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인수 마무리 단계… 日 야마하와 ‘하이엔드’시장서 본격 패권경쟁
얼마 전 삼익악기가 세계적 악기회사인 스타인웨이의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하이얼이 뱅앤올룹슨을 인수한 것과 같다”며 동양의 후발주자인 삼익악기가 세계 1% 명품 악기사인 스타인웨이를 인수한 것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에서는 세계 명품악기사를 품에 안을 정도로 성장한 삼익악기에 대한 재조명과 더불어 경영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명품 악기사들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삼익악기(대표회장 김종섭)는 미국 고급 악기 제작업체 스타인웨이의 뮤직 인스트루먼트(Steinway Musical instrument · 이하 스타인웨이)의 황금주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황금주 (class A)란 보유 수량이나 비율에 관계없이, 극단적으로 단 1주라도 보유하게 될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특정한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을 뜻한다. 삼익악기는 지난해 3월 스타인웨이 지분 31.8%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지만, 스타인웨이 최고 경영진이 황금주를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해외 “한국의 국격을 높였다” 찬사
삼익악기 관계자는 "스타인웨이 황금주 47만7천952주 가운데 36만8천554주를 취득하는데 2천63만9천24달러가 투자된다. 이를 통해 관계회사 지분을 포함한 33.17%의 주식을 확보하게 돼 최대 의결권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삼익악기는 세계 최고의 악기사인 스타인웨이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스타인웨이 주주총회의 결과에 따라 황금주 인수가 확정되면 스타인웨이의 경영권 확보 작업이 최종 마무리된다.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중국전자회사인 하이얼이 명품 오디오 전문업체로 유명한 덴마크의 뱅엔올룹슨을 인수한 격이라며 놀라운 탄성을 쏟아냈다.
일반인들이 이렇게 극과 극의 비교를 하며 놀라워하는 것은 삼익악기가 고가의 전문가를 위한 피아노를 생산함에도 대중들에게 엔트리 레벨의 브랜드로 인식돼 ‘삼익=중저가’ 라는 편견이 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계 악기시장을 논하기 앞서 국내 삼익악기의 성장과 세계적인 위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2010 상하이 국제악기박람회’ 에 참가했던 한 경제지 기자는 당시 삼익악기의 김종섭 회장이 박람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하이 빅보스(Hi, big boss)”라며 그를 반겼다고 전한다.
세계 유수의 악기회사 관계자들이 김 회장에게 농담처럼 건넨 이 말 한마디에는 달라진 그의 무게와 어느새 훌쩍 커버린 한국 악기업계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전 세계 80여개국 수출, 세계 최고 피아노업체 스타인웨이 최대주주, 150년 전통 독일 피아노업체 자일러 인수, 스타인웨이, 야마하에 이어 매출이나 영향력에서 피아노업계 세계 3위권 업체, 국내 피아노시장 40%를 점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은 989억원, 영업이익 73억원을 기록한 알짜 회사. 삼익악기가 지난 53년간 일궈온 성과다.
1958년에 설립된 삼익악기는 영창악기와 더불어 국내 악기산업의 기초를 닦으며 성장했지만 국내 피아노시장의 포화와 무리한 계열사 확장으로 1996년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2002년 삼익악기를 인수한 김종섭 회장은 활동 무대를 국내에서 해외로 전환, 외환 위기로 열악한 국내 시장보다 미국 등 해외 시장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 연주자 90% 이상이 스타인웨이나 벡스타인, 자일러 등 명품 악기를 선호하는 분위기에서 삼익 브랜드만으로 시장을 파고들기 쉽지 않았다.
특히 저가 중국 제품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브랜드의 고급화 작업이 시급했다.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세계 최고의 악기업체를 하나 둘씩 사들였고 2002년과 2009년에 독일의 악기업체인 벡스타인과 자일러를 각각 인수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벡스타인과 자일러는 세계 2, 3대 피아노 브랜드로 명성이 자자한 회사였다. 그러나 삼익악기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으로 높였던 결정적인 사건은 2010년 3월 스타인웨이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었다.
세계 악기의 역사 150여 년 중 100년 이상 명품악기시장 1위를 유지한 브랜드인 스타인웨이의 최대주주가 된 것에 당시 삼익악기의 김종섭 회장은 “업계에서는 스타인웨이를 벤츠나 페라리에 비교해 얘기를 많이 한다”며 “스타인웨이는 전 세계 아트센터 98%에 들어가 있는 최고급의 상징인 만큼 이런 회사의 1대 주주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국격이 올라갔다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는 심경을 밝힌 바 있다.
