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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명암 가른 연장 10회 잔혹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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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명암 가른 연장 10회 잔혹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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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9월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두산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은 박빙의 승부였다. 양 팀 모두 꺼내놓은 선발 카드가 통했다.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는 6회까지 7개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했다. 두산 김선우도 7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를 펼쳤다. 숨 막히는 투수전 속에 경기는 순식간에 연장으로 돌입했다.

1-1로 팽팽하던 10회초 롯데 공격.


무실점으로 9회를 틀어막은 두산 고창성은 더그아웃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등장한 건 김경문 감독이 ‘준 플레이오프 승부수’로 꼽은 정재훈이었다.

5-10으로 역전패한 1차전과 같은 패턴의 교체. 김경문 감독은 또 다시 모험을 택했다. 정재훈에게는 전날 패전투수의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는 경기 전 “이제 1차전이 끝났을 뿐이다”라며 “두 번째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습투구는 호언장담다웠다. 마운드에 선 정재훈은 힘차게 연습 투구를 뿌렸다. 포크볼의 떨어지는 각도가 무척 예리했다. 두산 팬들은 응원가를 부르며 그의 선전을 기대했다.


1차전에서 보인 정재훈의 투구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팀내 불펜투수들 가운데 가장 빼어났다. 특히 포크볼과 직구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 마냥 싱싱했다.


두 남자 명암 가른 연장 10회 잔혹한 승부


하지만 전날 패전의 후유증 탓일까. 그는 포수와의 사인교환에서 자주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그것은 신중을 기하는 태도였다. 정재훈은 전날 풀카운트 승부 끝에 전준우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맞은 타구는 실투였다. 그는 바랐다.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결과는 간절한 바람과 다른 양상의 보였다. 선두 타자 김주찬에게 3구째를 통타당했다.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고개를 돌린 정재훈은 이내 하늘을 쳐다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이유가 있었다. 김주찬은 투수들에게 골치 아픈 주자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빠른 발을 지녔다. 정규시즌서 기록한 도루는 무려 65개에 달했다.


하지만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연장전에 돌입한 이상 한 점이 급했다. 그래서 무리한 모험 대신 안전한 길을 택했다. 다음 타자 정보명에게 희생 번트 사인을 냈다. 무난하게 2루 베이스에 안착한 김주찬. 정재훈은 이내 다시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온기에는 안도와 불안이 뒤섞여있었다.


1사 주자 2루. 타석에 나선 건 주장 조성환이었다. 롯데 응원석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그럴 만도 했다. 앞선 타석까지 그는 팀 내 가장 빼어난 실력을 보였다. 3타수 2안타 1볼넷.


정재훈은 이내 모자의 창을 매만졌다. 이어지는 코치들의 현란한 사인. 그는 또다시 손을 모자로 가져갔다. 이내 모자를 살짝 벗은 뒤 다시 고쳐 썼다.


다소 불안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의 사인이 고의사구였다. 조성환을 내보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다음 타자와의 승부가 우려됐다. 대기타석에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거포 이대호가 한 손에 방망이를 든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남자 명암 가른 연장 10회 잔혹한 승부


정재훈은 전날 이대호와의 맞대결에서 삼진을 잡아냈다. 자신의 장기인 포크볼이 주효했다. 이날 앞선 4타석까지 안타도 전무했다. 충분히 해볼 만한 승부였다. 정규시즌 타격 7관왕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내심 마음에 걸렸겠지만 발톱 빠진 호랑이로 볼 수도 있었다. 발목이 온전치 못한 까닭이었다.


포수 용덕한의 엉덩이는 어느새 땅바닥이 아닌 중앙지정석을 향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으로 살짝 이동한 뒤 힘 빠진 공 4개를 연달아 받기 시작했다.


이내 잠실구장 응원석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롯데 쪽이 그러했다. “아니, 조성환 대신 이대호와 승부하겠다고?”, “정재훈, 쟤 간땡이가 부은 거 아냐”, “야 이놈아 지금 우리 무시하냐” 등 거친 발언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 같은 반응은 두산 쪽도 마찬가지. “지금 뭐하자는 거야”, “왜 이래. 불안하게” 등 불안 섞인 우려들이 응원곡 사이로 새어나왔다.


이내 이대호는 방망이를 휘두르며 유유히 타석에 들어섰다. 롯데 관중들은 곧 하나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연신 외쳤다.


