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기업시민 ‘자본주의 4.0시대’ 본격 시동
우선 자본주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자 한다. 더 이상 전통적 경제기본 원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던 기업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4.0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기업시민이 중심이 된 새로운 경제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성장이 골자다. 앞으로 이 같은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국가 경제 지탱에 있어 기업의 힘이 커져있는 상황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베풀며 이윤 창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기업이 있다. 괴짜기업 현대모비스의 이야기다.
경제의 기본원리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타고난 장사꾼 기질은 기업 CEO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였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경제논리란 철저히 약육강식 원칙을 바탕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힘은 갈수록 막강해졌고, 기술력 위주의 중소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곳곳에서 문제가 노출됐다. 정부 차원에선 이 같은 현상을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장이란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터이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도 그랬다. 제재는 공산주의자들에게나 어울린다는 투였다. ‘자본주의시장에서…’라고 하면 모든 게 해결됐다. 긍정적인 성과는 분명 거뒀다. 1950년대부터 빠르게 한국경제가 성장했던 이유다. 한강의 기적 이면엔 사회 양극화 심화가 싹트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 자본주의시대는 철저한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한다.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겨 생존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성공이요, 승리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거대한 자본력 앞에 무너졌다는 하소연들은 한낱 패배자들의 핑계에 그쳤다. 기술력이 뛰어나다면 가격 차이쯤은 문제 될 게 없느냐는 거다.
과거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그랬고, 최근까지 자본주의시대를 상징하던 엘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했다. 엘런 그린스펀은 누군가 자본주의시장의 문제점을 물을 때면 이렇게 말했다. “시장은 언제나 옳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자본주의시장의 시장 중심의 경제논리에 약점은 갈수록 큰 문제점을 드러냈다. 엘런 그린스펀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자신의 논리가 잘못됐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때부터다. 전통적 자본주의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율성보다 정부 차원의 개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질 대로 커진 기업의 힘 앞에 정부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긴 힘들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기업의 힘은 정부 정책보다 강력하다.
올해 들어 세계 각국에선 다양한 형태의 시위가 발생했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주화 혁명이 들불처럼 일었고, 영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들끓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도 플래시 몹 형태의 폭동이 있었다. 노르웨이에선 외국인 혐오증을 가진 근본주의자의 테러까지 일어났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에서도 젊은이들의 폭동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큰 연관이 없는 사안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이 있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다. 아무리 많은 정부 정책이 쏟아진다고 해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 여러 지역에서 여러 형태의 테러와 폭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문제의 골이 점차 깊어지다 보니 전통적 자본주의는 새로운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치열한 자본주의가 아닌 따뜻한 자본주의로의 진화다. 이것이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른 자본주의 4.0이다.
자본주의 4.0은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의 저서인 <자본주의 4.0>에서 처음 사용된 말로 함께 성장을 추구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동반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기업 중심의 동반성장이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기업이 기업시민정신을 발휘해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워렌 버핏이 부자 증세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전통적 자본주의가 성장과 부를 취득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진화한 자본주의 4.0은 부를 취득함과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책임을 외면할 수 있지만 지속성장을 위해선 꼭 기업시민의식은 앞으로 기업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함께, 따로 또 같이’ 전략
이런 의미에서 현대모비스의 괴짜경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약육강식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성공할 수 잇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베풀며 동반성장을 통해 이윤 창출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다. 글로벌 톱10 기업으로 성장했다. 혹자는 모기업인 현대차그룹의 물심양면 지원에 성장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발판으로 성장을 했던 게 사실이다. 현대모비스의 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인 만큼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현대모비스가 중소기업과 협업을 바탕으로 상생을 꾀하며 성장해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상은 오리를 보고 십리를 간다고 한다. CEO는 시야를 넓게 갖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모비스는 ‘동반성장’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남들보다 먼저 읽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협력업체에 지원을 하면 할수록 더 높은 품질로 그들이 화답해 줄 것이라고 믿었고 이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협력업체의 수는 총 1000여 곳. 협력업체들의 경영환경 개선이 궁극적으로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쉽지는 않았다. 현대모비스는 협력업체들의 수출 지원, 유동적 자금 지원, 정보와 문화교류 등을 통해 동반성장이란 문화를 만들었다. 사명이 바뀌기 전인 현대정공시절부터다.
보스를 내세운 조직이 아닌 보스 없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함께, 따로 또 같이’란 슬로건을 내세웠고, 실행에 옮겼다. 보스가 없으니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다. 중소업체라고 해도 경영전략의 중심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주인이 없지만 주인의식은 갈수록 강화됐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이 같은 기업경영전략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점을 보완하며 현재는 완벽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현대모비스의 중소 협력업체 중 한 곳인 김용길 한국베랄(주) 대표는 “(현대모비스)동반성장 정책이 회사의 운영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어 동반 발전을 위해 우리도 더욱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에 따른 현금지원, 수출 길 개척을 위한 해외 로드쇼 등이 큰 힘이 됐다는 설명이다.
사례로 보면 이해가 쉽다. 현대모비스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 톱 10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협력업체의 경쟁력 확대를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수출 확대 지원 등을 통해 글로벌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협력업체가 성장하면 할수록 부품을 공급받는 기업의 위상도 덩달아 오른다는 데 주목했다. 동반성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할 수 있다는 CEO의 경영철학이 바탕이 됐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6월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피아트를 방문, 현지 자동차 부품 구매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국내 우수 부품 협력사의 기술력을 알리는 ‘부품 해외 로드쇼-피아트 테크 페어(이하 로드쇼)’를 개최한 바 있다. 국내 우수 부품 협력사의 부품 전시회 및 관련 회의 장을 마련한 했다.
