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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철근값 분쟁] 가격주도권 건설사에 넘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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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인상 성공 반면 건자회 파트너 인정 등 더 많은 것 잃어
단합 결여로 문제의 본질 해결 못해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3주간 지속된 제강사와 건설사간 철근 공급 협상이 지난 19일 오후 극적으로 타결됐으나 제강업계는 또 다시 많은 것을 잃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9일 제강사와 건설업계 자재담당 모임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이하 건자회)는 협상을 통해 철근 납품 가격(고장력 10mm 기준)을 9월분 t당 75만원, 10월 77만원, 11월 76만원으로 최종 합의했다.


이번 사태는 현대제철 등 제강사들이 건설업계에 9월분 납품 철근은 t당 76만원, 10월분은 79만원까지 요구했으나 건자회측은 t당 71만원 이상은 줄 수 없다며 결제를 거부해 지난 1일부터 철강사들이 철근 공급을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지난해 이후 두 번째로 벌어진 사태였다.

건자회측은 지난 2일 t당 74만원까지 수용하겠다며 절충안은 제시했으나 제강사들은 9월 75만6000원, 10~11월 78만5000원을 고집해 타결이 지연돼왔다. 이에 건자회가 제강사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면서 20일부터 공급이 재개됐고 사태는 진정 국면을 맞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번 사태로 제강사들이 얻은 것은 일시적이라는 게 철강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끊임없이 제기돼 온 제강사들의 단합력 부족에서 벌어진,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단합력 부족, 건설사에 끌려가= 이번 사태가 벌어진 배경은 너무나 낮은 가격에 유통되는 철근 가격이다. 제강사들은 판매를 해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상을 시도하지 못한 이유는 ‘선 출하 후 정산’이라는 철근가격 결정시스템이었다.


철근은 건축·토목에 사용되는 소재로 가장 큰 고객은 당연히 건설사다. 매월 대규모 물량을 소비하기 때문에 철강사는 일단 예정된 물량을 건설사에 납품한 후 매월 말에 t당 가격을 결정해 건설사에 세금 계산서를 보낸다. 세금 계산서를 수취한 건설사는 이를 토대로 대금을 결제한다.


사실상 외상거래인 ‘선 출하 후 정산’은 건설 경기가 호황이었을 때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특히 제강사들은 ‘선 출하 후 정산’ 시스템을 통해 철근 가격 결정권을 주도해왔다. 타이트한 수급을 이유로 물량 수급에 총력을 기울이는 개별 건설사와 가격을 협상해 건설사의 힘을 분산시키면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 받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말부터 시작된 불경기는 이러한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건설·토목 경기가 최악을 맞아 업체들이 부도로 퇴출되고 물량 소요량도 급감하는 등 경영난을 겪으면서 철근 제품의 공급과잉 현상이 뚜렷해 진 것이다.


건설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제강사들의 철근 공장 가동률은 60~70%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가 지속됐다. ‘선 출하 후 정산’ 시스템 하에서는 회사의 최종적인 상황을 봐가며 월말이 돼서야 세금계산서에 써낼 가격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건설사가 아닌 동종업계인 다른 제강사의 가격 정책에 더 많이 신경쓸 수 밖에 없다.


◆건자회 영향력 봉쇄 실패= 여기서 건설사의 입장을 대변하며 수면위로 떠오른 협상 대상이 바로 건자회다. 건자회는 회원사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으며 철근가격 인상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반면 제강사들은 한국철강협회 등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사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단결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건자회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난해초부터 제강사들은 일정 부분 이상의 수익을 보전해 달라며 이를 반영한 세금계산서를 건설사에 보냈으나 건설사들은 건자회를 대표로 내세우며 오히려 세금 계산서 수취를 거부하는 등 강하게 거부했다.


참다 못한 제강사들이 지난해 하반기 일부 건설사들에 대해 철근 공급 중단을 시사하며 강공으로 맞서자 건자회는 일부 제강사 물량 구매 거부라는 카드로 맞섰다. 제강사들이 지속적으로 “건자회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건자회의 강공에 일부 제강사들이 손을 들고 건설사들의 요구에 따라 낮은 가격에 철근 출하에 나서면서 제강사는 뜻을 이루지 못한채 건설사에 판정패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올해 올 7월 주요 제강사들이 일제히 영업 적자로 돌아서면서 갈등은 또 다시 터졌다. 사태는 제강사의 가격 인상 시도 → 건설사의 세금 계산서 수취 거부 → 건자회 회원사의 일부 제강사 제품 구매 중단 → 제강사의 건자회 회원사 철근 공급 전면 중단이라는 상황까지 몰렸다.


11월초 공급 중단을 발표할 때만해도 제강사들은 “이번은 다르다”고 외치는 듯 보였다. 실제로 일부 건설사들은 철근 재고 부족으로 제강사들의 요구에 응하기 시작하면서 제강사들의 승리가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제강사도 그룹사 계열사 물량을 보내줘야 한다는 식의 이유로 건설사에 대한 공급을 계속했다.


이런 상황을 치밀하게 이용한 것은 다름 아닌 건자회다. 건자회는 제강사의 협상에서 가격 인상을 어느 정도 수용했다. 대신 향후 협상에서는 자신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공식 인정받는 성과를 거뒀다. 제강사가 가장 우려했던 건설업계 집단과 가격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철근 가격 협상은 수급보다는 원가 논리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건자회는 앞으로 제강사에 가격결정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제강사의 건설사의 요구를 과거에 비해 더 많이, 더 자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가격 결정권이 넘어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제강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채명석 기자 oricms@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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