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경영 36년… 완숙경영의 끝은 따뜻한 세상 만드는 것
지난 1월 28일 서울 전농동의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 안은 시끌벅적 소란스러웠다. 주홍색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 수십 명이 채소를 다듬고 전을 부치고 있었다.
600여 명의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을 위해 밥과 반찬을 만드는 중이었다. 쉴 새 없이 들리는 도마 위 칼질 소리,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 나물 씻는 소리에 정성이 섞였다.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요” “응~잘 먹을게.” 갓 지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그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은발의 노신사. 식판에 밥을 담고 배식을 하며 생기 있게 발을 누볐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로 지칠 법도 한데 힘들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만면에 웃음과 화색이 도는 걸 보니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체력도 좋은가 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맛있게 식사하는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 신사가 동아제약 강신호(84) 회장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제약사 수장인 그는 1975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올해로 경영인이 된지 36년이 된다. 세상은 그를 ‘화려한 성공 기업가’로 바라본다.
그러나 인생의 완숙기에 접어든 ‘인간 강신호’ 삶의 본격적인 화두는 이제 기업 경영보다 나눔 경영이었다. 나눔이 주는 따뜻함과 행복함을 알았기 때문일 게다. 주름진 이마 사이사이로 맺힌 그의 땀방울 만큼 아름답고 값진 게 또 있을까 싶었다.
쪽방촌 경험이 기업 책임 깨달음으로
2월 21일 서울 창신동 쪽방촌에서 동아제약 임직원 10여 명과 함께 강 회장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쪽방촌은 극빈자들이 낡고 오래된 한 평짜리 방 한 칸에 의지해 근근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의 쌀’을 지원하고 있다. 강 회장은 처음 쪽방촌에 들렀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했다. 세상에 이렇게 허름한 집은 처음 봤단다. 두 사람이 못 누울 정도로 비좁은 데다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어려운 환경임에도 인심은 좋더라. 한 할머니가 음료수 한 병을 손에 쥐어 줄 때는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고. 너무 마음이 아파 쪽방촌 무료 의료지원 시설인 성요셉병원에 찾아가 1억 원 상당의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기증했다고 한다.
“남에게 봉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흐릿할 만큼 강 회장과 나눔과의 인연은 깊다. ‘박카스 신화’의 주역, 80대 현역 기업인, 의학박사, 29·30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이처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강 회장의 이력에는 가치 있는 한 줄이 더 추가된다. 나눔 경영인. 그리고 ‘밥퍼 노신사’에 이은 ‘쪽방촌 할아버지’까지.
그는 동대문구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맡아 저소득 가정과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바자회 개최, 문화탐방 후원, 연탄 배달, 쌀 기증 등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지방 출장을 가면 지역 내 장애인시설이나 초등학교를 꼭 찾아 개별적으로도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 때문에? 나누면 나눌수록, 도우면 도울수록, 더 많이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법. 강 회장은 세상은 불공평하고 괴로움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한 쪽엔 밝음과 희망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을 게다. 그래서 고령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나눔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강 회장을 선봉장으로 동아제약 임직원들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 커뮤니티 곳곳에서 자발적인 봉사를 펼친다. 아예 동아제약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연수 교육 때, 지체부자유아동 시설인 향림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게 의무다.
‘함께하는 따뜻한 밝은 세상’ 슬로건
“좋은 기업이 되려면 경제적 성과 못지않게 사회적 책무도 다해야 합니다. 기업도 사회나 시대 요구에 부응해야 상생할 수 있어요.”
인간의 생명과 건강·복지 향상을 다루는 제약기업으로서 동아제약이 갖는 책임감은 유달리 강할 수밖에 없을 터. 강 회장과 동아제약은 장학사업, 의학 분야에 대한 학술지원사업을 비롯해 박카스배 전국시도학생 골프대회, 청소년 환경사랑 생명사랑 교실, 대학생 국토대장정, 한일축제한마당과 같은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해나가는 중이다.
사회공헌을 많이 할수록 사회적 평판이 좋아지고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따뜻한 세상, 함께하는 세상, 밝은 세상’이 그가 내건 사회공헌 캐치프레이즈다.
대표적인 게 ‘박카스와 함께하는 대학생 국토대장정’. 젊은이들의 도전과 열정을 상징하는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 참가자들이 20박 21일 동안 600km가 넘는 길을 걷는다. 국토대장정의 ‘원조’로 불리는 이 행사는 매년 2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지원해 평균 100대1이 넘는 치열한 경쟁까지 벌일 만큼 인기가 높다.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후회와 원망을 할 수도 있겠죠. 무더운 날씨 속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걸으면서 혹시라도 좌절할지 모르겠다는 염려도 들 거예요. 젊은 대원들은 이 행사를 통해 세상의 어떠한 고난과 역정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게 되는 겁니다.” 강 회장이 행사위원장을 맡아 올해도 열 네 번째 국토대장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강 회장은 인생의 쓴맛을 너무 일찍 본 아이들과 오랜 기간 신산한 삶을 살아온 노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경영 활동 못지 않게 나눔에도 큰 정성을 쏟고 있는 그다. 누군가 그랬다. 발뒤꿈치를 들고 담장 너머를 바라봤더니 세상이 너무 아름답더라고.
강신호 회장의 ‘네버엔딩’ 나눔 스토리
■수석문화재단 청소년 장학사업(현 재단 이사장)
■동대문구사회복지협의회 사회공헌 활동 참여(현 협의회 회장)
■청량리 다일공동체 밥퍼나눔 봉사활동
■동대문구사회복지협의회 주최 ‘사랑나눔 바자회’ 참여
■동대문구 관내 불우이웃 동계철 대비 연탄 배달
■장애아동 및 결식아동을 대상으로 쌀과 후원금 전달
■저소득가정 자녀 문화탐방 후원
■나사로의 집(쪽방촌) ‘사랑의 쌀’ 기부
■태안반도 기름유출 기름제거 활동
■한국장애인부모회후원회 주최 ‘사랑의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 후원(현 후원회 상임고문)
■지방 출장 시 지역 내 장애인시설 및 초등학교 방문·개별 후원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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