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황용희 연예패트롤]누군가 말해주었다. 실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 말뿐이라고. '넌 소중한 사람이야' '너를 용서해' 그리고 '너를 사랑해'.”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세계인이 애창하는 '즐거운 나의 집'을 작곡한 존 하워드 페인은 단 한번도 집이나 가정을 가져본 적 없는 나그네였다.
이러한 소설 속 구절과 페인의 아이러니는 동명의 MBC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구절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멜로라는 보기드문 장르를 내세운 '즐거운 나의 집'은 김혜수, 황신혜, 신성우, 윤여정 등 주조연급 배우들의 호연과 매회 예측불허의 흥미진진한 전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깨진 부부간의 신뢰 관계와 불륜과 살인, 납치, 불신 등 무겁고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다. 경쟁작에 비해 저조한 시청률이 이를 반증한다.
성은필(김갑수 분)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그를 상담해주던 정신과 의사 김진서(김혜수 분)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한다. 진서의 남편 이상현(신성우 분)은 은필의 부인이자 모윤희(황신혜 분)와 불륜을 저질렀지만, 덩달아 이들은 은필의 죽음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진서와 은필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겉으론 화목해 보이는 진서와 상현, 번듯한 재력가 부부인 은필과 윤희도 실은 애정은 커녕 증오감만 가득하다.
더불어 재벌과 결혼한 윤희는 과거 주정뱅이 난봉꾼이었던 친아버지를 부정하지만, 그 아버지는 딸의 살인혐의를 좇는 진서를 협박하기 위해 그녀의 아들을 유괴한다. 이처럼 어떤 사회적 관계보다도 단단하게 묶여있어야 할 가족 관계는 ‘즐거운 나의 집’에서 모두 깨어지고 흩어져있다.
이에 일부 시청자들은 "제목은 '즐거운 나의 집'인데 하나도 즐겁지 않다", "불륜과 살인, 불신만 판치는 막장 드라마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제목과 인물 간 관계가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는 '즐거운 나의 집'을 시청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화목한 가정을 꿈꾸지만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남편 가족 혹은 아내 가족과의 불화로 대립하고 이에 작고 큰 균열이 생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이같은 현실과 세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놓고 보여주면서 날카롭게 비판할 뿐 아니라 이를 흥미진진한 추리극 속에 녹여낸다.
이처럼 ‘즐거운 나의 집’은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와 줄거리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보려 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란 평가를 받기 충분하다. '즐거운 나의 집' 오경훈PD 역시 "극단적인 설정이 막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막장은 설득력 개연성 없이 가정을 깨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설득력이 있다. 막장이 아닌 부부관계탐구로 보면 된다.”라고 설명한다.
모윤희의 아버지는 진서의 아들을 납치한 것처럼 꾸민 뒤 진서에게 협박 전화를 걸며 "부모에게 자식이란 참 소중한 존재지...그건 날 너무 늦게 깨달았어. 이제부터라도 아비 노릇 잘 해볼 생각이야"라고 말한다.
더불어 진서와 상현이 다투는 모습을 본 아들이 “엄마는 아빠랑 사랑해서 결혼했으면서...왜 사랑안해요”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해서 쉽게 넘길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대사들은 요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막장 드라마에 환멸감을 보이면서도 정작 우리 주변 사람들이나 가정에서는 막장보다 더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과거 이혼을 앞둔 부부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재구성해 큰 인기를 끌었던 '사랑과 전쟁'이 모두 허구가 아닌 실제 사연을 소재로 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그같은 의미에서 '즐거운 나의 집'은 최근 TV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미스터리 멜로라는 장르 외에도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을 뿐 아니라, 치밀한 스토리 구성과 주조연 배우의 호연까지 더해진 '즐거운 나의 집' 근래 보기드문 웰 메이드 드라마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왕이든 농부든 자기 가정에서 기쁨을 찾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괴테의 말을 우리 모두 실감하기 간절히 바란다'라는 '즐거운 나의 집'의 기획 의도는 이 드라마에 대한 매력을 바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스포츠투데이 황용희 기자 he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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