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김태용 감독에 대한 첫 인상은 '소년 같다'는 것이다.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부드러운 듯 날카롭고, 조용한 듯 격정적인 그의 영화들과 상반된 느낌을 준다.
영화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여배우 탕웨이는 '만추' 출연 제의를 받고 만난 김태용 감독에 대해 "덩치는 큰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 속에 창작자의 뚝심과 고집을 갖고 있는 김태용 감독과 지난 17일 개봉한 '만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난 뒤 개봉까지 있었던 어려움은 사실 자세히 몰라요. 이렇게 개봉하고 나니 영화를 만든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라는 걸 많이 느끼게 됐습니다. 어떻게든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해결도 되고 결국 개봉도 되니 다행이죠."
영화 '만추'는 이만희 감독의 1966년 '만추'를 국내에서만 김수용, 김기영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일본 리메이크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다. 미국 시애틀을 배경인 이 영화는 남편을 살해한 뒤 수감된 여자 애나(탕웨이 분)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맞춰 72시간 동안 특별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훈(현빈 분)이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을 그린다.
"제작사인 보람엔터테인먼트의 이주익 대표가 먼저 제안해주신 작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몇십년 지난 원작을 어떻게 다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한국남자와 중국여자가 미국에서 만난다는 설정으로 진행됐습니다. 장소는 미국 내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 너무 건조하지도 팬시하거나 로맨틱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시애틀로 정했고요. 적정했던 것 같습니다."
'만추'에서 시애틀은 공간적 배경을 넘어서 두 주연배우와 함께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한다. 안개가 자욱하거나 비가 내리는 시애틀의 날씨는 주인공인 애나의 심리와 정확히 중첩된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시애틀의 날씨도 달라진다. 김우형 감독의 정교한 촬영과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안개 CG는 시애틀이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강하게 불어넣는다.
"촬영감독, 미술감독과 먼저 미국에 갔습니다. 1966년 원작 영화의 스틸에는 낙엽이 있지만 우리는 낙엽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3의 주인공인 시애틀의 축축한 느낌은 안개일 것이라는 데 동의했죠. 실제로 안개가 많기는 하지만 화면에 담기는 부족하기도 하고 톤을 맞추기 위해서 물리적으로든 CG로 안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애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여배우 캐스팅이 중요했다. 제작사는 일찍부터 탕웨이를 여주인공으로 결정했다. 김태용 감독은 "'색, 계'의 탕웨이보다 서너살 정도 더 성숙한 배우이기를 원했는데 실제로 만나니 애나 역에 가장 적절한 배우였다"고 회고했다. 문제는 남자배우였다.
"캐릭터상 잘생긴 배우가 필요했습니다. 대신 담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느끼하지 않아야 했어요. 추천을 받고 현빈을 만나보니 정말 담백해서 좋았습니다. 현빈은 애늙은이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속이 깊은 친구예요. 너무 진지해서 심심하기도 하죠. 성실하고 욕심도 많고 귀여운 구석도 있어요. 알 수 없는 쓸쓸한 모습도 있어서 훈의 캐릭터에 딱이었죠. '만추'는 두 인물의 눈빛에 의지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두 배우의 감수성이 중요했는데 탕웨이와 현빈에게 많은 부분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태용 감독은 '만추' 리메이크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미지의 '만추'를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볼 수가 없는 1966년 원작 '만추'와 최대한 닮게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무형의 '만추'를 찾아가는 것이 21세기 '만추'의 제작 과정이었다.
민규동 감독과 공동 연출한 '여고괴담 2'로 데뷔한 김태용 감독은 '가족의 탄생'과 '만추' 단 두 편으로 영화계에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사려 깊고 섬세한 김태용 감독만의 연출은 해외 주요 영화제들의 프로그래머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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