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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서울대생들의 별난 시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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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그들의 손에 쥐어진 건 수업 교재였다.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았고, 다른 누군가는 굿판을 벌였다. 심지어 록(Rock) 공연도 열렸다. 고사상도 차려뒀다. 도서관을 잠시 벗어나 축제에 참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엄연한 시위대, 그것도 최근 법인화 반대투쟁으로 달아오른 서울대 재학생들이다. 화염병과 각목을 쥐고 '386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서울대 졸업생들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위 공간은 그 자체로 축제의 장이자 젊음의 신명이 깃든 놀이터였다. 서울대 학생들의 시위문화는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지난 20일 오후, 시위에 참여한 서울대 인문대학 1학년생 홍범신(20)군을 따라 체험해본 이들의 시위는 다채로웠고, 흥미롭기까지 했다.


똑똑한 서울대생들의 별난 시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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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저녁 서울대학교 학교본부 4층 총장실에 앉아 책을 보는 홍범신군. 그는 과제 제출을 위해 열심히 책을 보고 있다.>

기자는 본격적으로 시위를 체험하기 전에 홍군을 한참 기다려야 했다. 기말시험에 맞춰 제출해야 할 과제가 아직 하나 남은 그가 대학본부 건물 복도에 주저앉아 한 시간 넘게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홍군은 "자취방에 가면 유일한 친구인 컴퓨터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며 "학교본부에서 다른 학우들이 다들 공부를 하는 분위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본부 2층 복도에 걸린 생활수칙에 '아무리 시험기간이라도 다음날 일정을 위해 새벽 2시에는 취침을 해달라'는 당부의 글귀가 적혀있을 정도였다.


똑똑한 서울대생들의 별난 시위 이야기

<20일 오후 7시 촛불문화제의 첫 공연 '학생총의넋이로다'의 한 장면. 무당분의 학생이 셔틀귀신이 씌인 총장을 혼낸다는 내용이다.>

공부를 마친 홍군이 찾아간 곳은 건물 밖 마당놀이판이었다.
"난 쌍방은 몰라. 일방만 알아. 얼마 전에 LA에 다녀왔을 때도 (비행기표를) 편도로 끊었어", "그럼 어떻게 돌아왔어?", "셔틀버스 타고 왔지", 알다가도 모를 대사에 홍군은 박장대소했다. 이 공연은 학내 마당극 동아리인 마당패탈이 준비한 '학생총의넋이로다' 라는 마당극이다. 17~18일간 진행됐던 록 페스티벌 '본부스탁'을 저지하기 위해 학교 측이 본부 진입로에 셔틀버스로 공연차량 진입을 막았던 것을 풍자하는 내용이란다. 총장한테 씌인 '셔틀 귀신'을 무당이 굿을 통해 쫓아낸다는 내용을 익살스런 대사로 표현했다.

똑똑한 서울대생들의 별난 시위 이야기

<'학생총의넋이로다' 공연에 웃음을 터뜨리는 학생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홍군은 기자의 걸음을 재촉해 교정에 차려진 고사상 앞으로 데려갔다. 고사상에는 뻥튀기, 북어포, 과일 등이 차려져 있었고 돼지머리 자리에는 학생이 앉아 천원짜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대표 학생이 축문을 써서 읽은 뒤 좋은 학점을 기원하고 축문을 불태우는 게 고사의 핵심 줄거리였다. 홍군은 "C~F학점만 적힌 학점 통에서 하나를 학생이 뽑은 뒤 이를 훌훌 털어버리는 발언을 하는 코너가 제일 재미있다"며 웃었다.


홍군에 따르면, 5월 30일부터 지난 20일까지 매일 제공된 점심은 졸업생 선배들이 보내주는 지원금으로 마련된 것이고 17~18일에 열렸던 록 페스티벌 본부스탁도 선배들의 지원금 500만원으로 치러진 행사다.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데는 선배인 가수 장기하씨의 공이 컸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데 동참하는 대신 유명 밴드를 섭외해 후배들의 '놀이판'을 만들어줬다.


똑똑한 서울대생들의 별난 시위 이야기

<지난 18일 본부스탁에 참가한 학생들이 밴드'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시위가 졸업생과 재학생 사이의 연결고리 노릇을 한 셈이다. 홍군은 기자와 인사를 나눈 뒤 본부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자취방으로 가기 전에 복도에 앉아서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고 했다. 홍군은 "복도를 차지하고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시위"라면서 "'이렇게 고생스럽게 공부하지 않도록 빨리 해결책을 내놓아달라'는 항의로 받아들여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1987년 6ㆍ10항쟁 등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서울대 졸업생(사범대학 86학번) 황모(45ㆍ남ㆍ회사원)씨는 "영국에서 1960년대 반전시위를 주도한 세대의 자녀들이 지나치게 극렬했던 시위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만들어낸 게 에든버러 우드스탁이란 축제"라면서 "유럽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시위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은희 기자 lomoreal@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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