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잇따른 병역 비리에 연예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9월 20대 중반 유명 탤런트 A씨의 병역기피 의혹을 조사했다. 그 결과 수사팀은 허위 정신분열증으로 그가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혐의를 포착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2003년 6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대구 한 신경정신과를 오가며 정신분열 증세를 호소했다. 그는 장기간 약물 처방을 받은 끝에 병역을 면제받았다. 병역법상 6개월 이상의 신경정신과 치료 경력이 있거나 1개월 이상의 신경정신과 입원 기록이 있는 남자는 군복무에 지장이 있다 판단될 경우 그 의무를 덜 수 있다.
경찰은 지난 9월 A씨의 혐의를 포착했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도 동원하지 못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한 달 만에 수사를 종결지어야 했다. 2006년 정신질환 관련 병역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 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A씨는 법 개정에 앞서 면제 판정을 받았다. 법의 심판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셈이다.
재신검 , A씨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공소시효를 넘긴 사건은 경찰의 손을 떠나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의 목적인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손을 쓸 수 없는 건 병무청도 마찬가지. 병무청 관계자는 “경찰의 통보가 없다면 재신검을 명령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A씨의 병역비리가 사실이더라도 신검을 집행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2004년 연예계에 불어 닥쳤던 병역비리는 이와 다르게 매조지어졌다. 당시 송승헌, 장혁, 한재석은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지만 재검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세 배우는 자진 출두해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며 “병무청에 통보해 신검 절차를 밟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시효가 지나 셋 모두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A씨가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고 조사를 받을 경우 재신검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한 셈이다.
병무청 역시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수사기관의 통보만 있다면 재신검 명령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 절차는 송승헌, 장혁 등의 전례와 비슷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향후 사건의 방향은 결국 A씨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A씨의 자진 출두 가능성은?
하지만 A씨는 말이 없다. 소속사 역시 묵묵부답이다. 그는 두더지게임을 끝내고 대중의 망치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일까.
연예관계자들의 입장은 판이하게 갈린다. 엔터테인먼트 업에 종사하는 B씨는 “A씨가 위험천만한 무대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업계서 일하는 C씨 역시 “공소시효도 끝난 일이다. 굳이 자수하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는 대중의 따가워진 시선이 깊숙이 깔려있다. 연예인 병역비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핫 이슈다. 이는 지난 9월 인기가수 MC몽이 고의 병역 기피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며 절정으로 치달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그는 거짓 사유로 입영을 연기한 뒤 생니를 뽑아 병역을 면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법정공방으로 이어진 사태에 연예관계자들은 그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군 입대를 앞둔 연예인의 소속사 관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최근 훈련소에 입소한 톱스타 D씨의 소속사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입소 전 D씨는 한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곤욕을 치렀다. 이 매체가 통역 상의 실수로 ‘00월 내 훈련소에 입소한다’는 내용의 오보를 낸 까닭이다. 병무청으로부터 날짜를 통보받지 않았던 D씨의 소속사는 펄쩍 뛰었다. 서둘러 해당 매체에 해당 문구 삭제를 요청했다. 그런데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선 건 잘못된 날짜 때문이 아니었다. D씨의 소속사는 공익근무로 군복무를 대체한다는 점이 부각될까 더 전전긍긍했다. 당시 관계자는 “MC몽 등의 병역비리로 대중의 시선이 따가워졌다”며 “D씨가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지 못해 혹여 대중으로부터 지탄을 받을까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공정한 신검절차를 밟았다면 공익이든 면제든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이른바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연예인은 다르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D씨의 소속사가 입대 당일까지도 언론 공개 최소화를 위해 진땀을 흘린 이유다.
이 때문에 일부 연예관계자들은 A씨가 자진 출두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고 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에 종사하는 E씨는 “A씨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경찰에 자진 출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묵묵부답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연예인 생활을 접지 않을 거라면 대중에게 심판을 받고 반성하는 길, 하나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가요 관계자 F씨 역시 “A씨가 자신의 인생을 보다 넓게 내다볼 줄 안다면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연예인이 버젓이 활동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며 “A씨는 병역 비리에도 불구 재도약 발판 마련에 성공한 송승헌, 장혁의 사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건 공개와 함께 네티즌들은 A씨의 정체 파악에 나섰다.
그 시선에는 의문과 분노가 적절하게 뒤섞여있다. 언론 보도 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정신분열 증세를 겪은 자가 어떻게 다양한 연기를 구사할 수 있느냐”, “선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스스로 진실을 공개하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등의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마녀사냥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등의 추측성 발언에 대한 자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연예인 정화 장치, 이상 있다?
이번 사건은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연예계는 숱한 병역비리로 홍역을 치렀다. 사건이 끊이지 않은 건 연예계 내 부실한 정화 장치 탓이 크다. 연예 관계자 C씨는 “현실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며 “방송국 PD, 영화 제작자, TV CM 관계자 등이 그 잣대를 제시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연예계 관계자들은 그 개선 방안 고려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 등 대중문화산업 협회들이 각종 사회적 물의로 질타를 받고 있는 연예인들의 기강 잡기에 나섰다. 지난달 9월 30일 연제협은 “한국대중문화산업을 대표하는 협회들이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도덕적 문제와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스스로 개선하고 자정하기 위하여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과 함께 ‘윤리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윤리위원회는 앞으로 병역문제, 도박, 마약, 이중계약과 계약위반, 폭행 등 사회적·산업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과 기획사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묻고 개선과 자정을 꾀할 방침이다.
그런데 이는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제협 관계자는 “12월 내 위원장 선정 등 모든 작업을 마치기 위해 현재 타 단체들과 의견을 조율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연관된 타 단체 한 관계자는 “준비위원회만 구성했을 뿐이다”라며 “윤리위원회를 만들 지 여부조차 아직 불투명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내부적으로 윤리위원회를 운영하는 단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상벌조정 윤리위원회를 열고 진위 여부를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제재를 가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병역 비리 문제를 논의했던 기관은 한 곳도 없다. 한 단체 관계자는 “윤리위원회를 연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전례가 없다”며 “병역 비리가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지 조차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15명의 이사들이 모여 매달 초 회의를 갖는데, 그간 병역 비리는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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