한 기회'를 잃어버리곤 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80년대 중반 절정기의 덴마크는 결정적인 순간 터져 나오는 실책과 연루되며 커다란 트로피에 접근하지 못하는데, 유로84에서의 4강이 이 당시 덴마크의 최고 업적이다. 그리고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덴마크가 극적으로 메이저 타이틀을 따낸 유로92에는 라우드럽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다. 유로92 못지않게 아쉬움을 자아냈던 또 다른 사건은 바르셀로나 시절의 끝자락에 있던 라우드럽이 1994년의 역사적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참여하지 못한 일이었다. 바르셀로나 감독 요한 크루이프와 라우드럽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황이었고, 이 '드림매치'에서 바르셀로나는 AC밀란에 예상 밖 대패(0-4)를 당한다. 물론 라우드럽이 있었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적장 파비오 카펠로가 "라우드럽을 쓰지 않은 것은 크루이프의 실수"라 지적했던 일은 곱씹을 만하다.


이렇게 라우드럽은 축구사의 이른바 천재들이 종종 그러하듯 이따금씩 주변과의 불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왔고, 비슷한 상황이 최근에 이르러서도 빚어졌다. 얼마 전 라우드럽은 마요르카 대주주 로렌소 세라 페레르와의 불화 끝에 결국 마요르카 감독직을 내던지고 만다. 그는 브뢴비와 헤타페에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드러낸 바 있으나, 이후 두세 시즌 동안의 지도자 생활은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축구사의 천재적 플레이메이커였지만 다소간 합당치 않아 보이는 '조연 이미지'도 지니고 있는 이 사나이가 앞으로 어떠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될지가 매우 궁금하다.


[한준희의 축구세상]주연 아닌 조연이었던 북유럽의 천재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