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장악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구애(求愛)와 닮았다. ‘날 봐줘요, 나 이렇게 괜찮아요, 이런 나를 뽑고 싶지 않나요’ 라고 호소하는 노래와 눈빛은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치장하는 마음과 닮았다. 심사위원의 사소한 칭찬과 무심한 평가에도 금새 달아오르는 얼굴은 상대방의 말 한 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순정과 닮았다. 무엇보다 닮은 건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때로는 열렬히 구애했던 시간보다 끝내 거절당하는 마지막 순간에 보인 얼굴과 말 한마디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여기 소개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상적인 탈락 소감과 최후 변호에서 인생을 살면서 사랑 고백의 순간이든 구직 면접의 순간이든 수 없이 경험할 탈락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 보자.
백만 안티도 아군으로 만드는 쿨가이 형
“일단 울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로 한 95점을 받아봤으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아쉽긴 한데 좋은 무대 보여드렸다고 생각하고 후회 없이 가겠습니다.” - Mnet <슈퍼스타K 2> 강승윤
가장 어렵지만 일단 해낼 수만 있다면 미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차버린 걸 발등 찍으며 후회하게 만드는 멋진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 강승윤은 <슈퍼스타K 2> 3차 예선에서 처음 눈도장을 찍은 후 방송 내내 가능성과 아쉬운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모습으로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김지수가 떨어지고 강승윤이 TOP4에 들면서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은 최고조에 달했다. 바로 그 때 계속 강승윤을 지지한 윤종신의 도움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고 그는 탈락했다.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강승윤은 탈락의 순간, 쿨하게 웃었다. 비호감이던 이미지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화룡점정의 한 마디 : 안녕히 계↗세요. (엄마) 집에서 보입시더~<#10_LINE#>
곧 죽어도 자존심, 폼 빼면 시체 형
“뭐 굉장히 좋네요. 왜냐면 다음 주에 해야 될 노래 가사가 A4 용지로 한 장이 되거든요. 그리고 가수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 마땅치 않다 보니까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이 항상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다들 힘들어요.” - tvN <오페라스타> 신해철
울지 않는다. 그렇다고 담담하게 감사 인사만 하고 갈 수는 없다. 떨어지는 마당에도 할 말은 하고 가는 락 스피릿. 단, 본인은 솔직한 마음을 얘기한 것이라 해도 어떤 이들에겐 허세로 보일 수 있어 중도의 묘가 필수적이다. 신해철이 <오페라스타>에서 2회 만에 탈락한 것은 이변이었다. <오페라스타>가 신해철을 초반 이슈 메이커로 활용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심사위원들의 평이 이어지는 내내 양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아무 생각 없는데?”라며 삐딱한 태도를 보인 이 록 스타는 탈락의 순간에도 거침없다. 이미지에 더 좋을 것도 더 나쁠 것도 없는 딱 신해철 다운 탈락 소감.
실전 응용 편: 뭐 굉장히 좋아. 왜냐면 다음 주에 해야 할 화이트데이 이벤트가 샤넬 백에 수제 장미 백 송이였거든. 퇴근하고 대리운전이라도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굉장히 마음 편한 것 같아. <#10_LINE#>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건모가 떨어져서 슬프단 말야” 형
“내가 호명되는 순간 ‘내가 그렇게 못했나’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이벤트가 문제였던 것 같다. 의외의 결과가 나서 가슴이 아프다.” - MBC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김건모
떠나는 뒷모습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당사자의 힘만으로 안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어떤 이유에서든 “합의하에 헤어져놓고 드럽게 달라붙는” 순간 게임의 룰은 깨지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功)은 사라진다. 우리는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의 탈락 순간은 기억해도 탈락 소감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김건모의 잘못이 아니다. 이소라의 돌발 발언과 난데없는 ‘재도전’ 카드의 등장으로 당시 상황이 미쳐 돌아간 탓에 그는 멋지게 소감을 말할 무대를 잃었다. 탈락되는 당사자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없다. 탈락의 순간까지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며 몫임을 주위 사람도, 본인도 유념해야 한다.
추천 음악: UV ‘쿨하지 못해 미안해’
추천 시: 이상화의 ‘낙화’<#10_LINE#>
청순가련, 눈물의 최후변론 형
“지금 여기 있는 분들 중 소중하지 않은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한테 가능성이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전을 하는 게 맞겠고 그게 아니라면 흔치 않은 자리기 때문에 더 괜찮은 사람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MBC <우리들의 일밤> ‘신입사원’ 강미정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그 눈물이 당락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눈에 띄는 외모와 안정적인 발성을 가진 강미정은 ‘신입사원’에서 꽤 경쟁력 있는 지원자였다. 그러나 “장녀라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지 못 했던” 강미정은 재심사의 최종변론에서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했고, 이는 어떤 순간에도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에서 그녀가 탈락하는 이유가 되었다. <위대한 탄생>의 패자부활전에서 박원미가 아쉽게 탈락했던 이유 역시, 눈물이었다.
위로가 될지 모를 한 마디: 아나운서 말고 배우는 어떠세요? SBS <기적의 오디션>이 곧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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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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