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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보듬던 이들, 마침내 부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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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보듬던 이들, 마침내 부부 되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민경구(왼쪽)씨와 이영란(오른쪽)씨는 23년 동안 몸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나눠왔다. 손을 잡고 같이 걷고, 서로를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부부다. 두 사람의 사랑은 부부의 날인 21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도움으로 결실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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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부부란 무엇일까. 굳이 주례사를 듣지 않아도 된다. 부부의 날인 21일 100년 가약을 맺는 민경구(35ㆍ지적장애 1급)씨와 이영란(30ㆍ지적장애 2급)씨가 몸으로 말해 주기 때문이다.

7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영란씨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은 아직 7살 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평생 배필이 되어줄 경구씨도 마찬가지로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하지만 장애의 정도가 더 심한 1급이다. 그런 그가 보금자리를 떠나 홀로 잠을 청할 때 꼭 하는 일이 있다. 아무도 모르게 영란씨의 옷을 가져와 베개 밑에 접어 두고 잠드는 것이다. 부부는 이런 것이다.


경구씨가 영란씨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란씨를 혼자 두고 강원도 원주에 다녀오는 명절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선물을 내민다. 보통 선물이 아니다. 직접 손으로 꽈 만든 머리끈이며 양말 같은 것들이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지적장애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쓸 수도, 맛있는 음식을 해 줄 수도 없지만 손을 잡고 같이 걷고, 서로를 기다려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경구씨는 23년 전부터 이미 영란씨와 이런 사랑을 키워왔다.

영란씨도 다르지 않다. "오빠는 언제 와요?" 문 앞에서만 벌써 10번째 질문이다. 영란씨는 같은 장애인 시설에 사는 경구씨를 매일 꼬박 2시간씩 기다린다. 시계도 못 보고 전화도 걸 줄 모르는 영란씨가 경구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이다. 장애인 시설에 있는 선생님에게 경구씨가 언제 돌아오는지를 묻는 것이다.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으면서 마냥 기다리던 영란씨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경구씨가 시설 문에 들어설 때다. 말을 띄엄띄엄 밖에 못하는 영란씨가 경구씨에게 달려가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건 '좋다'라는 말 한 마디면 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안부를 걱정해주는 것. 그것이 부부다.


영란씨와 경구씨의 첫 만남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활보호 대상자인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구씨는 12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충북 제천에 있는 중증장애인 학교 '세하의 집'에 왔다. 같은 해 7살이던 영란씨는 제천 서울병원 앞에서 버려진 채 발견돼 '세하의 집'으로 오게 됐다. 손목과 발목에 족쇄를 채운 흔적이 있던 영란씨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영란씨가 가족에게서 받았을 상처를 보듬어 준 건 마찬가지로 상처 받은 경구씨였다.


'세하의 집'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영란씨에겐 즐거운 '일'이 생겼다. 다리가 불편한 경구씨의 손을 잡고 같이 걷는 일이다. 경구씨가 어디를 가든 따라 다니며 손을 잡아주길 좋아했던 영란씨는 언제부터인지 다시 웃기 시작했다. 경구씨가 일을 마치고 늦게 돌아올 때면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차려주는 것도 영란씨의 또 다른 '일'이었다. 산책을 할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소풍을 갈 때도 영란씨와 경구씨는 늘 함께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오빠이자 동생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존재다. 가족의 시작은 이렇게 부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23년을 이어온 두 사람의 사랑은 21일 결실을 맺는다. 색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세섭)이 올해부터 시작한 '찾아가는 문화유산 버스' 사업의 하나로 경구씨와 영란씨의 결혼식을 준비해주는 것 뿐이다. 경구씨와 영란씨의 결혼식은 이날 오전 '세하의 집'에서 전통 혼례로 열린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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