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녹십자 오너일가의 자녀들이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수십억 원대의 자금을 마련했다. 사용용도를 둘러싼 궁금증을 낳고 있다.
故 허영섭 회장 타계에도 불구, 단기적 경영권 분쟁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렇다고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어서, 이번 움직임을 둘러싼 갖가지 관측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녹십자 그룹의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는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 허서연, 허서희 씨가 자신이 보유한 이 회사 주식 각 4만 3000주, 총 8만 6000주를 한국금융증권에 담보로 제공하고 일반자금을 대출받았다고 8일 공시했다. 서연, 서희 자매는 지난달 15일 작고한 허영섭 회장의 동생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의 딸이다.
회사 측은 빌린 자금의 규모와 기간, 이율 및 사용처 등은 공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식시가의 50% 수준에서 대출이 이루어짐을 감안하면, 8일 종가(8만 6000원) 기준 대출금은 약 37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보고 있다. 이에 대해 녹십자홀딩스 공시담당 관계자는 "개인적인 이유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자매의 나이가 31, 22세로 어린 편임을 감안하면, 개인적 이유라고 판단하기엔 대출금액이 너무 크다는 게 해석의 빌미를 남긴다.
사안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대규모 자금마련은 주식매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민감한 시기에 이루어진 일인 만큼 경영권 분쟁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방패막이 설치 작업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현 구도로 볼 때 녹십자 일가는 크게 4개 세력으로 나뉜다. 故 허 회장(창업주 차남)의 미망인과 자녀들이 한 축이며, 허일섭(5남) 현 녹십자 회장 일가가 두 번째다.
그 외 나머지 창업주 2세들 즉 허정섭(1남) 한일시멘트 명예회장 일가, 허동섭(3남) 한일시멘트 회장 일가, 허남섭(4남) 서울랜드 회장 일가가 있으며, 故 허 회장의 장남으로 최근 어머니를 상대로 유언효력정지 가처분소송을 낸 허성수 씨가 있다.
지분구조는 어느 한 쪽이 나머지를 압도하는 수준이 아니다. 故 허 회장 일가는 녹십자홀딩스 지분의 17.61%(우선주 제외)를 보유하고 있으며, 허일섭 회장 쪽은 10.47%다.
반면 나머지 일가 구성원들의 지분을 합하면 14.9%에 달해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세를 합하는냐에 따라 녹십자홀딩스의 주인이 언제고 바뀔 수 있는 구조다.
때문에 이번 3남 자녀들의 자금마련이 실제 녹십자홀딩스 지분 인수로 이어지고, 나머지 일가 구성원들의 유사한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녹십자 지배구도를 둘러싼 변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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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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