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감자가 깨우쳐 준 과학도 본능 건강화장품으로 결실 맺었죠”

시계아이콘05분 44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카이스트 출신 수재의 새 인생 개척기 | 엄현준 비단생 대표

“감자가 깨우쳐 준 과학도 본능 건강화장품으로 결실 맺었죠”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AD


강원도 영월군은 깊은 산과 산을 굽이굽이 휘돌아 감는 동강의 푸른 물결이 장관인 곳이다. 햇볕 쨍쨍한 날 그 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동강의 눈부신 정취를 뒤로 하고 펼쳐진 논밭에는 각종 농산물 재배가 한창이다. 강원도의 명물은 감자와 옥수수. 토실토실한 감자가 알알이 열리는 시기는 6월 말. 강원도의 감자는 다른 지역보다 수확이 빠르고 알이 꽉 찬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 점순이가 짝사랑하는 주인공 ‘나’에게 감자 한 알을 주뼛주뼛 건넨 곳도 바로 이곳 강원도 산골자락 어디쯤 아닐까. 감자의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지역에서 감자와 깊은 인연을 맺은 남자가 있다. 찌고 굽고 튀겨 먹는 감자가 도대체 무슨 대단한 힘이 있길래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줬는지, 그가 속사포처럼 풀어낸 ‘감자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감자의 미백효과에서 제품 착안

강원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의 자그마한 공장에서 만난 엄현준(42) 비단생 대표는 소박한 작업복 차림이었으며, 수더분한 인상을 풍겼다. 방문 당시에 공장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노동의 고된 기색보다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가득했다. 일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는 비단생이라는 개인 회사 겸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공장은 감자 화장품을 만드는 곳. 공장 일은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엄 대표와 그의 아내 단 둘이서만 운영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기자는 감자가 미백 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 외에 어떤 효능이 있길래 화장품으로까지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무슨 화장품을 만드냐는 질문에 그는 ‘감자팩, 감자비누, 감자샴푸, 감자에센스’를 만든다고 답했다.


“감자가 깨우쳐 준 과학도 본능 건강화장품으로 결실 맺었죠”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엄 대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공장 한 편에는 각종 화장품 용기가, 다른 한 편에는 포장 박스가 쌓여 있었다. 그는 요즘 한창 아내와 화장품을 제조하고 포장하는 중이다. 한 달에 4000개의 감자 화장품 세트를 납품해야 하는 까닭에서다.


일주일 내내 자정을 넘은 시간까지 일했다는 엄 대표. 불평 한 마디 없는 아내 덕에 부부가 호흡이 척척 맞아 능숙하게 완성된 제품을 내놓는다. 주력 제품은 감자샴푸다. 이 제품은 지루성 두피염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머리가 가렵고 따가운 증상을 나타내며 심할 경우 탈모를 유발하는 지루성 두피염은 시중에 출시된 헤어 관리 제품으로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엄 대표는 한의학적으로 찬 감자의 특성이 피부의 열을 식혀준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알아냈다.


이후 감자와 한방 추출물을 90% 이상 포함시켜 지루성 두피염 해결에 탁월한 제품을 개발했다. 실제 제품을 사용해 본 소비자들이 많은 효과를 봤다는 반응을 내 주문량이 늘고 있다.


감자샴푸는 미용실이나 약국에 납품할 목적으로 제작된다. 처음에는 비단생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만 판매했지만 지난 4월 영업소 3군데를 모집해 오프라인 판매에 돌입했다. 영업소는 경기도 파주, 경상북도 대구, 충청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감자팩, 감자비누는 여드름 등 피부의 트러블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엄 대표는 “감자가 진정작용을 해 피부 트러블을 완화한다”고 설명했다. 비단생 홈페이지에는 제품을 사용해 눈에 띄게 트러블 진정 효과를 본 고객이 제품 사용 전후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엄 대표가 화장품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본인의 체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지난 2008년 세 살배기 아들이 온 몸에 심한 아토피를 앓자 근심이 커져만갔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학 약품의 효과는 사용할 때 뿐이라고 설명하는 엄 대표는 소염 작용을 하는 감자를 이용해 직접 치료책을 연구했다. 바로 감자에센스를 만든 것. 그는 감자에센스를 밤낮 할 것 없이 아들에게 뿌려줬다.


