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사단 백두대대 체험기
1998년 9월 2일 GOP 백두대대 1소초. 경계병 2명은 야간경계 근무를 서다 북한강에서 마치 침투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를 발견한다. 수영을 하듯 남한쪽으로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하자 장병은 '선조치 후보고' 개념에 따라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발사된 총알은 K-2 예광탄 5발. 다섯발 모두 이 물체에 맞았다. 두 장병은 소초에 보고후 '사체' 인양에 나섰다. 확인결과 일주일전 폭우에 익사한 북한군 사체였다. 철책전방에 움직이는 물체는 모두 적으로 간주해 즉각 조치한 사례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이 시작된 지난 17일 GOP부대중 가장 험난하기로 소문난 21사단 백두산부대 백두대대(대대장 이철화중령. 육사 46기)를 찾았다.
강원도 양구군에서 출발한 군용 지프차는 2시간 40분간 비포장 언덕길을 내달렸다. 민통선을 넘어서자 한낮기온이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는 어느새 사라졌고,차는 자욱한 구름 사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포장길을 1시간 40분가량 가니 조그만한 삼거리에 장승이 보였다.
백두대대에 근무했던 장병들이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대대장도 취임후 처음 하는 일이 장승에 고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몇 개의 초소를 지나다보니 등대처럼 서있는 GP(휴전선 감시 초소.Guard Post)가 눈에 들어오고 GP로 통하는 '대통문'이 눈에 들어왔다.
소초에 도착했을 때는 안주석 소초장(소위. 육사 65기)의 지시에 따라 군장검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경계근무 전 필수절차였다. 기자도 투입됐다. 군장검사는 당일 근무투입조가 모여 작전준비, 장병건강상태, 감시장비, 작전시 유의사항 등을 점검받고 근무시간을 재확인하는 절차다. 장병들은 각자 대검, 수류탄과 실탄, 야간투시경 등을 지급받았다. 실탄과 수류탄을 받은 장병들의 얼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해발 1064m높이의 산정상 날씨는 섭씨 18도로 늦가을처럼 싸늘하게 느껴졌다. 옷을 더 챙겨입고 초소로 향했다. 한겨울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1개 소초당 4개 초소를 담당하며 장병들은 일정시간마다 옮기며 2인1조로 경계근무를 선다.
철책은 3중으로 돼 있었다.남쪽의 철책은 남책, 북쪽은 북책, 가운데를 중책이라고 했다. 북책에는 대인지뢰인 클레이모어(claymore)가 설치돼 있었다.
남책에는 하얀색 페인트로 절반이 칠해져있는 청각석과, 흔적석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침투기습을 대비해 설치해 놓은 것이다.여기가 최전방임을 실감나게 하는 증거물이었다.등골이 서늘해졌다. 초소에서 전방을 바라보며 서 있기를 30분정도 했을까? 철책에 5m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경계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155마일 끝없이 늘어선 철색선이 일제히 등이 켜지자 그야말로 장관을 이뤘다.
같이 경계근무에 나선 이영민 병장은 “밤낮이 바뀌고 휴일이 없어 때로는 힘들지만 최전선에서 이런한 광경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다시 초소를 옮겼다. 경계를 하느라 앞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데 등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알 수 없는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 끝이 쭈뼛해지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야생멧돼지였다.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자기들만이 아는 길로 무리져 옮겨다닌다고 했다.
식사 때가 되면 장병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려 부대근처까지 하루 세번 어김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지막 초소로 이동하는 중간에 일명 '맥도널드 계단'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다. 산 고개 두 개에 걸쳐 있으며 계단 수만 1000여개에 이른다.숨이 턱에 찼다.
초소근무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별빛과 환하게 켜진 전등 불빛이루는 장관에 빠져들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멀리 보이는 북한군의 초소에는 14.5m 고사총이 남한군 초소를 겨냥하고 있었다.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5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소초에 돌아오니 계란 프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속이 출출한 야간근무 장병을 위해 취사병이 마련한 특별식이었다.
소초 전 장병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정민재 상병은 “혼자서 음식을 하다보니 지정된 시간에 3~4가지 음식은 기본으로 한다”면서 “장병들이 뭘 좋아하는지까지 속속들이 안다”고 웃음을 지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근무시간에 본 별빛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다 눈을 뜨니 다음날 새벽 6시. 점호를 마치고 나니 기본구급법, 위험예지훈련 등 훈련이 시작됐다. 비근무자일 경우에도 항상 작전근무를 서기 때문에 훈련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소대장의 설명이었다. 24시간 긴장감이 맴도는 GOP. 이들이 있어 국민들이 오늘도 편히 쉴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사진제공=육군 21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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