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독서디자이너’ 다이애나 홍
20년 내공 밑거름 DH독서법 개발, 유쾌·상쾌·통쾌 독서경영 지혜 전파
검은색 원피스, 지적인 단발머리, 웃는 인상의 단아한 얼굴과 체형.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한국독서경영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난 다이애나 홍 원장은 한마디로 ‘유쾌한 여자’였다. 이 유쾌함은 웃음과 지성이 한데 어우러져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10여 년간 삼성, 포스코, 농심 등 대기업을 비롯해 서울대, 연세대, 기획재정부, 통일부, 김해시청 등 대학교와 관공서를 종횡무진하며 강의해 온 그가 독서코치 1인자로 이름 날리는 이유를 알겠다.
책 얘기는 왠지 딱딱하고 따분할 것만 같은 편견이 사정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듣고 웃고 말하다 보면 어느덧 책 속에 신나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대단한 흡입력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책 읽기의 달인’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1호 독서 디자이너’라는 선구자답게 20여 년간 독서 디자인·독서경영만 해 온 ‘선수 중의 선수’.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군요.
사실 독서디자이너가 뭐 하는 직업인지 잘 와닿지 않는 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책을 멋지게 디자인하는 줄 오해하기도 해요. 감성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이런 책,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는 저런 책, 초등학생과 청소년 또 기업체 CEO나 직원들, 세대별로 각자에게 어떤 책을 권하면 좋을지 코치하는 게 제 일이죠. 고민을 해결하고 싶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을 때 책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책 읽기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 줄 한 줄 너무 음미하다 보니 진도가 느리다거나 바쁘고 시간 내기 힘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거나…. 독서의 달인이 되기 위한 ‘비기(秘技)’를 소개해 주시죠.”
기자가 묻자 약간 정색하며 대답했다. “항상 받는 질문인데 정답은 없다는 거예요.” 헉, 이게 아닌데. 그의 입에서 특별한 답을 기대한 터였다. “독서는 곧 행복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책을 찾으면 됩니다. 그 책을 어떻게 찾느냐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먹는 것과 같은 거예요. 오늘 매운탕이 당긴다면 당기는 걸 먹어야 하듯이 철학이 좋다면 철학책, 소설이 재밌으면 소설책을 보면 됩니다.”
그는 관심이 가는 책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베스트셀러 추천 책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겁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예요. 대중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나만의 베스트셀러를 찾아야죠. 문제는 이도 저도 흥미가 없는 건데, 이럴 땐 저와 같은 독서 코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반전(反轉). ‘한 시간에 한 권 읽기’란 명제 하에 그가 직접 개발한 ‘DH(Diana Hong) 독서법’은 이렇다. 1단계는 목적과 호기심을 갖는 프리뷰(preview) 단계다. 10분간 책의 표지, 프롤로그, 에필로그, 목차 등에서 콘셉트와 저자, 핵심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 2단계는 하트 리딩(heart reading). 40분 정도 투자한다.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저자를 만나는 과정이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정독해야 하는데 가슴으로 읽되, 불필요한 가지는 과감하게 잘라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독서를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건강한 가지를 찾아 제대로 읽어야 한다. 3단계는 스키밍(skimming)을 10분간 진행한다. 반복 읽기 및 완성 읽기를 하는 되새김질이다. “아하, 그렇구나!” 느낀 부분에 형광펜과 종이 스티커로 표시를 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장을 책의 여백에 한 번 더 써보는 것도 좋다. “독서광들의 책에는 많은 글들이 적혀 있어요. 직접 기록한 좋은 문장들은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이죠. 좋은 글귀는 얼굴 표정을 밝고 맑게 가꿔 줍니다.”
홍 원장 자신은 어떻게 독서를 하는지 궁금했다. 한번에 15권가량의 책을 사서 주간 20권 정도, 한 달이면 60~70권을 독파하고 있다. 갑자기 그가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이라며 책 한 권을 펼쳐 보였다. 제목은 이해인 수녀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역시 그가 보는 책에도 수험생 문제집을 방불케 하는 메모와 문장들이 매 페이지마다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종이 스티커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와~대단하다”란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홍 원장은 책 읽는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며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독서경영을 하고 독서하는 기업이 장수한다는 것.
