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말하자면 '실용(實用)'이 코드였다. 지난 8일부터 9일까지(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의 분위기는 '실용'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일단 과대포장을 걷어냈다. 연설 방식도 바꿨다. 190여개 회원국의 절반, 신청하는 나라마다 5~6분씩 주던 기조연설 시간도 확 줄였다. 개최국인 미국의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일정이 불확실한 때문이었는지 올해 총회에서 연설을 한 사람은 IMF총재, WB총재, 총회의장국대표 등 정확히 3명에 그쳤다. 나머지 참가국 대표들은 글이나 영상을 공유하는데 만족해야 만했다.
지난해만 해도 총회 첫 날은 연설문 읽다가 날이 샐 지경이었다. 90여개 국가가 5분씩, 약 7시간 반 동안 비슷비슷한 얘기를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올해는 소모적인 연설문 읽기를 패스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신 길게는 하루 이상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각 국 대표단이 귀한 토론 시간을 벌었다.
덩달아 각국 대표단 실무진도 부담을 확 덜었다. '중요한 잡무(雜務)'로 불리던 '장관 연설 앞 순서 따내기' 경쟁도 이제 옛일이 됐다. 장관이 연설하면 '박수부대'로 나서던 은행장들의 역할도 바뀌었다. 값비싼 비행기를 타고와 병풍 노릇을 하던 그 시간에 세계 각국 투자가들을 만나거나 다른 나라 은행장들과 정보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불과 1년 새 IMF는 이렇게 실용적인 집단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한국입장에서는 변화를 여유있게 반기기 힘든 상황이다. IMF와 각국 대표단이 폼 잡기를 포기하고 '단도직입(單刀直入)'을 택한 것은 바꿔 말해 폼잡을 시간조차 없다는 의미다.
이번 총회의 핵심 의제는 '환율전쟁'과 'IMF 쿼터개혁(지분 재조정)'이었다. 하지만 총회 후 채택된 성명에는 환율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예 빠져있었다. 모든 결정을 한 달 뒤 서울 G20 정상회의로 미룬 때문이다. 우리가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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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된 마당에 수세(守勢)에서 공세(攻勢)로 자세를 틀어보자는 견해도 들린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환율 전쟁터로 변할까 염려하는 대신 환율전쟁의 중재역할을 의장국인 한국이 아예 자처하고 나서자는 얘기다.
관건은 한국에 과연 그럴만한 힘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총회 후 한 정부 당국자는 되물었다. "중재를 한다, 말은 좋은데 이런거지요. 우리가 일본하고 통화 전쟁을 한다고 가정할때, 이 때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나서서 말리면 귀에 들어올까요?" 뾰족한 대안도 없이 째깍째깍 D-데이가 다가온다. 정부와 서울 G20준비위의 속도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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