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이 많이 들어도 90%에 가까운 자체 제작 편성이란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tvN이 케이블 채널에서 나아가 방송, 온라인, 모바일 등을 통해 확장되는 콘텐츠 허브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열린 < tvN 개국 5주년 간담회 >에서 이덕재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tvN이 투자할 제작비의 규모는 약 1,200억원. 그야말로 ‘콘텐츠 공룡’이라 할 만하다. 스타급 예능 PD들을 대거 영입해 ‘예능 왕국의 재건’을 외치는 jTBC, 그리고 TV조선과 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 또한 개국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오락 전문’을 표방하는 채널들은 각각 어떤 전략들을 마련해 놓고 있을까. 덩치를 키워 정면돌파 할 것인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계속 고수할 것인가. MBC 에브리원부터 코미디 TV까지, 그들의 전략과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을 정리해보았다.
MBC 에브리원, 장르의 다양화
tvN 정도의 매머드급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배치할 생각은 아직 없다. 규모보다 질에 집중하되, 다양성은 높이겠다는 의미다. 오는 12월 윤성호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30분물 10부작 시트콤으로 편성되고, 후에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범위를 드라마까지 넓힐 예정이다. 더불어 MBC 프로그램들의 스핀오프 제작, 콘텐츠 교류 등도 본사와 협의 중이다.
대표 프로그램: <주간 아이돌>
“원래는 한 아이돌 그룹이 주축이 되는 포맷을 기획했지만, 요즘 아이돌들이 너무 바빠 콘텐츠에 맞는 분들을 섭외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할 수는 있겠지만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아예 아이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게 됐다. 어디까지나 기획의 완성도에 포커스를 두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적은 것 같다.” (장재혁 제작팀장) 카라도 소녀시대도, 섭외하지 못하면 CG로 그려 넣는다. 게다가 ‘티아라 숙소에 일본어 과외 선생님 입주’ 같은 뉴스를 전해주고, ‘실물이 가장 예쁜 아이돌 BEST 5’를 아이돌 멤버들의 손으로 뽑게 한다. 엠블랙의 양승호처럼 독특한 특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돌은 그 실력을 직접 뽐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아이돌의, 아이돌을 위한, 아이돌에 의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그 속에서 맨발로 전화번호부 넘기기, 얼굴에 스타킹 쓰기 등의 미션을 수행하며 굴욕을 당하는 건 당연히 MC인 정형돈과 데프콘의 몫이다. 하얗고 휑한 세트장에 의자 두 개만 있어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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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채널, tvN 수준의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로
장기적인 목표는 tvN 같은 비교적 안정적인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이다. 이를 위해 매년 전년도 제작비의 100% 이상을 인상하는 등 손해를 보더라도 당분간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작비 규모로 공중파를 따라잡기는 힘들기 때문에, 공중파에서 다루기 어려운 소재와 포맷을 가지고 가되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시도하는 중이다.
대표 프로그램: <여제>
“<여제>는 ‘화류계’라는 소재를 다루는 만큼 공중파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다. 2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해, 예전에 방영됐던 E채널의 드라마들보다 훨씬 더 규모를 키우고 질을 높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만 시청자층의 연령대가 다소 높기 때문에, 앞으로는 tvN처럼 좀 더 영(Young)한 작품들을 제작할 예정이다.” (편성담당 김정석) 가난한 집안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교수와의 성추문에 억울하게 휩싸이더니 급기야는 빚 때문에 화류계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여대생 서인화(장신영)는 결국 화류계의 여제가 되어,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출세를 택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여제>의 내용은 자극적인 클리셰들로 뒤덮여 있지만, 약 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써는 선전 중이다. E채널 측은 “드라마 만큼 채널 호응도를 높일 수 있는 콘텐츠는 없다”는 믿음을 갖고, 채널 자체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파이프라인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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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JOY, 온가족이 함께 봐도 좋은 채널
자극적인 것,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는 배제하고 온 가족이 봤을 때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채널을 지향한다. KBS의 콘텐츠들을 활용하며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1월 중 버라이어티와 퀴즈를 결합한 색다른 포맷의 쇼가 방영될 예정으로, 이는 채널 전체 시청자 연령대의 균형을 위해 2, 30대 남녀를 타겟으로 한다.
