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곳곳의 스피커에서 익숙한 K-POP이 잇달아 들려오지만 이곳은 홍대 앞이 아니라 도쿄 시내 중심가인 시부야 센터가와다. 시부야 역을 나서자마자 카라가 광고하는 LG 휴대폰의 대형 광고판을 만날 수 있고, 대형 음반 매장인 타워레코드에서는 ‘이번 여름은 카라와 함께예요! ‘카라파라’(카라+파라다이스)지요!’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새 앨범 ‘GO GO SUMMER’ 프로모션이 한창이다. 바로 뒤에는 샤이니의 일본 데뷔를 기념하는 프리미엄 포토 갤러리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5층에 따로 마련된 K-POP 코너에는 보이 프렌드, 파이브 돌스, 달샤벳 등 국내에서도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돌 그룹들의 음반과 드라마 O.S.T, 수많은 한류 잡지들이 즐비하다. 하네다 공항 출국장에서 티아라의 입국을 기다리던 일본의 10대 소녀들은 “K-POP을 진짜 좋아해요. 카라랑 소녀시대가 제일 인기 많아요. 요즘에는 샤이니도 인기가 많고, 비스트랑 엠블랙도 좋아해요”라고 입을 모은다.
K-POP이 중심이 된 3세대 한류
1990년대 말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시작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 언론이 붙인 용어인 한류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 2위의 음반 시장을 가진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음악 쪽에서는 가수 BoA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드라마 <겨울연가>는 ‘후유소나 신드롬’을 일으키며 ‘욘사마’와 ‘지우히메’를 낳았다. 이것이 일본에서의 첫 번째 한류 붐이었다. 1세대 한류는 드라마와 배우를 중심으로 촉발되었다. BoA는 엄밀히 말해 한류 스타라기보다 처음부터 일본어로 노래하고 말하는 현지화된 J-POP 스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BoA의 성공은 동방신기로 대표되는 2세대 한류 붐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의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지지 기반이 거의 없었던 동방신기는 지속적인 싱글 발매와 구민회관이나 길거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의 공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어 실력의 향상과 함께 TV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여 간 동방신기는 2008년 NHK <홍백가합전> 첫 출연과 2009년 첫 도쿄돔 단독 콘서트를 통해 일본에서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동방신기를 통해 한국 가수와 K-POP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일본 팬들은 드라마 O.S.T나 한국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가수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즈음 한국도 수많은 걸 그룹, 보이 그룹이 데뷔하며 아이돌 춘추 전국 시대를 맞았고 더 넓은 시장을 겨냥하며 일본 진출을 결행한 이들이 K-POP이 중심이 된 세 번째 한류 붐, ‘신 한류’를 일으켰다.
욘사마를 이은 근사마
1세대 때부터 한류 팬을 자처해 온 일본인 미츠에 씨는 “동방신기가 최고의 자리에서 해체한 뒤 마음 둘 곳을 잃은 팬들이 그 후 찾아 온 많은 K-POP 그룹의 이벤트에 참가하며 팬이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며 다수의 한류 스타 라이브 및 이벤트에 스태프로 참여한 김미영 씨는 “동방신기와 빅뱅을 좋아하면서 K-POP을 알게 된 일본 젊은이들이 점차 걸 그룹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즈음 진출한 카라나 소녀시대의 경우 그녀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여자 아이돌에 대한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가 결합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지상파에서 세 차례나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얻은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의 이례적인 성공으로 제 2의 욘사마로 등극한 장근석 역시 3세대 한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본인 모모코 씨는 “장근석은 욘사마와 달리 다양한 연령대에서 인기가 있다.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얼굴이 일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동시에 항상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할 말은 한다는 인상이라 젊은 세대가 좋아한다”고 말한다.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여파로 TV에서 CF가 줄어든 시기에 방송된 ‘서울 막걸리’ CF가 신선한 임팩트를 주었고 이를 통해 장근석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지진의 여파는 많은 한류 스타들의 이벤트 취소와 일본의 불경기 조짐과 맞물려 한류 붐을 주춤거리게 했다는 평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진을 겪으며 일본인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을 즐기자고 생각하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는데 적극적인” 이들이 여전히 한류 스타를 지지한다는 시선도 있다.
일본, 한류와 함께 지금을 즐기다
아이돌 그룹이 중심이 된 K-POP과 장근석이 선도하는 3세대 한류의 열기는 신오오쿠보에서 가장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유학생을 비롯한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신오오쿠보는 ‘한류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한국 연예인들의 CD, DVD, 잡지, 굿즈를 파는 전문 상점은 물론 한국 식당과 식료품점이 모여 있는 신오오쿠보는 최근 “하라쥬쿠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지난 7월 6일 방문한 신오오쿠보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신 한류’는 신오오쿠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 유학생 아이돌 그룹인 키노(KINO)와 S.O.S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비교적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현지에서 팬들과 자주 만나는 친근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들은 일본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S.O.S는 7월 6일 TBS 아침방송 <하나마루 카페>에 출연해 더위를 이기는 한국 음식으로 추어탕과 오이냉국을 추천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일본으로 전파된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를 중심으로 K-POP이 인기를 얻는 것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오가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는 현상의 실태나 원인을 단편적인 이유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적어도 이제 일본에서의 한류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폄하하기엔 그 찻잔의 크기와 태풍의 강도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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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사진. 김희주 기자 fifteen@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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