2루 견제 모션을 취한 정재훈은 이내 초구를 던졌다. 볼이었다. 롯데 응원석 스피커에서 가수 유키스의 ‘만만하니’가 흘러나왔다. 이대호의 심정을 대변하는듯한 노래였다. 타석에서 벗어난 이대호는 시크한 표정으로 연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는 정재훈의 얼굴을 노려봤다.


정재훈은 그를 보지 않았다. 대신 용덕한을 보며 고개의 움직임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그는 두 번째 공을 던졌다.


‘딱’


타구는 높게 솟아올랐다. 그 곡선은 홈런을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낙하하는 공의 방향이 왼쪽으로 치우쳤다. 파울. 롯데 응원석에서 바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반면 두산에서는 ‘어휴’라는 안심 섞인 말이 곳곳에서 터졌나왔다.


두 남자 명암 가른 연장 10회 잔혹한 승부


정재훈과 유격수 손시헌도 타구를 쳐다보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롯데 더그아웃은 일순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기 바빴다. 긴장감은 그렇게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이후 양 팀의 응원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롯데 관중들은 하나된 목소리로 ‘만만하니’ 리듬에 맞춰 ‘야’라고 연신 소리쳤다. 이에 두산은 ‘왜’라고 큰 목소리로 응수했다. 롯데 응원석은 지지 않았다. 가수 미쓰에이가 부른 ‘배드 걸 굿 걸’의 한 구절 ‘입 다물어 소년(Shut up boy)!’을 연신 외쳐댔다.


전날 두산이 시구자로 초청한 미쓰에이의 노래. 아군의 곡을 적군에게 빼앗긴 두산은 가수 이효리가 부른 ‘치티치티뱅뱅’의 한 구절을 총알로 선택했다. 반복재생을 통해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라는 부분을 계속 틀어댔다.


주고받는 양 팀 관중들의 고성과 노래. 그 사이에 선 정재훈과 이대호는 귀머거리였다.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승부에 집중하기 바빴다.


정재훈은 조심스레 글러브 속에 공을 넣고 긴 손가락으로 포크볼 그립을 쥐었다. 자신의 주 무기로 이대호를 땅볼 처리하려는 속셈이었다. 크지 않은 와인드업 자세에 이은 힘찬 투구. 공은 정중앙을 향해 솟구치다 이내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왼다리를 땅에서 뗀 이대호의 눈에 그대로 포착됐다. 노린 건 아니었다. 떨어지는 순간 눈에 들어왔다. 이내 그는 강한 손목 힘을 이용해 방망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대호는 방망이를 집어던졌다. 1루로 몸을 틀고 뛰며 타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내 왼쪽 펜스를 넘어가는 공. 롯데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3점 홈런이었다.


1루 베이스 근처에서 홈런을 확인한 이대호는 공필성 1루 주루코치와 함께 어퍼컷을 날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2루 베이스로 향하는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2루와 3루 베이스 사이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외쳐주는 롯데 관중들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홈으로 뛰어오는 길은 김병주 심판이 닦아줬다. 홈런 생성 뒤 버려진 방망이를 직접 주워 경기장 밖으로 치워버렸다.


두 남자 명암 가른 연장 10회 잔혹한 승부 롯데 자이언츠(이대호)


이대호는 자신이 홈으로 불러들인 주자 김주찬, 조성환과 연이어 하이파이브를 시도한 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일렬로 서서 반겨주는 선수단. 마지막 강민호와 진한 포옹을 나눈 그는 다시 한 번 응원석을 향해 응원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있기 마련. 정재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 준 플레이오프는 그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더그아웃으로 퇴장하는 얼굴에는 포스트시즌 2패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침울함은 하얀 옷을 입은 선수들에게 유독 전염이 빨랐다. 주장 손시헌은 동갑내기 친구의 퇴장을 걱정스러운 듯 바라봤다. 오재원은 한 쪽 신발로 바닥을 긁으며 혼잣말을 했다.


먹구름은 두산 응원석도 마찬가지. 롯데의 자극적인 응원에 일일이 대응하던 모습은 멈춰졌다. 그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몇몇 여성 팬들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내 그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침체에 빠진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현승이 마운드에 오르자 그 소리는 더 커지기 시작했다. 외야관중석을 멍하게 바라보던 용덕한도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공을 받았다. 뜨겁게 타올랐던 잠실구장의 열기는 조금씩 쌀쌀한 칼바람에 동요되고 있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한윤종 기자 hyj0709@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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