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제2, 3의 간병살인 막으려면
국회 문턱 못넘은 지원법…지난 국회선 폐기도
"기존 복지 성찰·지원법 마련…투트랙 가야"
간병 살인, 패륜, 불효자…. 사건 당시 22살에 불과했던 도현 씨를 따라다녔던 수식어였다. 뇌졸중을 앓는 아버지가 숨질 때까지 방치했다는 이유로 2022년 3월 징역 4년 형을 확정받았던 도현 씨는 형기 만료를 9개월 앞둔 지난 7월 가석방됐다.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나서 "(간병살인 방지를 위한)지원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봄청년을 위한 법안은 없다.
도현 씨의 아버지가 숨진 날은 공교롭게도 어버이날이었다. 2020년 9월13일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혼자 거동은커녕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아버지의 병원비는 대학생인 도현 씨가 평생 만져본 적 없는 몇천만원 단위. 거기에 월세, 공과금, 통신비 등 청구서까지 날아들었다. 도현 씨는 배고픔에 지쳐 삼촌에게 "쌀 사게 2만원만 달라"고 사정한 적도 있었다.
콧줄로 유동식 공급하기, 대·소변 치우기, 욕창 방지를 위해 2시간마다 자세 바꾸기, 마비된 팔다리를 주무르기….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버지 간병에 매달렸다. 2021년 5월8일 간병을 포기한 도현 씨가 일주일 만에 방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숨을 쉬지 않았다.
전태일재단 이사인 전순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에게 전한 도현이의 마음 상태는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현이가 그러더라고요. 아버지에게 죄인이라고요. 또 더 이상 과거의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전태일재단은 도현 씨를 1호 장학생으로 선정해 생활비 등을 지원하며 그의 재기를 돕고 있다.
"지원법만으론 부족…기존 복지도 점검해야 사회안전망 강화할 수 있어"
전 이사는 제2, 제3의 도현 씨가 나오는 것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돌봄청년 지원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에 돌봄을 책임지게 되면 학업을 지속하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갖는 일이 어려워지고 사회적인 발판을 만들기 힘들다"며 "그 영향이 중·노년까지 이어지면 결국 가난이 악순환될 위험이 높다. 사회는 어린 친구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신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복지의 특성상 기존 시스템만으론 사각지대 발견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호자가 연로하거나 중증 질환을 앓게 되면서 아동이 돌봄을 떠맡게 됐는데, 그 아동이 직접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떼고 복지를 신청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복지 자원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을 발굴하거나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별도의 근거 법률을 만들어야 사회안전망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있다. 제22대 국회에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안'을,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돌봄 아동·청소년·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소병철, 강민정, 서영석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에 대한 법률안 3건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돌봄청년 지원법을 만드는 동시에 기존의 사회복지체계를 점검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새로운 법안을 내놓는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현행 복지체계의 부족한 점을 살펴 추가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는 지원법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돌봄 전문가 김모 박사는 "정치인들이 돌봄청년 지원법에 관심 가져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새로운 법안으로 실적을 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보니 돌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이슈성 소비로 끝나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현실 진단이 먼저"라고도 강조했다. 질환·장애로 수발을 요하는 가족이 있는 가정에 대한 국가·지자체의 부양 부담 완화 의무를 밝힌 건강가족기본법과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 어려운 경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동복지법 등만 살펴도 이미 현행 법이 돌봄청년에 대한 지원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제도, 질병 등의 사유로 도움이 필요한 노인에 대한 장기요양제도 등도 마찬가지다.
그는 "돌봄청년에 대한 여러 설문결과를 보면 생계비 지원을 가장 필요로 한다"며 "기초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 등 빈곤 가구에 대한 소득 보장 체계가 이미 마련돼 있는데, 무엇이 잘못돼서 이들이 여전히 생계비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기존 복지체계의 부족한 점을 진단하지 않고는 신생 법안이 나와도 실효성을 내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돌봄청년 현황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돌봄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6%가 본인과 가족을 위한 생계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기사에서는 당사자의 신상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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