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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조선왕조 500년...한 많은 '父子'가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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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융건릉과 궁평낙조

옷깃엔 역사의 정기가...코끝엔 솔잎의 향기가...궁평항 낙조엔 감탄이...



9월로 들어서는 이맘때가 되면 난감하다. 긴팔은 덥고 반팔은 춥다. 낮에는 햇빛의 강렬한 생명력이 살아 있지만, 아침ㆍ저녁으론 선뜻선뜻하다. 언제 쏟아질지 모를 빗방울도 골칫거리다. 어디로 가야 할지 주말 나들이 길이 망설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럴 때 더워도 좋고 서늘해도 좋은 곳, 해나도 좋고 비 와도 좋은 곳으로 떠나는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조선왕릉 같은 곳 말이다. 해나면 왕릉의 둘러싼 숲에서 부는 선들선들 바람에 온 몸이 상쾌하지, 비 오면 똑똑 나뭇잎 끝 낙숫물 소리 들으며 역사속 한 풍경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바로 양수겸장 아닌가.


최근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새삼 주목도 받고 있다.

조선왕릉은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무려 519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역대 왕뿐만 아니라 왕비에 대한 왕릉이 모두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특별하다.


우리나라에는 총 40기의 왕릉(왕과 왕비 추존된 왕비의 무덤)과 13기의 원(왕세자와 왕세자비)이 현존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비운의 삶을 살다간 사도세자와 그의 아들 정조의 '효'를 느껴 볼 수 있는 융건릉 여행은 특별함이 묻어 난다.


◇사도세자에 대한 '효(孝)' 담은 화성 융건릉
지난 주말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자락에 단아하게 자리한 융건릉을 찾았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1000원이던 입장료가 무료다.


매표소를 지나 능역 안으로 발을 들여 놓자 역사의향기와 숲의 향기가 온 몸을 사로잡는다. 오른쪽으로 울창한 숲사이에 자리한 융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융릉(隆陵)은 조선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조(莊祖, 1735~1762)와 비(헌경황후, 1735~1815)의 합장릉이다.


장조는 이복형인 효장세자가 요절하고 영조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태어나 2세 때 왕세자에 책봉됐다.


어려서부터 영특해 직접 지은 시문을 신하들에게 나눠주기도하는 등 부왕을 대신해 정무에 임했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뒤주 속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영조는 28세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아들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시호를 사도(思悼)라 했다. '세자를 생각하며 추도한다'는 뜻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사도세자다.


원래 사도세자의 능은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에 있었다. 하지만 불행한 삶을 보낸 아버지를 늘 가슴 아파하던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1789년 수원(현재의 화성)의 화산으로 묘를 옮긴 후 현릉원(顯隆園, 나중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했다.


융릉 왼쪽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건릉으로 향했다. 바로 정조의 능이다. 생전에 선친의 묘 곁에 자신의 묘를 써달라 유언을 남겼고, 그에 따라 아버지 사도세자 옆에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소매가 젖도록 울고 재실에서 아버지와 영혼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눴던 정조의 효심이 가슴깊이 스며드는 것 같다.


능 입구에 홍살문이 서있고 신도, 어도와 장사각이 있다. 특히 장사각에는 사도세자를 떠 올리게 하는 뒤주가 자리잡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 생각에 젖게 한다.

능은 높은 언덕에 모셔져 있다. 상석과 망주석, 문인석과 무인석이 있으며 융릉에는 병풍석이 있고 난간석이 없는 대신 건릉에는 난간석이 있으나 병풍석이 없다. 혼유석에는 면마다 둥근 원을 그리고 매난국(梅蘭菊) 무늬를 새겼다.


능은 모두 서향이라 해질 녘의 분위기는 그만이다. 눈이 오면 또 다른 별천지를 보여주니 눈 내린 경치를 '융건백설(隆健白雪)'이라 해 화성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고 있다.


융건릉은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수령이 족히 백살이상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적송들이 쭉쭉 뻗어 왕릉을 호위하고 있다.


한 문화 해설사는 "이런 적송은 아무데서나 찾아볼 수 없으며 풍파 많은 역사를 견뎌낸 소나무"라며 "하늘을 가릴만큼 높다랗게 자란 저 소나무들을 단순히 큰 키로 이해할 수 없만 없다. 그 키에는 그 길이만큼의 세월의 깊이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능을 휘돌아 걷는 산책길은 상쾌하면서도 착찹하다. 스치는 한 줌의 바람결에도 애절한 사랑과 아버지를 하염없이 불렀을 그 아들의 눈물이 섞여 있는 것 같다.

◇궁평항 낙조에 사도세자의 한 씻어 보내고
융건릉을 나와 서해바다를 끼고 있는 궁평항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질 무렵 이곳에 도착하면 화성 8경의 하나인 궁평 낙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융건릉에서 느낀 애절한 마음을 떨어지는 낙조에 묻어 훌 훌 털어버리기에 이보다 좋은 코스는 없을 것 같다.


서해안 궁평항 부근 어디에서도 낙조는 볼 수 있지만 서신면 바닷가에 자리한 해솔마을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특별하다. 건너편 태안반도와 주변 섬에 걸린 저녁 햇살과 수평선의 불빛이 장관이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 노을 질 때면 바다와 하늘이 온통 붉게 변해 황홀경을 연출한다.

또 해안에는 길이 2km, 폭 50m 백사장이 있고 백사장 뒤쪽에 100년 이상된 해송 500여그루가 있어 가을산책길로도 그만이다.


최근 궁평항에는 수도권에서 최초로 피싱피어(Fishing Pier)가 설치돼 인기를 끌고 있다. 길이는 193m로 바다 가운데까지 목재다리를 놓아 낚시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다목적시설이다.


서울에서 온 이준모(39)씨는 "아이들과 갯벌에서 조개 잡고, 피싱피어에선 바다낚시를 하고, 아름다운 낙조를 즐길 수 있어 서울근교 여행으로 그만"이라고 자랑한다.


화성=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 신갈IC를 나와 50번도로 타고 가다 팔곡IC에서 서해안 고속도로 비봉IC를 나와 306번 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융릉관리소(031)222-0142
△볼거리=아이들과 함께라면 제암리 삼일운동순국기념탑과 순국선열합동묘를 둘러볼 만하다. 송산면 고정리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에서 공룡알 화석지도 있다. 제부도도 추천할만하다.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바닷길은 하루에 2번 열린다. 물 때를 잘 알아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최근 국제 요트대회가 열린 전곡항도 가볼만 하다. 또 궁평항 부근에 있는 백미리 어촌마을에서는 갯벌과 낚시 체험을 할 수 있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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