해외 시장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삼익악기는 현재 악기시장의 흐름이 집약된 중국은 물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이어 마빈스(MAVINS, 멕시코·호주·베트남·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시장 공략도 준비 중이다. 또한 삼익악기는 오랫동안 일궈왔던 인천 부평공단의 사무실과 국내 생산라인, 물류창고를 충북 음성으로 이전한다.
음성 공장의 규모는 대지 4만7000평(15만5371㎡). 삼익악기는 본사를 충북으로 이전함으로써 중간 지점이라는 충청도의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 국내 물류 기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톱 브랜드 ‘명품’에만 집착 사양길
그렇다면 이번 인수설이 돌고 있는 스타인웨이는 어떤 회사일까? 미국과 독일에 시장을 둔 스타인웨이는 대당 1억~3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피아노를 만드는 세계1위의 악기업체로 뉴욕 카네기홀이나 스타인웨이홀·예술의전당 등 세계적인 유명 공연장에는 어김없이 스타인웨이가 자리하고 있다.
한 대 탄생하는데 부품 수만 1만 2000여개로 제작하는데 보통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백건우나 알프레드 블렌델 등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독일계 미국인 하인리히 엥겔하트 스타인웨이가 아들인 핸리 스타인웨이와 함께 1853년에 창립한 세계적인 피아노업체인 스타인웨이의 공식 브랜드 명은 ‘Steinway&sons’.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타인웨이는 1980년대까지 가족경영을 이어오다 80년대 회사를 투자운용사에 매각했다.
이후 하버드 출신의 다나 디 메시나 CEO, 커클랜드 등 두 사람에 의해 인수되었으며 30년 이상 그들이 운영해 왔다.
삼익악기의 이형국 대표이사는 삼익악기가 명품 스타인웨이를 인수하게 될 경우 과연 그 브랜드의 명성을 잘 유지시켜 줄 것인가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이번 황금주 인수계약을 체결, 경영권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스타인웨이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삼익악기는 엔트리 레벨에 치중하던 회사이고 스타인웨이는 하이레벨의 명품악기를 취급하던 회사이기에 시장이 다르고 마케팅 방식이 다르다는 것.
스타인웨이 외에도 세계 명품 악기사로 손꼽히는 독일의 벡스타인, 오스트리아의 뵈젠돌프, 독일의 자일러 등 고가의 악기를 생산하는 명가들은 경영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스트리아의 뵈젠돌프사 역시 1828년에 설립된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를 비롯한 프리미엄 피아노 메이커다. 빈의 음악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피아노 연주자, 전문가를 중심으로 많은 팬을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경영난 악화로 1966년 미국 피아노 메이커인 킹볼사 소유가 되었다가 2002년에 오스트리아은행 BAWAG P.S.K 그룹에 양도됐다. 이후 2007년 일본의 야마하가 뵈젠돌프의 전 주식을 취득하며 야마하로 인수됐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벡스타인은 스타인웨이에 이어 유럽시장에서 판매량 2위를 기록하는 명품 악기사로 유명하다. 음악의 본고장인 독일 최대 악기회사이자 스타인웨이와 동시대에 창립된 세계 3대 브랜드로 명망을 떨쳤지만 자국 내에서 경영권이 양도되다 지난 2002년 삼익악기에 의해 인수되었다.
현재 삼익과 결별, 다시 독일의 한 거부가 인수한 상태. 독일의 자일러 역시 세계 판매량 5위 안에 드는 명품 악기사이지만 2009년 삼익악기에 인수되었으며 신디사이저로 유명한 미국의 커즈와일 역시 한국의 영창악기가 90년대에 인수했고 영창악기는 현재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된 상태다.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했다가 독과점을 우려한 공정위의 제재로 현대산업개발로 매각된 일화는 꽤 유명하다.
이처럼 유독 악기사들은 인수합병 관계가 복잡한 편이다. 그런데 손에 꼽히는 명품 악기사들이 모두 경영난에 허덕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2년 독일의 벡스타인과 2009년 자일러를 인수했던 삼익악기의 김종섭 회장은 그 당시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벡스타인과 자일러, 두 브랜드 모두 적자였어요. 실사해봤더니 너무 ‘명품’에 집착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한정된 방식으로 제조할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시장만 바라보면서 경영을 해왔더군요.