대표 프로그램: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스핀오프 개념으로 만들어져 넓은 시청자층을 수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같은 계열사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획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핀오프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색다른 포맷을 개발해 다른 채널과는 다르게 간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홍보팀 최현미 차장) 기다란 드레스를 바닥에 드리우고 조근 조근 큐시트를 읽어 내려가던 이소라의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됐던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현재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변화했지만, 대신 KBS JOY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무대 사이에 토크가 들어가는 형식은 변함이 없으며, 김현중, 박재범 등 아이돌부터 옥상달빛, 몽니 등 인디 뮤지션과 한대수, 김창완 밴드 등 거장들까지 고루 출연한다. 독특하거나 새로운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소라가 음악을 듣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기분 좋게 깔깔 웃는 모습을 다시 매주 볼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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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 트렌드를 선도하는 채널
11월 1일 개편과 함께 ‘Love, Trend, Difference’를 채널 키워드로 삼는다. 지금까지는 SBS플러스와 혼용되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생방송 일일 연예뉴스 < K-STAR news >와 리얼 러브 다큐멘터리 <가면 무도회>, 리얼리티 힐링 버라이어티 <시간여행 메모리> 등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들이 E! 채널을 좋아할 수 있는 것들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대표 프로그램: <컬투쇼>
“SBS만의 색다른 코미디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두 시 탈출 컬투쇼>가 2, 30대에게 워낙 인기가 많기도 했고 비디오로 봐도 재미가 있을 것 같아 기획하게 됐다. 초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정미 편성 PD) 사실 <컬투쇼>가 SBS E! 채널의 정체성을 잘 담은 프로그램이라고 하긴 어렵다. 단지 E! 채널이 기존의 인기 콘텐츠를 다른 포맷으로 유통시키는 창구로써도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검증된 콘텐츠를 적은 비용으로 재생산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동방신기의 새 앨범 안에 든 멤버들의 사진을 보고 “CD 안에 자기 딱지를 넣어놨어요. 마술카드입니까? (김태균을 향해) 유노윤호로 변신!”이라고 외치는 정찬우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동방신기의 표정 같은 건, 듣기만 할 때보다 TV로 볼 때 더 큰 재미가 있는 법이니까. 사연을 읽는 중 나오는 컬투의 불꽃연기를 ‘보이는 라디오’와 비교도 안 되는 고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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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TV, 물량공세보다 유니크함으로
tvN이나 종편 채널들이 제작비를 지상파 수준으로 맞추는 것과 달리, 코미디TV는 타겟에 맞는 콘텐츠를 찾고, 그것이 굉장히 유니크하다면 성공이라는 전략으로 나아간다. 아직까지는 구매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지만, 섣불리 물량공세를 하는 것보다 <기막힌 외출>이 긴 시즌 동안 방영되며 인기를 끈 것처럼 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예정이다.
대표 프로그램: <얼짱시대>
“일반적으로 오락채널에는 3, 40대 시청자들이 많이 몰리는데, <얼짱시대>는 10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방학시즌에만 방영한다. 미리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자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40대 시청자들도 많은 편이다. 다른 채널에서는 쫓아올 수 없는 코미디TV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CU미디어 편성기획국 채널마케팅팀 유병탁 팀장) 여장을 하고 지하철에 탑승해 한 할머니로부터 “시집 가도 돼. 첫날밤에 쫓겨나지만 않으면 돼”라는 이야기를 듣는 남자 얼짱이나, 연탄집게를 “허벅지를 지지는 데 쓰는 인두”로 착각하는 다른 얼짱의 모습은 <얼짱시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이다. 인터넷에서 10대들 사이의 연예인급인 ‘얼짱’들의 얼굴을 실제에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이들의 엉뚱한 매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이 시청자를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2차원에 머물렀던 그들을 3차원의 영역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곧 방송될 여섯 번째 시즌은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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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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