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아침 일찍부터 심상치 않았다. 열어놓은 내 방 창문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피비린내가 밀려들어와 내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기 위해 대문을 열었을 때에는 눈앞에 펼쳐진 소름끼치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길거리에는 피로 보이는 붉은 색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고, 곳곳에는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내장 같은 것들이 너저분하게 굴러다녔다.
'무슨 일일까? 살인 사건이라도 난 건가?' 두려움이 몰려왔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는 이내 나의 무지함에 머쓱해져 버렸다. 이 날이 바로 이슬람력 'Dhul Hijja'의 10번 째 날인 '이드 알 아드하'가 시작된 날이기에 벌어진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드 알 아드하'는 일명 '희생제'다. 이브라힘이 신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인 이삭을 희생해 제물로 바치려 했던 것을 기념한 날로, 전 세계 무슬림에게는 어떤 날보다도 중요한 날로 여겨지고 있다.
이 희생제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으니, 바로 희생제 첫날 가축을 잡는 것이다. 가축은 태생한지 1년 이상 된 것이어야 하며, 양· 낙타· 염소· 소 등을 주로 제물로 쓴다. 일반 가정이라도 아들을 가진 집이라면 이날 반드시 가축을 잡아야 한다. 물론, 도축은 직접 하지 않고, 전문 도축가에게 맡긴다. 도축을 할 때에는 특별한 이슬람식 도축법이 사용된다. 가축을 도축하는 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아랍어로 비스밀라히 라흐멘 라힘)"라고 외친 뒤 칼로 동물의 목을 그어 몸의 피가 모두 자연히 빠져나가게 한다. 무슬림들은 이것이 동물을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는 방법이며, 피가 모두 빠져나감으로 인해 인체에 유해한 박테리아균을 멸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곧장 친구를 불러 카이로의 유명한 번화가 중 하나인 '타흐리르 거리'로 향했다.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동물을 죽이는 모습이 잔인할 수 있지만, 이런 무슬림 행사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는 생각이 더 컸다. 운 좋게도(?) 아직 도축이 다 끝나지 않아 떡대 좋은 장정 여럿이 모여 죽은 소의 내장을 꺼내고 가죽까지 벗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끝까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주변엔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인 여자들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나와 친구는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다는 절박함(?)에 두 눈을 치켜뜨고 끝까지 지켜봤다. 내장과 가죽, 뼈를 모두 치우고 바닥에 피만 남았을 때가 되서야 '뭔가 해냈다'는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타흐리르 거리는 학교를 가지 않은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이집트의 경우 올해 희생제는 11월26일부터 30일까지 4일 연휴였지만, 학생들은 신종플루로 인해 학교가 휴교하면서 열흘 동안 쉬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에게 말을 걸며, 이번 연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등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새 옷을 차려입고, 한껏 자태를 뽐냈다. 서로 덕담도 주고받았다. 우리나라 명절 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요즈음에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로도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집트에는 다른 나라의 명절과는 다른, 독특한 전통과 풍습을 지닌 명절들이 꽤 있다. 희생제를 비롯해 샴문나씸· 라마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명절들을 통해 이슬람만의 독특한 문화를 체득하는 것은 물론, 이 나라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집트만의 색다른 '그들만의 명절'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진흙속 진주'를 발견한 듯한 짜릿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최소연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최소연 씨는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에 재학 중으로, 현재 코트라 카이로 KBC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여러 종교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세계적인 중동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당찬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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