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나라가 중병에 들기 시작할 무렵, 이를 미리 간파한 현학자들의 경고가 있었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가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임진왜란(1592)이 발생하기 20년 전 이미 조선의 경제를 걱정하며 선조에게 6가지 상소문을 올렸다. 의진시폐소(擬陳時弊疏)라 불리는 이 상소문에서 그는 서민층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고 왕실 재정의 긴축과 부유층의 세 부담을 강화하는 '손상익하(損上益下)' 정책을 주장하였다. 요즘 말로 바꾸면 '친서민 정책'과 '부자 증세'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 가진 자 중 세금 부담을 좋아하는 자가 없듯 선조나 집권세력이 율곡의 '10만 양병설'에 동의했을지라도 이를 감당할 만한 재원이 없어 포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뒤 참혹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 왕실은 물론 서민들까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게 된다.
이처럼 세금 제도가 잘못되면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 존망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은 비단 조선의 사례뿐만은 아니다. 최근 레이건과 부시 정권의 감세 정책으로 부채가 증가되고 결국 국가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치욕을 맛보고 있는 미국이 그 좋은 사례다.
이명박(MB)정부는 '감세 정책'과 '작은 정부 구현'을 내세워 집권했다. 사실 감세 정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경제위기 때 '한시적'으로 기업이나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면 이는 고용과 수요 창출로 이어져 국가 전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 지출 감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의 건전한 재정 상태가 유지될 수 있으며 경제 불황을 넘길 수 있는 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B정부의 감세 정책은 한시적이 아니라 임기 내내 시행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경험칙상 감세 정책으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만일 부유층이 감세 정책을 통해 줄어든 세금으로 은행 빚을 갚는다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부유층 납세자의 은행 빚 갚는 데 도와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고 부시의 감세 정책을 지지했던 앨런 그린스펀의 '감세정책 지지 철회'나 세계 최대 갑부 중 한 사람인 워런 버핏의 '부자증세 주장'을 보면 장기적인 감세 정책의 지속이야말로 국가 재정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감세 정책이 성공하려면 작은 정부 구현 등 국가재정 지출을 감세한 금액만큼 확실하게 줄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게 가능한가. 미안하지만 북한 때문에 그럴 여건이 못 된다. 우리나라는 국방비 등 경직성 경비가 정부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나마 여분이 있는 것은 4대강 사업으로 다 가버렸다. 그러니 백령도나 연평도에 신형 무기를 배치하고자 해도 예산이 없어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감세로 재원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부채 비율을 들어 한국의 재정건전성에 부담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OECD 국가의 조세부담률보다 낮은 사실은 왜 애써 외면하는가. 이러다 보니 재정건정성 악화 속도가 OECD 회원국가 중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MB정부가 감세 정책을 지속하려면 과감하게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감세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지금처럼 감세도 하고 복지비용 등 정부 지출도 늘려 총선이나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것이라면 MB정부의 감세 정책은 두고두고 논쟁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MB정권이 만든 국가부채가 결국 다음 정권 또는 후세대가 갚아야 될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율곡이 말한 '손상익하' 정책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때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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