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자. 수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이자 여러 편의 영화를 흥행시킨 배우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역설적이게도 평범함이다. 입만 열면 17대 1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고등학교 폭력써클의 ‘짱’ 일때도 (영화 <비트>) 여배우의 마음을 열고야만 야구심판일 때도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짝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차력쇼도 불사하는 대학생일 때도 (영화 <색즉시공>) 임창정은 평생 주목받을 일 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딘가 좀 모자라거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련을 겪게 되는 보통 남자가 필요한 영화에서 그는 늘 1순위였다.
3월 10일 개봉한 영화 <사랑이 무서워> 역시 그에게 흔히 기대할 수 있는 모습에서 출발한다. 짝사랑하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어떻게든 그 인연을 이어가려는 상열은 “<색즉시공>의 은식이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된” 버전이다. “상열이는 기존에 제가 했던 역할들이랑 비슷하고, <사랑이 무서워>도 제가 많이 했던 로맨틱 코미디의 느낌이에요.” 임창정은 ‘보통, 평범함’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이 무서워>는 보통 남자의 사랑 이야기예요. 짝사랑하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상열이가 겪게 되는 시련은 굉장히 슬프고 힘들어요. 물론 웃긴 장면도 많지만 영화는 상열이가 그런 힘든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보통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의 아픔을 어디까지 감싸주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계속 묻죠.” 그렇게 거의 언제나 밝고 따뜻한 영화에서 선의나 모자람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던 그이기에 스릴러 영화를 특히나 좋아하는 취향은 그 자체로 반전이었다. 다음의 반전영화들을 아직 접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머리싸움 끝에 탄생한 반전의 짜릿함을, 이미 즐긴 관객이라면 그 탁월함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보자.<#10_LINE#>
1. <식스센스> (The Sixth Sense)
1999년 | M. 나이트 샤말란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많이 보는 편이에요. 장르나 감독도 전혀 가리지 않는데 특히 좋아하는 건 스릴러예요. 언젠가 꼭 연기 해보고 싶은 장르기도 하구요. 액션 스릴러나 공포 스릴러도 보긴 하는데 일부러 찾아보진 않고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죠. 특히 <식스센스>는 보면서 이런 일이 정말 이 세상에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봐서 오래 기억에 남아요.”
물론 <식스센스>는 반전영화의 대명사다. 그러나 크로우 박사(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둘러싼 비밀을 알고 보더라도 충분히 스릴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진부한 공포영화의 클리셰들을 솜씨 좋게 요리하면서 자신만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아이의 입에게서 나오는 하얀 입김만으로 관객을 서늘한 충격으로 얼어붙게 한다.
2. <디 아더스> (The Others)
2001년 |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제일 좋아하는 영화 세 편 중에 하나예요.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주인공 가족들이 너무 불쌍하더라구요. 애처롭고.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어요. 이 세상에 진짜로 그런 일이 있진 않을까? 영화 볼 때 아무래도 배우니까 몰입이 더 되는 거 같아요. 배우들은 오히려 머리를 더 못 굴려요. (웃음) 슬픈 장면에선 일반 관객보단 더 많이 울고, 웃긴 장면에서는 더 많이 웃구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햇빛에 노출되면 안 되는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까지 건사해야 하는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그러나 아픈 아이들만큼이나 연약한 그녀를 도와주던 하인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낡은 저택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레이스는 집과 아이들을 지키려고 하지만 점점 그 집착이 그녀를 잡아먹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을 괴롭히던 존재와 마주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알게 된다.
3. <스켈리톤 키> (The Skeleton Key)
2005년 | 이언 소프트리
“<스켈리톤 키>는 여러분들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어떤 젊은 여자가 낯선 곳의 대저택에 그 집의 비밀을 파헤치러 가게 돼요. 집 주인이나 집사도 의심스럽고, 저 집에 악령이 들었나? 저 여자가 귀신인가 하면서 계속 의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예요.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하나로 그냥 죽여버려요. (웃음) 전혀 짐작 못한 반전이었어요.”
가장 최근작인 <스켈리톤 키>는 반전영화의 새로운 강자다. 영화제목을 검색하면 ‘스켈리톤 키 결말’이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로 이 영화 또한 마지막의 반전을 위해 오랫동안 포석을 깐다. 하우스 호러와 엑소시즘 등 공포영화의 고전적인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영화의 가장 강력한 주인공은 후반부의 반전이다.
4. <쏘우> (Saw)
2004년 | 제임스 왕
“이 영화도 1편의 성공으로 여러 편의 시리즈가 나왔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건 역시 <쏘우1>이죠. 이런 굉장한 반전이 있는 영화는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스트레스 해소가 많이 되는 거 같아요. 대개는 영화의 반전을 많이 짐작하려고 하는데 저는 그냥 그 자체를 즐기게 되더라구요. 특히 <쏘우1>는 그 마지막에 엄청나게 경악을 했죠. 그런 아이디어가 너무 좋더라구요. 저도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 느낌의 영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쏘우>는 보는 내내 충격을, 보고 난 후에는 뒤통수를 강타당한 얼얼함을 남기는 영화다. 밀실에 감금된 두 남자와 시체 한 구, 그리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 가족이 죽는 절체절명의 상황. 몇 가지 확실한 콘셉트만으로도 영화는 이후 6개의 시리즈를 탄생시킬 정도로 파괴력을 가진다.
5.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년 | 쥬세페 토르나토레
“<시네마 천국>에 반전이 있냐구요? 잘 생각해보면 반전이 있죠. (웃음)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알프레도가 토토의 미래를 위해서 풋내기 사랑을 방해한 거잖아요. 그런 알프레도의 바람을 나중에 토토가 알게 되구요. 알프레도가 키스신을 모아놓은 필름을 토토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나고, 그걸 보고 토토는 어린 시절을 다시 느끼고... 그게 아름다운 반전이죠. (웃음)”
토토와 알프레도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누비던 순간.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광장의 깜깜한 밤을 수놓던 영화들. 남녀가 조금만 가까워지는 장면이 나오면 세차게 흔들어대던 신부의 종.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마련해놓은 알프레도의 선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중년의 토토. <시네마 천국>은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신들이 추억 속의 명장면이다.<#10_LINE#>
“제가 많이 하는 장르의 영화들, 예를 들면 로맨틱 코미디나 코믹 영화의 감독님들이 저를 많이 찾아주시는 게 감사해요. 물론 저를 코믹전문배우라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전 그냥 배우니까 어떤 장르든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할 용의가 있어요. 저도 이제 조금씩 바꿔야죠. 관객들도 식상할 때가 됐잖아요. (웃음)” 임창정이 반전이 있는 영화들을 추천한 것은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서 자못 의미심장하다. 서른 편이 훌쩍 넘는 필모그래피에서 그는 하나의 장르에 가깝게 ‘임창정표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수없이 열연했지만 그 이상의 반전은 보여주지 못했다. 바로 지금이 그 스스로가 말했듯이 반전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바뀐다”는 임창정의 지론처럼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반전에 더 가까워질 그의 은식이와 상열이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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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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