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책 한 권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책 제목은 ‘거대한 침체’(The Great Stagnation).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에 자리잡은 조지 메이슨 대학의 타일러 카우엔(49)교수가 지난 1월 전자책으로 펴낸 저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많은 언론 매체들이 앞다퉈 소개한 ‘거대한 침체’에서 카우엔 교수는 미국 경제가 위기로 내몰린 것은 소득불평등 아닌 성장한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종이책으로 펴내자니 글이 상대적으로 짧아 전자책으로 펴내게 됐다는 ‘거대한 침체’는 지난 300여 년 동안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이른바 ‘낮게 달린 과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낮은 나뭇가지에 달린 과실이란 쉽게 그리고 빨리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뜻한다.
미국은 17세기 이후 비옥하고 광활한 무상 토지, 기술 혁신, 높은 수준의 노동력 덕에 엄청난 고속 성장을 이뤘다는 게 카우엔 교수의 논리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낮게 달린 과실을 다 따먹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유럽·일본은 성장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생각 아래 모든 정치·경제·사회 기구를 구축해왔다. 카우엔 교수는 최근의 금융위기와 관련해 “스스로 실제보다 부자라고 착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카우엔 교수가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기존 설명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주류학자들의 주장대로 소득불평등에 따른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가계대출을 완화한데다 신용평가에도 문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빚잔치 과정에서 경제의 기본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카우엔 교수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 다시 말해 규제, 구제금융, 감세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1962년생인 카우엔은 15세 때 ‘뉴저지 오픈 체스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한 수재다. 당시로서는 최연소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그가 ‘미국의 100대 체스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카우엔은 1983년 조지 메이슨 대학 경제학과 졸업 후 1987년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재학 당시 2005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게임이론가 토머스 셸링 교수 밑에서 배웠다.
현재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카우엔 교수는 경제학 블로그 ‘마지널리볼루션(한계효용혁명)닷컴’의 공동 운영자이기도 하다.
경제학자이자 예술애호가인 그는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며 많은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서양의 주류 예술뿐 아니라 제3세계 예술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아이티 미술에 심취해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다 중앙아프리카 피그미족의 음악을 즐길 정도다.
‘뉴욕 타임스’, ‘뉴 리퍼블릭’, ‘월스트리트 저널’, ‘포브스’, ‘뉴스위크’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카우엔 교수는 광범위한 사고와 식견으로 지성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월 카우엔 교수를 ‘200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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