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C";$title="";$txt="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온 비오비타. 왼쪽이 1959년 첫 발매된 제품";$size="510,208,0";$no="2009101214064105827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우리나라 최초의 유산균제 '비오비타'가 50번 째 생일을 맞았다. 1959년 10월 첫 선을 보인 비오비타는 순수 우리 기술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활성유산균제다.
비오비타는 일동제약 창업주 故 윤용구 회장이 유산균 연구결과에 관심을 보이면서 개발이 구체화 됐다.
하지만 당시엔 양질의 유산균을 대량으로 배양하는 기술이 부족해, 윤 회장의 사택 뒤뜰에서 주로 실험이 진행됐다고 한다. 유산균 배양은 서울약대나 중앙공업연구소 시설을 빌려 사용했다.
2년에 걸친 험난한 과정 끝에 활성유산균의 대량 배양에 성공하여 1959년 8월 특허를 등록하고 같은 해 10월 발매에 들어갔다.
최초 발매된 비오비타는, 과립형태인 지금과는 달리 정제, 산제, 과립제 등 다양한 형태였고 당시 가격은 3백정, 60g 1병에 600환이었다.
비오비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화 영양 정장제로 자리 잡았지만, 발매 당시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 건조 기술이 미흡해 균이 모두 사멸되기도 했고, 배양 과정에서 다른 잡균이 침투하는 바람에 내용물을 모두 버리기 일쑤였다.
1960년대 후반, 비오비타에 사용하는 유산균을 활성 유포자성 유산균(락토바실루스 스포로게네스, Lactobacillus Sporogenes)으로 개선하면서 품질 혁신을 가져왔다.
독특한 마케팅 전략도 성장에 한 몫 했다. 일동제약 현 회장인 이금기 회장은 당시 영업부장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광고와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광고에 육아 정보 시리즈를 연재하기도 했고, 여성 잡지와 함께 육아 일기 공모전을 펼쳤다. 당시 일동제약 본사에는 이런 광고에 감동을 받은 고객들의 감사 편지가 쇄도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1960~70년대 약 10년 동안엔 동양방송과 함께 베이비 콘테스트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TV에서 아버지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은 당시로서는 이채로운 장면이었으며 이는 핵가족으로 변모해가는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마케팅 전략 덕분으로, 매출은 급성장을 거듭해 1996년 시장점유율 33.9%의 톱 브랜드로 우뚝 섰다.
지난 50년간 판매된 비오비타는 대략 6700만 병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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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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