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정국구상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퇴파동 속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지난달 중순 이른바 근원적 처방을 화두로 내놓고 정국을 주도해왔던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의 강화를 선언하고 1년 6개월을 끌어온 재산기부 문제도 마침표를 찍었다.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4월 재보선 패배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수세국면에서 벗어나 집권 2기 국정운영의 주도권 장악이 예상됐다. 특히 유럽 3개국 순방을 통해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최종 타결을 선언하는 등 호재도 잇따랐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각과 청와대에 대한 인적쇄신 그리고 8.15 광복절에 발표될 대국민 메시지 등이었다. 하지만 귀국하자마자 터진 천성관 후보자의 전격 사퇴로 이 대통령의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천성관 사퇴파동 또다시 강부자 논란=천 후보자의 사퇴는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또다시 건드렸다.
역대 대선 최대 압승을 거뒀던 이 대통령이 정권 출범 이후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역시 인사문제였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지만 이 대통령은 인사가 망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 또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인맥)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은 현 정부의 인사난맥상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사에서는 충청 출신 인사들을 전진 배치하는 파격을 선택했다. 결과는 대실패로 귀결됐다.
천 후보자가 13일 국회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이후 하룻만에 자진 사퇴한 것. 제기된 의혹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물론 증여세 탈루,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강남 고가 아파트 구입, 부인의 명품쇼핑, 아들의 호화결혼식 논란 등의 도덕성 시비에 따라 여론은 악화돼갔다. 정권 출범 초 강부자 정권이라는 비판이 되살아날 정도였다.
이 대통령이 천 후보자의 사의를 즉각 수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천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가 예상 외로 심각한 데다가 한나라당은 물론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교체 불가피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
◆도마 위에 오른 靑 인사검증시스템=천 후보자의 사퇴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타격은 너무 크다.
검찰총장은 이 대통령이 그동안 줄곧 강조한 법질서 확립을 최전선에서 지휘할 책임자다. 하지만 여론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각종 의혹으로 사퇴하면서 이 대통령은 체면을 구겼다. 또한 이 대통령은 재산기부를 실천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했지만 청와대가 쇄신인사라고 자랑해왔던 검찰총장 후보자는 의혹투성이였기 때문 .
이 때문에 과연 현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는 그동안 인사와 관련, 상시 검증시스템을 구축해왔다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이번 파문으로 볼 때 청와대의 장담은 허언은 됐다.
이때문에 민주당 등 야당의 공세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책임지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의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상적인 인사검증 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을 일"이라면서 이번 인사검증을 주도한 청와대 민정라인의 전면 교체와 책임론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비선라인의 낙점의혹까지 거론되고 있다. 어느 경우이든 향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청와대는 이번 사퇴와 관련,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후임자 선정작업에 들어가 파장을 최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으로는 천 후보자 지명 당시 거론됐던 권재진 전 서울고검장, 문성우 전 대검 차장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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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기자 skz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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