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벌이는 시원찮았다. 리어카를 끌고 하루종일 달동네를 돌아다니면 5천 원 정도를 벌었다. 비가 오거나 빙판길이 생기면 꼼짝없이 쉬어야 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1980년대 말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다들 잘 살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세 끼를 챙겨 먹는 건 호사였다. 감히 식당 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나마도 밥은커녕 라면만 먹었다. 달걀 하나 넣어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음악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녔다. 언젠가 음악가로 성공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개월을 일하고 몇십만 원을 모였다. 고물장사보다 일정한 벌이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떡볶이 포장마차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스무 살짜리가 뭘 알겠나. 그냥 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만 나온다.
리어카를 새로 사고, 목자재도 사와 직접 포장마차를 만들었다. 떡볶이 재료도, 그릇도 샀다. 온갖 고생을 다 해가며 장사준비를 마쳤다.
황당한 건 그때부터다. 막상 리어카를 끌고 버스 정류장에 나가보니 아뿔싸, 정작 제일 중요한 걸 준비 못 했다. 전기와 물을 어떻게 공급받을지 생각도 못한 거였다. 그저 포장마차 만들 생각만 했다. 그제 와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허망하게 장사는 망했고, 지금까지 모은 돈도 모두 날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빈혈까지 찾아왔다. 영양실조 때문이었다. 길을 걷다 그대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앞이 흐릿했다. 2.0이었던 시력이 빈혈을 앓은 뒤 0.1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심한 빈혈이 오면 '장님'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셈이다.
시력을 잃은 것도 서러웠지만 마음의 길을 잃은 것이 더 슬펐다. 달동네 지하방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보일러를 튼다는건 언감생심. 몸까지 아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포자기했다.
쌓여있던 울분은 비가 오면 터져나왔다. 빗소리에 묻혀 누가 듣지 못할 거란 생각에 소주를 마시고 대성통곡을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있는 힘껏 소리치며 울었다. 스무 살. 남들은 이제 대학에 들어가 해방감을 누리고, 첫사랑을 만나고, 꿈을 키워갈 나이였지만 어린 이선정의 가슴엔 어느덧 한이 맺혀 있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핫데뷔일기]이선정④ 스무 살 청년의 마음에 서린 한](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1022715021618706_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