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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나의 캐디편지] 무서운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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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봄바람이 계속 고객님들을 괴롭힙니다.


볼은 본 데로, 또 친 데로 가지도 않습니다. 그저 바람타고 휙휙 휘어져 관광만을 하고 다니죠. 앞바람이 부는 홀은 야속하게도 공이 뒤로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벗겨지는 모자 때문에 그린까지 걸어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어쩜 고객님들 얼굴에 미소가 한 가득일까요?

오히려 공 안 맞는 핑계거리가 있어 좋다고 하십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정신이 산만해지고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저희 코스에 특히 유명한 강풍이 한번 찾아오게 되면 캐디들은 오늘이라도 당장 근무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바람이 온 골프장을 초토화시켜 버리죠.


하지만 고객님들께선 매홀 바람이 힘들지가 않습니다. 힘들게 지난 앞바람 홀을 지나고 나면 뒷바람이 꼭 오기 때문이죠. 2온도 노릴 수 있는 파5홀이 나타난다고요. 그 홀만 기다리면 이전 홀에서 고생한 거 다 잊고 버디 찬스 만드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버디만 생각 하시면 힘이 불끈 솟는 우리 고객님들과의 라운드에서는 아무리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차마 얼굴을 찡그릴 수가 없습니다.


캐디일을 처음 시작할 때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고 들었습니다. 잘 되는 날이 있으면 안 되는 날도 있고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요. 고객님들께서는 비가오든 바람이 불든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 중의 하루라고 하십니다. 탓해 봤자 자연의 힘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작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또 그 속에서도 뭔가 재미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바람 많은 영종도에서의 캐디 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람과 싸우는 게 아니라 아마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풍 속에서의 라운드에도 얼굴에 미소를 가득 품은 고객님들은 항상 저에게 뭔가를 일깨워 주는 인생의 스승님 같습니다. 그런 고객님들이 계셔서 제가 영종도에서 이 바람과 함께 6년을 넘게 버텼나 봅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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