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조해수 기자]일본 후쿠시마 제 1원자력발전소 2호기에서 15일 오전 폭발음이 나와 1호기와 3호기에 이어 2호기 마저 외벽 붕괴에 따른 방사능 누출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5·6호기에도 냉각기 이상이 감지됐다. 특히 격납용기 파손에 따른 방사능 대량유출 우려도 커졌다. 격납용기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때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설비다. 이 설비에 일부 손상이 발견됐다는 것은 방사성 물질 봉쇄가 충분하게 기능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 원자력안전ㆍ보안원은 이날 오전 7시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 부근에서 매시간 965.5 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검출됐다고 전했다. 일반인들의 연간 피폭한도인 1천 마이크로시버트에 근접한 방사선량이다. 일본 원전사고의 향방이 예단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원전 공포감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제2의 체르노빌 사태 되나=일본 후쿠시마 원전 상황이 악화되면서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체르노빌 사고와 일본 원전 폭발은 전혀 다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아마노 유키야 사무총장은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IAEA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 원전은 체르노빌과 설계와 구조가 다르다"면서 "또한 지진이 강타한 뒤 자동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돼 방사능 유출 같은 연쇄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아마노 사무총장은 "후쿠시마 원전 위기는 체르노빌처럼 잘못된 설계나 인재 때문이 아닌 자연재해 탓"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리처드 웨이크 포드 핵전문가도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의 핵 폭발은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영국 스완시대학의 핵전문가인 존 기터스(John Gittus)도 "연료봉이 노출된 후쿠시마 원전 2호기에서 체르노빌과 같은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전혀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ㆍ터키ㆍ브라질 잇단 원전논란=일본 원전 사고 여파로 각국의 원전도입에 대한 부정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운전중인 원자력발전소는 27개국에 443기가 있으며 2030년까지 이 정도 규모인 약 430기의 원전이 신규 건설된다. 시장규모 1200조원의 원전르네상스가 이번 사고 여파로 셧다운(가동정지)될 처지에 놓였다.
일본은 당초 2030년까지 원전비중을 40%까지 늘리기로 하고 현재 건설 중인 4기에 추가로 12기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이번 사고로 원전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가동중인 13기의 원전에 27기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 중국은 후쿠시마사고로 계획을 재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에서도 일본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20기에 달하는 자국 원자로의 안전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이 아쿠유지역 원전 2기 수주를 위해 경합하는 터키에서는 1999년 강진으로 원전 외벽 건물이 폭발해 1만5000명이 숨진 사고를 떠올리며 원전건설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은 고속철과 함께 진행해온 초대형프로젝트인 원전건설이 반대벽에 부딪혔다. 브라질은 2019년과 2021년에 2기, 2023년과 2025년에 2기의 1000㎿급 원전을 건설하고 2030년까지 4기의 원전을 더 건설할 계획이다. 원전 기피국에서 원전정책의 재검토를 추진해온 독일은, 독일 내 17개 원전에 대한 안전검사를 실시한 뒤 이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면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4기의 원전을 가동하는 대표적인 원전지지국인 미국도 원전 논란이 한창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21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도 세워둔 상태다. 민주,공화당 등 여야 일부 의원들은 "일본 원전 사고 결과가 최종적으로 규명될 때까지는 미 행정부의 신규 원전건설 허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원자력 이용에 관한 정책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내 신규 원전ㆍ방폐장 건설도 차질 우려=21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원전 수출과 국내 원전건설에 나서는 국내 사정도 복잡하다. 14일 열린 국회 상임위에서 여야의원들은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기준을 강화해야하며 야당에서는 아예 원전 수출 등 원전 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주 중에 국내 원전안전에 대한 긴급점검을 통해 필요시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도 원전 안전성과 수출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새 원전 건설을 위한 부지로 삼척ㆍ영덕ㆍ울진 3곳을 상대로 △건설적합성 △부지안전성 △환경성 △주민수용성 등에 대한 평가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지자체 주민들 사이에서는 원전유치와 원전위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가동중인 원전은 규모 6.5를 견기지만 APR14000은 규모 8.0에 견디는 전 세계 최신이며 후쿠시마 원전이 1971년 건설된 단순 비등형 원자로인 것과 달리 우리 원자로는 4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최신형 가압형 원자로라는 측면에서 안전성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한차례 안전성 논란을 겪은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환경단체들은 현재 공사 중단과 안전성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방폐물공단 관계자는 "작년 6월 준공 예정이었으나 연약지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사기간을 30개월 연장했고 전문가와 지역공동협의회가 공동으로 검증 조사를 해 시공과정에서 안전성을 확보하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면서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조해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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