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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치닫는 '한명숙 재판'..어디까지 왔나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김효진 기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검찰 간 법정 공방이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까지만을 놓고 보면 재판은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흐르는 분위기다.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이 검찰 조사 때와 다르거나 오락가락한 때문이다.

검찰은 뚜렷한 물증 없이 관련인 진술에 의존, 사건 수사를 진행했다. 이런 경우 법원은 진술 신빙성을 바탕으로 유무죄를 가릴 수밖에 없고, '진술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피고인 진술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법원이 "범죄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권고한 점도 이 같은 지적에 힘을 보탠다. 검찰의 기소 자체가 허술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핵심인물 곽영욱의 '갈지자(之)' 증언 = 검찰 입장에서 가장 불안한 건 뇌물 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의 핵심 인물, 곽 전 사장의 오락가락한 진술이다. 검찰 조사 때 '총리 공관에서 오찬을 한 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로 진술한 곽 전 사장은 법정에서 이와 전혀 다른 증언을 했다.

증인 신문이 본격 시작된 지난 11일 오후, 곽 전 사장은 기자들과 방청객이 가득 들어찬 공판에서 "오찬 끝나고 돈 봉투를 내 의자에 놓고 나왔다. 사전에 봉투를 한 전 총리에게 보여주진 않았다. 봉투를 누군가 가져갔는지는 보지 못 했다"고 증언한 뒤 꾸준히 같은 주장을 펼쳤다.


'돈을 건넨 방식', 즉 사건의 핵심 변수에 관한 해당 인물의 진술이 검찰 조사 때와 달라지면서 '증언의 일관성'이 허물어진 셈이다. 검찰에겐 악재, 한 전 총리 측엔 호재일 공산이 크다. 곽 전 사장이 증언하자 방청석이 술렁였다. 곳곳에서 '표적수사' 운운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와 경비대원들이 제지에 나섰고, 재판장이 질서유지를 당부하며 "별도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주변인들 진술도 '못 봤다' 투성 = 주변인물들의 증언도 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찬에 동석했다는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15일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 전 총리가 '청탁' 취지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못 들었다"면서 "청탁한 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둘만 있기를 청한 것도 못 봤다"고 했다.


한 전 총리 경호원 또한 '돈을 주고받거나 챙길 시간은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오찬 때 경호업무를 맡았던 경찰공무원 윤모씨는 18일 오후 공판에서 "오찬장 문이 열리면 열린 문을 잡고 안의 상황이 어떤지 계속 살핀다"고 밝혔다. ' 이어 "문을 잡고 있으면 의도적으로 보지 않아도 안의 상황이 어떤지 보인다"면서 "문을 잡으면서 총리님의 위치를 확인하고 안의 상황이 어떤지 봐야 하기 때문에 내부를 빨리 살펴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골프채 카드'도 그저 그렇게.. = 검찰은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냈고 총리공관 오찬(2006년) 전에도 금품이 오간 적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곽 전 사장이 2002년에 한 전 총리에게 약1000만원 가량의 골프용품을 선물했다고 주장해왔다. 한 전 총리 측은 재판 초 "모자 하나만 받았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곽 전 사장이 골프용품을 구입했다는 용품점 전무 이 모씨는 17일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두 분(곽 전 사장과 한 전 총리)이 매장을 돌며 골프용품을 고르는 걸 보진 못했다"면서 "일반적으로 제품 안내는 매장직원들이 하기 때문에 저는 두 분께 짧게 인사만하고 자리를 떠났다 "고 말했다.


또 "곽 전 사장이 구입한 용품 대금을 누가 결제했는지, 용품을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주고받았다는 물건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검찰의 카드 또한 별다른 힘을 못 쓰게 돼버렸다.


◆흔들리는 공소사실..법원, 급기야 '변경' 권고 = 정리하자면,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뒤바뀌면서 '엉뚱한' 내용으로 기소를 한 셈이 돼버렸고, 주변인물들 증언도 검찰에 불리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법원이 직접 공소사실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공판 때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특정돼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에 공소장 변경 검토를 권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라 방어를 해야 한다. 오찬장 테이블 위에 놓고 나왔을 수도, 비서 등을 통해 건네줬을 수도 있는데 이걸 모두 '건네줬다'고 하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는다"고 권고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담당 재판부가 사건의 추이와 관련자들의 증언 분위기 등 모든 면을 종합해서 나름의 판단을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에 유리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형사법상 뚜렷한 물증이 없는 경우 관련인 진술의 일관성이나 신빙성이 절대적 판단 기준인 건 사실이다. 곽 전 사장 진술이 검찰 조사 때와 완전히 달라진 점 등이 재판부에게도 중요한 고려요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인 서울지역 한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 및 기소 자체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핵심 증인의 검찰 진술 내용도 유지시키지 못하는 건 수사 자체가 무리였고, 기소도 억지스러웠다는 방증"이라면서 "수사 때 검사와 곽 전 사장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소 무리하게 짜맞춘 인상을 지울 순 없다. '표적수사', '흠집내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법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관련인들 진술이 다소 왔다갔다하는 점이 있긴 하지만 결과를 속단할 순 없지 않겠느냐"면서 "곽 전 사장의 돈 전달 의지나 돈을 놔두고 나온 행위 자체도 의미가 없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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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은 기자 jeun@asiae.co.kr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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