“위기일발 돌파구는 책 속에 있죠”
“저는 책을 매우 전투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앞쪽에 언제 어디서 책읽기를 시작했는지 기록하고 읽으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그때그때마다 적습니다.
초기에는 완독하면 맨 앞장에 줄거리나 핵심을 요약해 써 놨는데 나중엔 나도 모르게 순간의 아이디어들을 적고 있더라고요. 변해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해요. ‘낙서’를 많이 하기 때문에 절대 빌리지 않고 반드시 직접 사서 읽습니다.” 종교를 물어보면 ‘독서교’라 주저 없이 대답한다는 그는 ‘책에 십일조 하자’가 신념이라고.
“아이디어가 돈인 시대잖아요. 책 덕분에 얻게 된 영감과 아이디어로 독서친구 찾기 프로그램. 독서 골든벨, 독서 코디네이터 양성 과정 등을 만들었어요. 이게 바로 책이 준 가장 좋은 선물이지 뭐겠어요?”
‘책 읽는 자’가 성공하고 승리하는 세상이다. 무슨 소리냐고?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우리 마을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밝힐 만큼 소문난 독서광인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사례가 그랬다. 그는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임을 강조했다.
그뿐인가. 위기일발 돌파구도 독서에서 나온다. 최초의 흑인 앵커이자 인기 프로그램 ‘오프라 윈프리 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오프라 윈프리. 어려웠던 젊은 시절의 고난을 독서로 극복했다.
지금은 미국을 책 읽는 나라로 만들며 독서운동가로 활약 중이다. 다독과 다작을 강조한 공병호 소장, 책을 벗 삼으라고 한 성악가 조수미씨, 책 읽기와 글쓰기가 취미인 안철수 교수도 있다. 독서란 이런 것이다.
홍 원장은 “독서는 영혼의 마사지요, 꿈을 키워주는 자양분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망원경”이라고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그 사람을 바꾸는 건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을 건드리는 게 바로 책이다.
책으로 운명을 바꾼 사람, 성공한 기업이 주변에 있는지 물었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 얘기부터 꺼냈다. “책만 보면 잠이 오는 사람이 제 남편입니다. 부도가 나면서 사업에 실패한 후 제 권유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한 달에 8~9권 정도. 제가 읽은 내용을 전하는 ‘전달 독서’도 틈틈이 했죠. 그러더니 남편이 변하더라고요.”
홍 원장은 “책 읽는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며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독서경영을 하고 독서하는 기업이 장수한다는 것. 선진그룹을 예로 들었다. 자본금 2700만 원으로 오늘날의 큰 기업으로 키운 원동력은 ‘책에 반 미치고 일에 반 미치면 된다’는 박성수 회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직원들에게도 독서의 힘을 강조, 일은 소홀히 해도 좋을지언정 책읽기는 철저해야 한다며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홍 원장의 강의에 반한 박 회장이 “우리 회사에서도 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와 3년째 코칭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AIP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주임 교수로 있던 손욱 전 농심 회장은 홍 원장에게 “노조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좋은 방법이 없겠냐”며 의견을 구했고 그는 “좋은 책을 읽으면 다 해결된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사업과 관련해 만성적으로 시달리는 CEO들의 불안감도 책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독서경영도 여기서 출발했단다. 이런 인연으로 농심에서 독서경영 특강을 하게 됐다. “농심의 독서경영이 큰 빛을 발한 것은 회사의 운명을 뒤흔들었던 ‘생쥐깡 파문’ 때였어요. 인기 제품 ‘새우깡’에서 이물질이 발견돼 오명을 듣게 된 사건이죠. 당시 손 회장은 전국의 농심 공장을 일일이 돌며 위기일수록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서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고 해요.”
4년 전, 홍 원장의 회사 강의를 계기로 꾸준히 독서하고 있다는 포스코ICT 이승주 상무. 그 결과 ‘그냥’ 직원에서 중요한 부서의 ‘핵심’ 직원으로 거듭났고 가정도 화목하게 됐다고 한다.
“60대 중반의 어느 회장님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1:1 독서 코칭을 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죠.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기울어져 가던 회사도 점점 살아나게 됐답니다. DH독서법을 배운 뒤로 독서량이 한 달에 2배나 늘어 ‘1년에 500권 읽기’를 목표로 세운 서울대 AIP독서클럽 회장 이창욱 멀티웨이브 대표도 있네요.”