그러자 몇 달 후 거짓말처럼 아들의 피부가 깨끗해졌다. 그는 “아토피는 몸의 내부에서 발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피부 표면이 곪거나 흉터가 남지 않게 관리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감자에센스는 가려움증을 완화해 주는 까닭에 아이가 몸을 긁다가 상처가 덧나지않도록 방지해 준다는 설명이다.


“감자가 깨우쳐 준 과학도 본능 건강화장품으로 결실 맺었죠” 화장품 제조 공정.[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그는 “아들 때문에 에센스를 개발했다”며 “아들의 아토피가 치료된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엄대표의 개인적 체험은 금세 입소문을 타 자녀의 아토피 때문에 고민하는 많은 부모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감자에센스 덕에 아토피 치료의 효과를 보고 있다.


그가 개발한 제품들은 전부 천연 식품인 감자가 주 원료다. 따라서 한국화학실험연구원에 자체 실험을 의뢰한 결과 중금속 검출량이 제로로 판명됐다. 수은, 납, 비소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것. 엄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화장품을 ‘몸에 좋고 건강한 제품’이라고 확신할 만했다.


이렇게 공들인 제품이 그동안 인터넷으로만 팔린 결과 지난 해 매출은 2억원을 기록했다. 순전히 엄 대표와 그의 아내 두 사람이 일궈낸 결과였다. 올해는 오프라인 매장 진출을 한 까닭에 엄 대표는 매출을 10억원까지 높여 잡았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현재 달성하고 있는 월 매출이 2000만~3000만원 정도 되는 까닭에서다. 비단생을 설립한 지 어언 5년, 이제는 초기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일만 남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퇴… 야학… 학원강사 젊은 날 방황


그렇다면 이 소박한 사내가 어떻게 감자 화장품을 제 손으로 개발해 낼 수 있었을까. 알고보니 그는 강원도 영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 이후 카이스트에 진학한 수재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과학도의 꿈을 품고 물리학 전공을 선택한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꿈과 현실의 괴리를 실감했다. 그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고, 꿈꿔온 과학도의 모습과도 점점 멀어졌다는 그. 방황의 시기를 겪으며 야학에 빠져들었다.


엄 대표는 1988년도에 입학한 대학교를 1993년도에 그만두게 됐다. 실제로 수학한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후회나 두려움은 없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6년간 빠졌던 야학 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고 학교가 있던 대전 지역에서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가르침 덕분에 성적을 올린 학생 수도 꽤 많았다. 그러다 보니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엄 대표는 학원 강사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크게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까닭에서다. 그때부터 엄 대표는 지금껏 해왔던 모든 일을 접고 고향인 강원도 영월로 내려오게 됐다.


처음 영월에 내려오자 고향의 토속 농산물을 이용해 인터넷 판매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엄 대표는 그때부터 감자, 옥수수, 고구마, 산나물 등 영월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직거래로 구매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판매했다. 그가 운영한 인터넷 사이트의 이름은 ‘E감자’였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판매량이 쑥쑥 늘기 시작했다.


그 중 히트상품은 단연 감자였다. 엄 대표는 일명 ‘뽀샤시 감자’를 판매했다. 뽀샤시 감자는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 감자와 달리 찌면 분이 나며 맛 좋기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1년이 지나자 연 매출 1억원을 금세 달성했다. 놀라운 것은 그 후 1년마다 연 매출이 두 배씩 증가하기 시작한 사실이다. 2년 뒤에는 2억원이 되어 2005년에는 매출 5억원을 기록했다.


