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폭행 혐의가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한번의 실수라고 볼 수 없는 과거 행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뉴욕의 한 유명 포주는 스트로스 칸 전 총재가 자신의 고객이었다고 폭로했고 과거 그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들도 잇따르고 있다.
이미 3번째 부인과 살고 있는 그가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했는지는 몰라도 들려오는 여성편력을 보면 ‘카사노바’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진짜 카사노바가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이야기를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칠 지 모르겠다.
카사노바는 이탈리아의 문필가로 유럽 각지를 방랑하면서 엽색과 모험의 생애를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편력했던 지역은 파리와 런던, 베를린, 마드리드 등 유럽 전역에 걸쳐있다. 그는 볼테르와 루소 등 저명한 문학가와 화가와 교류했고 프로이센의 프레데릭 2세와 러시아 예카테리나(2세)와 같은 여러 황제도 포함돼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작년에는 그의 회상록 ‘내 생애의 역사’ 12권이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700만 유로, 우리돈으로 약 109억원에 팔렸다. 3700쪽의 방대한 이 원본에는 물론, 그가 만났던 122명의 여성, 심지어 남성들과의 연애담까지 기록돼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그러나 이 회고록을 100억원 넘게 들여 구매한 프랑스 문화부는 이 책을 통해 계몽주의가 유럽을 물들이던 18세기 당시의 흥미로운 풍속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카사노바가 모험가, 변호사, 성직자, 바이올리니스트, 도박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전 유럽을 떠돈 ‘진정한 유러피언’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카사노바는 왜 스트로스칸과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을까.
카사노바가 여성에 접근하는 기술은 '권력'이나 '강제'나 '억압', '힘'이 아니었다.
문학과 예술, 점성술 등으로 지성적인 면으로 어필을 하고 여성의 발에서 매혹을 느끼는 소위 훈남, 또는 쾌남이었다. 카사노바를 만났던 여성이 또 다른 여성을 소개해 줄 정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잘 생기지 않았지만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죽을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았다.
‘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김준목 저)에 나오는 카사노바의 어록에 따르면 “나는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일들이 설령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 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한다”고 했다.
또 “나는 여자들을 미친 듯이 사랑했다. 그러나 여인과 자유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자유를 택할 것이다.”는 말도 남겼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합의된 성관계’를 주장하고 있지만 자유를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스스로의 의지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카사노바는 100억원의 가치가 넘는 ‘회고록’을 남겼지만 스트로스칸 전 총재에게는 연간 약 2억7000만원의 연금이 지급될 전망이다.
카사노바가 볼 때 스트로스 칸 전 총재는 불륜이라는 쾌락에 중독된 환자로 생각될 수 밖에 없으니 그와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하는 것은 당연할 지 모르겠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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