이들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열렬한 팬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읽어라’가 아니라 ‘읽고 싶게 만드는’ ‘다이애나 홍’표 경쟁력에 있었다. 그런데 독서가 정말 기업문화에 어떤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걸까.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책이며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생각지도 않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창의력 성장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게 홍 원장의 설명이다.
“성공하는 기업은 다른 게 아닙니다. 배려와 사랑이 넘칠 때 그 회사는 잘 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책은 직원들을 엮어주는 하나의 끈이죠.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독서클럽을 실시해 직원 간 유대관계가 끈끈해지는 것을 경험하곤 해요. 이것이 바로 성공 기업의 비결입니다. 기업의 튼튼함은 매출이 다가 아니에요.”
홍 원장은 또 “독서발표와 독서토론이 회사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산케 하는 가장 훌륭한 장을 만들어 준다”고 덧붙였다.
바이올린 배워 독서음악회 준비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숨이 막힐 때마다 살기 위해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홍 원장이 밝힌 사연이다. 독서는 자신의 행복이며 책에 감사하다는 그. 책과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 “어떡하다 보니 아르바이트하던 영어학원에서 원장을 맡았어요. 꽤 규모가 큰 곳이었는데 한참 어린 나이에 경영을 하게 된 거죠.”
그가 스물 두 살 때를 회상했다. ‘다이애나’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가 책이었어요. 읽고 나면 시원하고 웃고 행복해졌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책을 추천해 주면 도움이 많이 됐다며 좋아했어요.” 남편의 사업 실패는 그의 운명을 바꾼 터닝 포인트가 됐다.
“날마다 빚쟁이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17년간 하던 학원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실업자로 방황하던 저를 재기할 수 있게 도와준 게 책이었죠. 내가 잘하고 좋아하면서 다른 이를 돕는 책 읽기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번뜩 스친 단어가 ‘독서경영’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독서토론이 전부였단다. 2006년 그는 독서경영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본격적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리처드 코치의 <스타 비즈니스 법칙>란 책에서 독서경영의 미래를 확신했단다. 그리고 다이애나 홍만의 색깔을 입힌 독서경영을 개발해냈다. 얼마 되지 않아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의 독서 코칭은 날로 인기를 얻었고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스타 강사가 된 성공으로 인해 그를 벤치마킹하는 이들도 여럿 생겨났다. “제게는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만의 차별성이 뚜렷해서죠. 독서경영 전문가는 단기적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20년 가까이 되는 오랜 경험을 쌓은 저처럼 깊은 내공이 필요하거든요.”
홍 원장은 <다이애나 홍의 독서향기> <책을 안 읽으니 바쁠 수밖에> <책 읽기의 즐거움> <책 속의 향기가 운명을 바꾼다> 등 책도 여러 권 냈다. “독서경영은 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품격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죠.”
그의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 잠시 잊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책으로 가득한 사무실 풍경 한 가운데에 놓인 예상 밖의 물건. “바이올린 연주하세요?” 그는 “요즘 맹연습 중”이라며 “어깨가 아프고 힘들어 몸살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짐 콜린스가 쓴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를 보면 자기 자신이 최고가 됐다고 생각할 때 이미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섬뜩했어요. 나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계속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이올린도 그래서 배우게 된 것이죠.”
그가 직접 바이올린을 가져와 켜보며 노래를 불렀는데 잠시 후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술잔을 부딪치며 찬찬찬~.” 클래식 음악일 줄 알았는데 트로트였던 것. 또 하나의 반전이었다. 그러더니 ‘어쩌다 마주친 그대’까지 이어 달렸다. 애창곡이란다. 지금은 ‘아리랑’을 연습하고 있다고. “원래 음악을 좋아해요. 음악으로 가슴을 열게 하고 독서 강의를 하면 더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독서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과 음악, 참 잘 어울리지 않아요?”
10년 후 홍 원장이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50대 중반에 접어들 나이군요. 존경하는 신경숙 작가처럼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쓴 책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더 많이 읽고 더 깊은 내공을 쌓아야겠죠. 최근에 책을 집필 중인데 올해 두 권 정도 낼 계획이에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아야 된다는 부담감에 진도가 잘 나가진 않아요.”
그는 또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아프리카 오지에서 독서경영을 전파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책 속의 향기가 운명을 바꾼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 가슴속에 울려 퍼졌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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