사업이 잘 되자 엄 대표는 절로 신이 났다. 그러나 엄 대표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2005년에 감자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강원도에서만 몇 톤의 감자가 썩어 나갔다. 이 시기에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지원을 받아 감자가공업체들이 감자 재고량을 1000t 단위로 나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농민들이 힘들여 농사짓고 수확한 감자를 그대로 내다버릴 수는 없는 일. 이미 가격 등락에 판매량과 매출이 크게 좌우되는 농산물 유통 사업의 한계를 느낌 엄 대표도 2차 산업인 가공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5년부터 감자 가공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북면 문곡리에 조그마한 땅을 매입했다. 그러나 공장 설립 등 기타 제반 사항에 필요한 비용은 그가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1억원의 자금은 쇼핑몰 고객으로부터 유상증자로 충당했다. 또한 중소기업청의 ‘향토산업신기술융합화개발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돼 2억원을 지원받았다. 산업자원부의 ‘지역특화선도기업개발사업’을 통해 6000만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자금만 몇 억원에 달했다.


공장을 설립한 후에는 연구 개발에만 매달렸다. 한의학 전문가에게 도움을 얻어 한방 추출물과 감자를 이용한 화장품 개발에 전력을 다한 것. 엄 대표는 이때 대학시절 실험 및 연구 방법을 익혀 놓은 일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의 적성과 재능이 새롭게 자리를 잡은 결과가 바로 지금의 비단생 감자화장품 브랜드다. 한편 쇼핑몰 운영과 공장 운영을 혼자 병행하기 어려웠던 그는 2007년 ‘E감자’를 매각했다.


“지금이 인생고비” 마케팅 골몰


화장품 가공 공장을 처음 설립한 이후 5년간 엄 대표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빚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을 고용해 제대로 월급을 줄 수도 없는 형편하에 아내와 단둘이 공장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계속해서 회수한 자금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재투자는 현재까지도 이뤄지고 있다.


또 제품 제조부터 연구 개발과 마케팅까지 전부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실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감자 화장품 제조는 강원도 영월, 평창 지역 감자 재배 농가 2~3군데와 계약을 맺고 감자를 사들이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이후 감자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건조기에 말린 후 분쇄해 분말을 만든다. 생감자 10Kg으로 감자 분말 1Kg을 제조할 수 있으며, 다시 감자 분말 1Kg으로 화장품 4Kg을 제조할 수 있다.


엄대표는 분말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모된다고 설명했다. 6월 말부터 감자가 제철이라 보통 7~8월에 앞으로 사용할 감자 분말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 놓는다. 여기까지 제조된 감자 분말을 한방추출물 등 각종 시료와 섞어 감자화장품을 제조하는 과정에는 총 3일이 소요된다. 화장품을 제조한 후에는 박스에 담아 포장하는 일이 남았다. 엄 대표와 아내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돈이 없어도 마음이 편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말했다. 빚을 내 시작한 사업이라 불안감이 컸고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앞선 연유에서다.


그러나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며 “영업소를 한 두군데씩 넓히고 미용실이나 약국 판매 경로를 확보하는 일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지금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는 마케팅이다. 지금처럼 고객들의 입소문이 전파돼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 당기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농협이 주최한 국제테니스대회 참가차 영월에 방문한 한 테니스팀 감독이 비단생의 감자샴푸를 써 보고 효과를 보자 선수들에게 150세트를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또 명절이 되면 영월군수 등이 강원도 감자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선물용 감자 화장품 세트를 대량 주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 대표는 스스로 제품 홍보와 판로 확보에 나서는 일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그는 또 한편으로 우리 농산물이 1차 유통에 그치지 않고 더 넓게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가격 폭락으로 농가에서 몇 천톤씩 썩히는 감자를 보면 그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따라서 감자를 비롯한 농산물을 활용해 몸에 좋고 부작용 없는 천연 가공품을 제조하는 작업이 확산되기를 그는 진심으로 바란다.


더불어 인생 2막에 남들보다 일찍 뛰어든 그는 남은 에너지를 전부 감자 사업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감자 가공업을 프랜차이즈 개념으로 확대하고 감자화장품이 유명해지면 향후 이 지역이 관광 목적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관광객이 직접 감자 가공 공장에 방문해 감자팩 체험도 하고 화장품 제조 과정도 지켜보는 등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지금은 농가가 많이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2차, 3차 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감자와 관련된 산업의 클러스터화로 지역에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각오를 밝히는 엄 대표. 그의 감자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지역 사랑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코노믹 리뷰 백가혜 기자 lita@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