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C";$title="[포토] 금의환향한 평창 올림픽 유치단";$txt="";$size="550,382,0";$no="2011070816082047872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스포츠 기자로 동계올림픽을 처음 취재한 건 1980년 제13회 레이크플래시드(미국) 대회였다. 그해 2월 13일부터 24일까지 열린 대회에 한국은 임원 10명, 선수 10명을 파견했으나 또다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스키 남자 활강에 출전한 홍인기는 47명의 예선 통과 선수 가운데 40위를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동계올림픽 활강 경기에서 완주한 건 홍인기가 처음이었다. 그 무렵 한국 동계 스포츠의 현주소다.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의 최고 스타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이다. 하이든은 500m와 1000m, 1500m, 5000m, 1만m 등 스피드스케이팅의 5개 세부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하이든은 이 대회에서 미국이 획득한 6개의 금메달 가운데 5개를 책임졌다. 하이든의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 기록은 2010년 밴쿠버 대회가 치러진 현재 다시 수립되지 않고 있다. 주니어 시절 하이든에 앞선 실력을 발휘했던 이영하는 500m에서 19위에 그쳤다.
이 대회 아이스하키에서는 대학생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이 사실상 프로 선수들인 소련(러시아)을 제치고 1960년 제8회 스쿼밸리(미국) 대회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해 파란을 일으켰다. 소련은 이 대회 전까지 아이스하키에서 4연속 우승하고 있었다. 아무튼 글쓴이는 이 대회를 취재했다. 서울에서.
막내였던 글쓴이가 국제종합경기대회인 동계올림픽을 취재하게 된 사연은 이랬다. 그해 7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모스크바에서는 제22회 하계올림픽이 열리게 돼 있었다. 모스크바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은 그해 3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됐다. 이 예선에 대비해 축구대표팀은 미국 서부 지역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전지훈련 기간인 2월 2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멕시코와 평가전에서는 김강남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축구 대표팀의 전지훈련에 선배 기자가 동행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질 조건이 이뤄졌다. 축구 대표팀이 미국 서부 지역에 있는 동안 비행기로 5시간이나 날아가야 하는 동부 지역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동계올림픽 관련 기사는 글쓴이가 서울에서 작성했고 기사 발신지는 레이크플래시드(뉴욕주), 취재 기자는 선배 기자가 됐다.
상황은 그랬지만 글쓴이는 그때 동계 종목 공부를 많이 했다. 봅슬레이가 철제 썰매, 루지가 목제 썰매를 타고 하는 경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지만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등 동계 종목의 세계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기 전 머리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뿌린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실내 아이스링크라고는 서울 창신동에 동대문실내빙상장이 달랑 하나 있을 때다.
앞서 얘기한 축구 예선에서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 이어 또다시 말레이시아에 발목이 잡혔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미국에 동조해 올림픽 출전을 보이콧 했기 때문에 예선을 통과했어도 어차피 모스크바에는 갈 수 없기는 했지만 말레이시아에 당한 0-3(예선 리그), 1-2(1위 결정전) 연패는 뼈아팠다. 모스크바에는 쿠웨이트, 시리아(이란 대체국), 이라크(말레이시아 대체국)가 출전했는데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선전해 8강에 올랐다.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 이어 1984년 제14회 사라예보 대회에 한국은 임원 8명과 선수 15명 등 23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메달권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세계의 높은 벽을 느껴야 했다. 스키 남자 대회전에 출전한 선수들이 복장 검사를 받지 않아 실격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1988년 제15회 동계올림픽은 2월 13일부터 28일까지 57개국 2천6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렸다. 한국은 이 대회에 임원 18명과 선수 28명을 파견했으나 또다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시범 종목으로 열린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서 김기훈, 3000m에서 이준호가 각각 금메달을 차지해 앞으로 있을 대회에 청신호를 밝혔다.
전해인 1987년 세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우승해 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배기태는 36초 90으로 골인해 3위인 일본의 구로이와 아키라에게 0.13초 뒤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배기태는 동계 올림픽 출전 사상 처음으로 6위 이내에 입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유선희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한국신기록인 40초 92로 13위에 오르면 선전했다.
불과 30년 안쪽에 있었던 동계 올림픽 관련 일화와 기록들을 보면 이 땅에서 하계올림픽에 이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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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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