로드쇼에 참가한 협력사는 총 11곳. 170여 가지 자동차 부품이 전시, 피아트 관계자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행사에 참석한 지아니 코다 (Gianni Coda) 피아트그룹 구매총괄사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현대기아차를 통해 품질과 기술력을 검증하는 한국산 자동차 부품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한국 자동차 부품사와의 교류를 확대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의 로드쇼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진행, 크라이슬러 등과 같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협력업체의 납품을 성사시켰다. 수주 실적은 무려 7억6000만달러(한화 약 8600억원)에 달한다.
이준형 현대모비스 해외사업본부장은 “부품 협력사들이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경쟁 관계에 있는 세계 유수 자동차업체로 판로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다양한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사후관리 ‘기술시험센터’무료 개방
해외 진출에 성공한 협력업체에 대한 사후 관리는 더욱 철저하다. 부품의 품질 확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시작보다 꾸준한 관리가 중요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는 현대모비스다. 같은 자동차 부품업체로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몸소 터득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현대모비스는 세계 각국에 있는 기술시험 센터를 무료로 개방해 협력업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모비스는 중국에 세계적 수준의 최첨단 장비를 갖춘 기술시험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내 생산물량의 품질시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중소기업에게 기술시험센터는 그림의 떡이다. 고가의 장비가 많이 필요한 만큼 비용 부담이 많다. 한 번씩 테스트를 위한 사용료도 비싸다. 현대모비스는 이 같은 점에 착안,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무료 개방을 실시했다. 다음은 권태봉 현대모비스 상해법인장의 말이다.
“자체적인 시험 장비를 갖추지 못한 중소 협력업체들은 전자시험실·재료시험실·측정실·내구시험실·성능시험실 등 각종 시험실과 140여 종에 이르는 최첨단 시험 장비를 갖춘 현대모비스의 기술시험센터에서 품질시험 및 인증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기술시험센터에서 진행된 시험은 1만 건. 절반은 협력업체들이 사용한 실적이다. 덕분에 협력업체들은 현지 생산부품 품질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모비스 입장에선 사용료를 받아 이윤을 높일 수 있었지만 무료개방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품질 경쟁력이란 결실을 얻었다. 실제 중국내 현대모비스 제품의 품질력에 대한 인지도는 나날이 상승세를 보인다.
현대모비스가 신경 쓰고 지원하는 또 다른 분야는 협력업체와 정보공유와 문화교류다. 전자 조달정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부품 협력업체와 발주·납품 등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투명하고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하다.
협력업체들이 PMI(Partner Managed Inventory)를 통해 현대모비스의 재고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것도 특징. 불필요한 업무 프로세스와 낭비를 제거해 공급시스템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중간단계 없이 재고관리를 협력업체가 직접 실시함으로써 협력업체들은 수요예측, 생산계획, 발주업무 등도 가능하다.
2, 3차 협력사까지 ‘기업 시민의식’ 전파 나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기업시민의식에 대한 전파다. 현대모비스는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을 1차 협력사에서 2ㆍ3차 협력사로도 넓히는 중이다. 보다 폭넓은 기업시민의식을 전파하고 있다는 셈. 2ㆍ3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우수협력사 벤치마킹(이하 벤치마킹)’과 세미나 등을 잇달아 개최하며 협력사들의 실질적인 업무능력과 생산성 및 품질 향상 등에 집중하고 있다.
1차 협력업체에 2ㆍ3차 협력업체 직원을 초청, 현장개선을 통한 품질향상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것이다. 2ㆍ3차 협력업체인 우제남 노엔텍 사장은 “벤치마킹으로 원자재 관리에서부터 공정ㆍ생산ㆍ품질 관리에 이르기까지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1차, 2차, 3차 할 것 없이 좋은 것은 함께 나눠 동반성장을 꾀하자는 것이 모비스적인 생각이다.
김순화 현대모비스 부사장은 “1차 협력업체는 물론 2ㆍ3차 협력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술 및 품질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해외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협력사와 함께 기술 전시회를 개최하여 협력사들의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협력사 수출지원 · 기술컨설팅 · 상생협력자금 지원 · 정보공유 및 문화교류 등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현대모비스는 최근 더욱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상생 활동을 진행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 운영할 계획이다.
단종 차량 부품업체 고객도 특별관리
멀쩡한 제품인데 부품 하나 때문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새로운 제품을 사야한다. 부품만 교체하면 되지만 구할 길이 없다. 제품이 단종되면서 부품업체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단종된 후에도 생산업체는 필요 부품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PDP·LCD TV, 냉장고,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는 국내 대형 가전업체의 일이다. 소비자 불만이 늘고 있는 지금, 현대모비스의 전략을 벤치마킹 하는 것은 어떨까.
자동차 업계에서도 단종에 따른 부품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 고물상을 뒤지는 일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듣는다. 현대모비스는 이 같은 점에 주목, 단종된 차량의 부품을 공급하는 납품 업체에 대한 특별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단종에 따른 생산량 하락으로 협력업체의 도산을 막기 위한 일환에서다. 정밀한 비용계산으로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심하게 마모되거나 분실한 금형을 새로 제작하는 비용을 지원한다.
또 협력업체가 소량의 품목을 생산해 공급할 경우, 단순 개별 원가기준이 아닌 적정 양산수량을 고려한 일정비율의 생산관리비까지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 지원에 힘입어 관련 협력업체들의 생산 관리 여건이 크게 개선됐고 단종된 차량 운전자의 불편함도 최소화 됐다는 평가다.
김순화 현대모비스 부사장은 “협력사들의 생산 및 관리여건을 향상시키는 지원책을 통해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단산차종의 일반 고객들도 관련 보수용 부품을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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