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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돈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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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주입이 낳은 부끄러움
'가치' 가르치는 공교육돼야


[뷰앤비전] 돈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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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학교 때 읽었던 심훈의 '상록수'를 다시 꺼내 읽었다.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소명에 자신을 오롯이 바친 젊은이들의 삶은 처음 읽은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학창 시절 내 또래들은 '상록수'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삶을 동경했다.

최근 '상록수'를 읽은 어느 중학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작품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 학생의 첫 대답은 "정말 신기해요"라는 말이었다. "많이 배웠으니 돈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런 힘든 삶을 선택했을까요?" 눈망울을 반짝이며 그 학생은 물었다. '멋진 삶'과 '신기한 삶' 사이에서 나는 아이에게 부끄러워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우리 또래가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작품은 시대에 따라 달리 읽을 수 있고, 독자에 따라 달리 읽을 수도 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작품에 동일한 생각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다. 또 학창 시절 그러한 주인공의 삶을 동경했다고 해서 모두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멋진 삶'과 '신기한 삶' 사이의 거리가 왜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그 학생의 대답은 최근 우리 교육이 놓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일반고 추첨 결과가 발표되었다. 고교 선택제가 실시되고 고등학교가 다양화되면서 많은 학교가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학교 홍보의 중요한 항목이자 고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은 바로 명문대 합격률이다. 이런 측면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최근 몇 년간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마치 고등학교 존립 자체가 명문대 합격에 있는 것인 양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육 환경이라면 자신의 안온한 삶을 뿌리치고 좀 더 높은 이상을 향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삶이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그 학생의 대답은 우리 교육이 암암리에 혹은 노골적으로 주입시킨 삶의 유형을 체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끄럽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따로 모아 관리하는 학교,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소수 우수 학생에게만 허락된 최신 시설의 학교 도서관, 오로지 점수, 석차, 등급, 명문대 합격생 수 등 입시와 관련된 숫자만이 살아 움직이는 학교,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그 속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성취할 수 있다고 계속 채찍질하는 교육만 선택할 것인가? 두려움이 몰려온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실현하기는 힘들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동경하는 것과 그런 유형의 삶 자체를 모르거나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 동경은 꿈을 머금게 하고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지만 포기는 인간이 사라진 교육만을 강요할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지, 그런 삶이 왜 행복한 삶인지 등을 아이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 학교는 어떤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지 질문할 권리가 있다.


학교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무엇을 중시하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지향할 수 있는지 등도 알려줄 의무, 교육할 의무, 그리고 꿈꾸게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학교 교육은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이기 때문이다.




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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