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국가대표’를 역임하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지구촌 가장 보편적인 스포츠라 해도 과언이 아닌 축구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대표 선수가 되어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은 축구를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다. 대표 선수의 지위는 비할 바 없는 명예와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을 발생시키는 것은 물론, 국제적 지명도와 부의 증가 또한 가져다준다.
최근 잉글랜드에서는 이 국가대표에 관한 한 억세게 인연 없는 두 사나이가 각각 다른 이유들로 인해 뉴스거리를 낳았다. 한 명은 아스널 팬들로 하여금 세스크 파브레가스(바르셀로나)의 빈자리를 일정 부분 메워줄 거라는 희망을 갖게끔 하는 미켈 아르테타요, 다른 한 명은 지도자로 데뷔한 지 몇 개월 만에 ‘예의’ 사고를 쳐버린 파올로 디 카니오다.
프리미어리그 뉴스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우리 언론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에버턴 에이스’ 아르테타의 이적에 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그런데 아르테타가 런던으로 향하고 있을 바로 그 무렵, 4부리그 스윈던 타운의 감독을 맡아 잉글랜드로 돌아왔던 디 카니오는 경기장에서 멱살잡이 수준 이상의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싸움의 상대는 바로 자기 팀 제자인 리온 클라크였는데, 디 카니오의 성품과 그간의 경력을 고려하면 ‘터질 것이 터졌을 뿐’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르테타와 디 카니오는 서로 다른 시기에 스코틀랜드 리그를 잠시 거쳤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결점도 없지만, 선수 경력 상의 두드러진 공통점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단 1초도 그라운드를 밟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예 뽑히지를 않았다. 각각이 소속됐던 대부분 클럽의 서포터들에 의해 오랜 기간 떠받들어져 온 그들의 재능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운 나쁜 결과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아르테타에겐 스페인이 중원의 황금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는 사실이 천추의 한일 것이다. 샤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샤비 알론소, 세스크 파브레가스에다 심지어 최근의 티아고 알칸타라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로 지금의 스페인은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자원의 보고’다. 파브레가스나 다비드 실바와 같은 선수들을 벤치에 앉혀두고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팀은 도대체 흔치가 않다. 이렇게 극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아르테타에게도 한번쯤은 스페인 대표 팀의 부름을 받을 듯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불운하게도 그 당시 그는 부상을 입었다.
아르테타의 ‘대표팀 불운’은 다른 곳에서까지 이어졌다. 스페인과는 판이하게 경기를 조율하고 풀어가는 창조적 유형의 미드필더가 부족한 잉글랜드가 아르테타를 품어줄 둥지로서 강력히 대두됐던 시기가 있었다. 잉글랜드 감독 파비오 카펠로와 아르테타 본인도 진지한 고려를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FIFA(국제축구연맹)의 규정을 세밀하게 검토한 결과, 아르테타의 잉글랜드 대표 선발은 '불가'한 것으로 드러나고 만다.
바르셀로나 B팀 출신 아르테타는 16세 이하 유럽선수권에서 스페인을 대표했던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의 연령별 청소년 대표를 줄곧 역임했었는데, FIFA 규정에 따르면 아르테타는 바로 그 16세 이하 스페인 대표 시절에 이미 잉글랜드(즉, 변경 신청을 하려는 축구협회) 시민권을 지니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결국 아르테타의 잉글랜드 입성도 물 건너갔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올드 팬들을 자극하는 파올로 디 카니오에게도 냉정한 관점에서 당대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았다. 그의 청소년 시절의 친구 로베르토 바지오를 비롯해, 지안프랑코 졸라, 로베르토 만치니, 엔리코 키에사, 주세페 시뇨리로부터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빈첸조 몬텔라와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의 이탈리아는 창조적이고 재간 넘치는 공격 자원이 너무 많아 탈일 정도였다. 따라서 이탈리아는 디 카니오 없이도 얼마든지 탁월한 공격 라인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 카니오가 보유한 ‘마술’을 감안한다면 그에게 단 한 차례의 A매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간 가혹한 일이었다. 이탈리아 대표 팀에 선발됐던 공격수들이 언제나 디 카니오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었던 것도 결코 아니다. 아르테타 만큼의 진지함은 아니었지만 디 카니오 역시도 한 때 잉글랜드 일부 언론으로부터 잉글랜드 대표 가능성 이야기가 회자됐던 바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디 카니오를 외면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디 카니오 자신이 자초한 것이었다. 유벤투스, 밀란 등에 소속됐던 90년대 초중반부터 디 카니오는 전술과 규율을 중요시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명장들과 봉합되기 어려운 충돌을 일으켜왔고 어쩌면 그 당시에 디 카니오는 이탈리아로부터 영구 제외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디 카니오의 선수 경력은 소속 클럽에서의 번뜩이는 플레이 못지않게 각종 말썽과 징계로 점철됐다. ‘FIFA 페어플레이 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파시스트 제스처’로 국제적 물의를 빚는 등,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캐릭터는 근본적으로 국가대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르테타의 아스널 이적, 그리고 또 한 번 사고를 친 디 카니오의 소식을 접하면서 ‘국가대표’라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떠올려본 요즈음이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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