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도 쩔쩔매는 '대학 숙제'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 박은희 기자]내우외환(內憂外患), 현재 우리 대학들이 처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우선 대외적으로 체면이 갈수록 구겨지고 있다. 대학들은 올해 내내 등록금 문제와 감사원 감사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이 17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전체 적립금의 32%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적립금 2097억 원을 조성했다"며 "요즘처럼 대학이 사회적 비난을 받은 적도 드물지만 대학이 사회 발전에 큰 몫을 하는 만큼 지켜봐달라"고 호소할 정도다.
속앓이도 점점 심해져 환부가 곪아버릴 지경이다. 법인화와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커다란 내부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법인화 수순을 밟고 있는 서울대와 지난해부터 꾸준히 구조조정을 해 '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앙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7일 이들 두 대학에서 나란히 법인화와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토론의 장이 열렸으나 갈등을 재확인한 것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돌파구는 요원하다. 두 대학에서 흘러나오는 심각한 잡음은 2011년 가을을 지나는 우리 대학들의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법인화 앞둔 서울대 공청회 끝내 무산= 법인화 문제로 대학본부 점거와 학생징계 사태까지 갔던 서울대는 17일 오후 2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준비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으나 학생들의 항의로 파행을 겪었다. 불만과 우려가 폭발한 탓이다.
이지윤(24)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이 자리에 참석해 법인화법 폐지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공청회 무효를 주장했다. 그는 "학생회는 학생 총투표를 통해 법인화법 추진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며 "단순히 보여주기용 요식행위인 공청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어 20여명의 학생들은 공청회 단상을 점거하고 법인화 추진과정과 법인화법 자체에 대해 문제점을 성토했다.
학생들은 "바뀔 여지가 없는 것을 왜 논의하자는 것이냐"며 학교 측을 비난했고, 사회를 맡았던 이준규 사회대 교수와 기타 공청회 참석 교수들이 대화로 풀어보자고 설득했지만 학생들의 원성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아로미(23) 인문대 학생회장은 "국공립대 구조조정, 대학 퇴출 등 대학이 기업화 잣대로 재단되는 상황에서 수익사업 등을 허용하는 서울대 법인화는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생회 임원은 "교육을 시장에 맡겨도 되는가"라고 반문하며 "기업에서 쓰는 말인 정관을 학교에서 만들겠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갑수 공대위(국립대법인화저지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인문대 서양사학과 교수)은 "기초학문 붕괴를 막기 위해 부흥위원회를 만들었다는데 이는 법인설립준비실행위 스스로 기초학문 붕괴의 위험성을 인정한 셈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의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공청회 시작 1시간 여만인 3시8분께 사회자인 이준규 교수가 더 이상의 진행은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참석 교수들은 일제히 자리를 떴다. 내년 1월 법인 출범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학내 갈등이 마무리되지 않는 모양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서울대 법인설립준비실행위 주관으로 지난 12일 발표한 법인정관 초안과 주요 쟁점사항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보고, 패널토론, 질의응답 등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공청회가 무산된 후, 박명진 부총장은 "일부 학생들과 직원들의 물리적 방해로 공청회가 무산돼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20일 오후 2시 다시 공청회를 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공대위는 17일 오후 서울대 문화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 법인화법은 국회 처리과정이 파행적이었을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지난달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원고인단 1356명을 모집해 왔다.
◆구조조정 둘러싼 갈등 끝나지 않는 중앙대 = 지난해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해 이목을 끈 중앙대 역시 안팎으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중앙대 '원탁회의 준비위원회'는 17일 오후 6시 학교 정문 앞에서 '200 중앙인 원탁회의' 토론회를 개최하고, 학교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원탁회의' 기획단장 김창인(22)씨는 "학교에서는 구조조정이 다 끝난 것처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2018년까지 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미 독어학과, 불어학과가 폐지됐고 이번 2학기에는 가정교육과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기존 18개 단과 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대학, 46개 학과로 개편하는 작업에서 대규모 통폐합은 예견된 일"이라며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서 학교 측을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또 대학이 교육의 공공성을 저버린 기업화의 길로 가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앞서 중앙대는 지난해 한강대교와 교내 신축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고공시위를 벌인 학생 3명을 징계하는 등 구조조정 문제를 둘러싼 학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 역시 학교 측에서는 '중간고사 준비기간에 면학 분위기를 저해할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학교 정문 앞 잔디밭 사용을 불허했으나, 학생들이 이를 강행해 토론회 초반 학생과 교직원 간의 마찰을 빚었다. 토론회가 진행되는 잔디밭 한편에서는 토론회를 반대하는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등 학생 간 갈등도 눈에 띄었다.
중앙대 측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계획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학 관계자는 "2012년까지 학문단위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세상이 원하는 학과는 만들고, 시대에 뒤처지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는 과감하게 정리해 대학경쟁력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미 기자 ysm1250@
박은희 기자 lomo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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