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내가 하나를 얻으면 상대가 하나를 잃는 것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전체 합에는 변동이 없다.
항상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스포츠 경기는 언제나 제로섬 게임이다(가끔 무승부도 있지만). 하지만 특정한 룰(rule)에 의해 승패를 가리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면 제로섬 게임은 환영받기 어렵다. 개별로 보면 얻는 이와 잃는 이가 존재한다. 덜어주는 쪽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정부는 지난 1일 공기업 신입직원의 초임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삭감했던 것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식이다. 신입직원의 임금인상을 위해 기존 직원의 임금 인상률을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금융공기업과 시중은행은 지난 2009년초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해 대졸 신입직원의 임금을 20% 가량 삭감했다. 금융공기업은 2009년, 시중은행은 지난해 사령장을 받은 신입행원에부터 적용했다.
2~3년 만에 그 숫자는 6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조직내에서 '육두품'으로 불리고 있다. 자조가 짙게 배어 있는 별명이다. 신입직원이 이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건 조직에 마이너스일 건 안봐도 뻔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문제해결에 나선 건 바람직해 보이는데 그 해법이 문제다. 임금 격차를 좁혀 기존직원과 신입직원 간 갈등을 없애고 임금이 높은 직종과 그렇지 못한 직종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결국 공기업을 포함해 통제 가능한 금융권의 총임금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반강제적이기는 했지만)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방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은행권도 고민에 빠졌다. 기존 직원의 임금을 덜어 삭감된 신입직원의 초임 일부를 보전해 주겠다는 것은 신입직원들과 노동조합 등에서 주장해 온 '삭감임금 원상회복' 방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정부는 '하후상박'을 통해 '임금의 내부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직종에 비해 은행원 연봉이 높기는 하다. 정규직 월급의 절반이 안되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곳도 은행이다. 그렇다고 전체를 '하향평준화'하자는 발상은 자본주의란 육식동물에게 채식을 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향평준화에 대한 갈망이 자본주의 효율 극대화의 원천이다.
춘추전국시대 저공(狙公)은 자신이 기르던 원숭이에게 아침에 도토리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했다가 반대에 부딪혔다. 저공은 곰곰이 생각하다 이번에는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제안했고 원숭이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이른바 '조삼모사(朝三暮四)'인데 이 정책을 만든 공무원은 공기업 직원과 은행원을 '기르는 원숭이'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김민진 기자 asiakmj@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