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 신한은행 여자농구단서 지도자로 첫 발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그는 이미 한 차례 은퇴를 한 '전력'이 있었다. 2004년 1월 딸 수빈이를 임신한 뒤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은퇴를 선언했었다. 당시 "코트로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말도 안된다고 깔깔 웃던 그였다.
하지만 2006년 화려하게 복귀했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신한은행의 5년 연속 통합우승의 전설을 썼다. 그리고 미련없이 코트를 떠났다. "이번에도 또 은퇴 번복하는 것 아니냐"고 짓궂게 묻자 "이번엔 정말 은퇴"라며 7년 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여자농구의 레전드' 전주원(39ㆍ신한은행)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11일은 그가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첫발을 내딛는 날. 코트가 아닌 벤치에서 '농구인생 2막'을 시원하게 열어젖힌 그를 만났다.
엄마 전주원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의 은퇴를 제일 반긴 사람은 친정엄마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의 권유로 처음 농구공을 잡은 초등학교 때부터 극구 반대하던 분이었다. 은퇴했다가 2006년 복귀할 땐 '1년만 하고 말겠지' 했는데 1년, 또 1년 선수 생활이 연장되자 딸을 걱정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셨죠. 제가 무릎수술을 4번이나 했어요. 무릎 연골이 다 닳아없어져서 뛸 때마다 뼈끼리 부딪혀 너무너무 아팠거든요. 은퇴하면 이제 아프지 않으니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죠. 가장 아쉬워 한 사람이요? 딸 수빈이요, 하하."
뜻밖이었다. 1년에 절반 이상이 합숙인 엄마와 이제 마음껏 얼굴 부비고 엄마 냄새 맡으며 지내게 돼 기뻐할 줄 알았더니.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수빈이는 옆에서 가만 듣고 있다가 "은퇴하면 이제 엄마 TV에 안나오잖아요" 한다. "엄마가 유명해서 친구들이랑 친구들 엄마가 다 알아보고 얘기 많이 해주거든요" 하며 또 배시시 웃는다.
"사실 1년 정도 더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정선민 등 고참들이 빠져나간 데다 임달식 감독님도 출전 시간을 조절해 준다고 하셨고. 그런데 1년 뒤에 은퇴한다고 해서 그때라고 아쉽지 않겠어요? 그래서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자고 결심했죠. 7년 전에 은퇴했을 땐 내 의지가 아니라 임신한 상황이어서 그랬지만, 이번엔 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고 박수쳐주며 하는 은퇴여서 조금의 미련도 없어요."
결혼 전에는 '농구가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을 갖고 뛰었다면 결혼하고 수빈이를 낳으면서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자'는 생각이 컸다. 그는 "수빈이가 엄마 농구 그렇게 못하면서 나도 안봐줄 거냐고 타박하면 어떡해요. 정말 수빈이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하자, 옆에서 듣던 수빈이가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한다.
전설 전주원 "임신한 줄 알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는 "말년이 좋았다"며 웃는다. 1991년 실업농구 현대에 입단하자마자 코트를 휘어잡는 야무진 플레이로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데뷔 첫해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이후 꼬박꼬박 베스트5, 어시스트상을 수상했다. 국가대표로도 화려했다. 두 차례 아시아선수권대회(1992년, 1999년) 우승을 경험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4강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당시 전주원은 쿠바와 8강전에서 남녀 농구 통틀어 첫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는 기쁨도 맛봤다. 하지만 소속팀 성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해마다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다른 팀을 보며 박수만 칠 뿐이었다. 그 와중에 팀 해체, 팀 매각의 소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렸다. 구단 재정 악화로 선수들과 여관을 전전하며 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퇴-복귀 후 상황은 역전됐다. 은퇴를 하고나서 신한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팀은 그해 겨울리그 최하위에 머물더니 전주원이 복귀한 후부터 5연속 통합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한다.
"현대 시절 너무나 우승하고 싶은데 우승을 못하니까 사람이 지치더라고요. 그때 절실하게 우승을 갈망해서인지 말년에 좋은 후배들 만나 좋은 성적 거두고 은퇴하네요. 저는 참 운이 좋은 거같아요. 하는 거에 비해 많이 도와주시거든요. 인복이 많아요."
선수 시절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묻자 가만히 생각하더니, "사실 2004년에 수빈이를 임신한 줄 알면서도 경기에 뛰었다"고 고백한다.
"아테네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는 중요한 대회였어요. 그런데 느낌이 오는 거에요. 아, 임신인 것같다. 그런데 도저히 경기를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나 임신인 것같은데 경기는 끝까지 뛸 거다. 말리지 마라'고 했죠. 이 사실이 알려졌으면 다들 미쳤다고 했을 거에요. 결국 티켓을 따고(대만과 3-4위전서 88-59 대승) 곧바로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숙소로 갔죠. 임신이었죠."(웃음)
코치 전주원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배우겠다"
은퇴했는데 선수 때보다 더 바빠졌다. 올해 우송대 스포츠건강관리학부에 편입해 주중에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학업에 매진한다. 또 새롭게 시작될 '코치 전주원'으로서는 어떻게 첫발을 내디딜까 고민도 많다.
"코치로는 완전 초보잖아요. 감독님 하시는 거 옆에서 잘 보고 배워야죠.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ABC부터 다시 배우고 싶어요."
일 욕심도 많고 작은 거 하나 놓치기 싫어하는 완벽주의의 그는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말을 잇는다.
"솔직히 딱 은퇴하니까 서운하고 아쉽기도 해요. 그런데 잘 나지도 않은 내 이름 석자 '전주원'을 내 어깨에서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요. 제가 게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스타일이거든요. 성격이에요. 게임이 안되면 감독님을 잘 보필하지 못해서 그런가, 후배들은 어떻게 다독여야 하지 하며 스스로 저를 괴롭혀요. 그 스트레스가 참 컸는데 이제 다 내려놓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앗, 그러고 보니 코치를 하면 또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겠네요. 다시 또 나를 괴롭힐 것 같네요, 하하."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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