그래서 인수 이후 삼익악기의 아시아권 판로를 벡스타인, 자일러와 공유해 새로운 시장을 열도록 했어요. 더불어 한 해 300대 정도로 소량 생산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높아졌던 자재 구입비를 삼익악기와 공동구매하는 식으로 돌려 원가를 대폭 절감케 했지요. 그랬더니 두 브랜드 모두 인수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유럽 등 기술력과 오랜 역사를 갖춘 회사들이 고가의 악기로 수요가 적은 시장에서 전통만 강조하다 경영에 실패해 속속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악기시장의 흐름이 유럽에서 미국, 일본, 한국, 중국 등으로 이동하며 그 수요층 역시 변화하고 있는데도, 고가 라인만을 고집하며 시장을 다변화 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타인웨이를 벤츠나 페라리에 비교를 하기도 한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전세계 아트센터 98%에 들어가는 최고급의 상징이기도 하다.
中 중고가 시장서도 발군의 역량
스타인웨이 경영진이 재무적 투자자를 고를 때 비공개적으로 밝힌 투자자 요건은 ‘신흥시장이 밀집해 있는 아시아권 업체일 것, 그러면서도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 투자에 참여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높은 회사일 것’ 등을 제시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신흥시장이 밀집해 있는 아시아권 업체’라는 대목이다. 스타인웨이나 뵈젠돌프사 등 명품악기사가 유독 아시아 국가인 삼익이나 야마하 등에 인수된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이형국 대표이사는 “악기시장의 흐름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며 아시아의 신흥시장이 악기사의 판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악기시장은 시장의 이동 흐름이 비교적 뚜렷하며 그에 따라 흥망성쇠도 뚜렷합니다.
유럽시장에서 활기를 띠었던 악기시장은 60년대 미국으로 이동, 이때 미국에는 128개 정도의 피아노 공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스타인웨이 공장 1개만 남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70년대 말에는 악기 수요의 흐름이 일본으로 이동했는데 당시 100여 개의 피아노 공장은 현재 야마하와 가와이 정도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와서는 그 흐름이 한국으로 이동해 대우 로얄 피아노, 한일, 서진피아노 등 국내에도 10여 개의 악기사가 있었고 92년도에는 18만대 정도의 판매량을 올렸지만 2011년 현재 영창과 삼익 두 곳만이 맥을 잇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시장의 흐름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 대표는 현재 시장의 흐름은 ‘중국’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은 영세한 업체 포함 약 200여 개의 악기사가 있고 이 중 대규모의 악기사도 15~20개 정도 된다.
중국 악기시장(특히 피아노시장)도 1가구 1자녀 정책과 소득 및 교육 수준 향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중산층과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대학 졸업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노인 인구가 증가. 기존 교육용에서 여가용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여 향후 성장 모멘텀은 매력적이다. 중국 피아노 시장 규모는 지난 1990년 중반을 기점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연간 25만여 대가 팔려 세계 최대의 피아노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중국은 가정용 피아노 보급률이 10% 미만으로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30%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상태여서 성장 가능성도 높다고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중산층 확대와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중고가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연간 판매량 25만대에서 1만5000위안 이상인 중고가는 5만대에 불과하다. 때문에 삼익악기의 성장성은 이 부분에서 돋보인다. 중국인들의 명품 소비 성향이 높은 점을 감안할 때 자일러와 스타인웨이사의 고가 브랜드는 중장기적인 매출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익악기 측에 의하면 2010 년 월 10억원을 기록했던 중국 매출은 2011년 1월 20억원으로 100% 증가했고 2011년 말에도 월 40억원으로 10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에는 중국 매출이 약 5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삼익악기의 인도네시아 생산라인 공장은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어 경쟁력이 높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악기사들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피아노 등 악기의 경우 신규 수요가 적고 기존시장에서의 경쟁도 매우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익악기의 주요 경쟁사인 야마하 역시 교육열이 높은 중국 시장을 겨냥, 중산층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음악강좌를 해오며 자사의 악기를 판매해 왔다. 이는 2010년 중국 등 아시아에서 최대 매출을 거두는 결과를 낳았다.
야마하 2010 회계년도(2010년 4월~2011년 3월) 아시아 지역 매출은 전년 대비 21% 늘어난 720억엔이었는데 아시아 지역 매출이 증가한 것은 중국으로의 피아노 수출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악기시장의 대세는 아시아로 왔다. 스타인웨이와 자일러의 브랜드 가치를 입은 삼익악기, 뵈젠돌프의 명성을 더한 일본의 야마하 등이 보여줄 악기시장의 경쟁, 특히 최근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중고가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코노믹 리뷰 최원영 uni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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