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크라이슬러의 파산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가 급박한 혼전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 틈을 노려 피아트는 제너럴 모터스(GM)의 현지부문인 독일 오펠을 인수하는 등 생산규모를 두배이상 늘리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포드의 경우 구제금융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자동차업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며 주가도 급상승하고 있다.
◆ 美재무부, 크라이슬러 파산 준비중 - NYT
미국 재무부는 최악의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3대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에 대한 파산신청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이 문제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인사를 인용,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청 시기는 빠르면 다음 주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부는 미국자동차노조(UAW) 측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하더라도 은퇴자 연금 및 의료 보험 혜택은 보호할 것이라고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NYT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피아트가 파산 보호신청 하에서 크라이슬러와의 제휴를 계속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따라서 남아있는 유일한 문제는 크라이슬러 채권단과의 채무 출자전환 협상이 된다. 채권단이 보유한 69억달러 수준의 채권에 대해 정부측은 채권총액의 22%에 해당하는 15억달러의 보상과 5%의 크라이슬러 주식 지분을 제공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 초 채권단은 채권총액의 65%에 해당하는 45억달러를 보상하고 40%의 크라이슬러 주식 지분을 요구했었다.
만약 정부와 크라이슬러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심각한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채권단 측은 이미 공장과 브랜드, 장비 등의 자산을 담보로 확보해 두고 있어 정부의 구제금융 공적자금보다 선순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라이슬러의 파산 신청 가능성은 극도의 매출 부진에 시달리던 지난해 가을부터 계속 제기돼 왔다. 이와 함께 재무부는 또 GM의 파산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크라이슬러가 파산 신청을 하게 되면 이는 GM의 파산 조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크라이슬러의 구조조정 최종 시한은 이달 말까지로 불과 1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재무부가 크라이슬러의 파산보호 신청 하에서 자금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가정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한편 이에 대해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재무부가 파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채권단에게 압력을 넣어 부채를 축소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NYT의 보도가 나온 뒤 미 정부 관계자는 "이같은 협상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내용은 가정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뒤 "정부는 모든 내용을 검토하고 있지만 크라이슬러와 피아트간 제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무부 대변인은 논평을 거부했다.
◆ 피아트, GM 독일부문 오펠 인수노린다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가 미국 GM 독일 현지부문인 오펠의 지분 인수를 노리고 있다고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보도했다.
이를 통해 피아트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다는 야심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마르치오네 CEO는 이날 "현재 발표할 만한 사항은 없다"며 "우리는 전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와 대화창구가 항상 열려있으며 누구와도 대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트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독일 칼테오도르 주 구텐베르크 경제부 장관을 베를린에서 만나 이같은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아트와 오펠 사이의 인수 및 제휴는 미국 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 결과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피아트는 이를 위해 수개월전부터 GM과도 전략적 제휴 협상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GM 내부적으로 소위 '피닉스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전략은 GM이 피아트와의 제휴를 통해 유럽과 남미시장에서 생산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아트는 현재 연간 220만대 수준인 자동차 생산규모를 500~600만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 포드 "우린 달라"..구제금융 필요없다
한편 17년래 최악의 분기 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포드자동차는 정부의 구제금융이 없이도 생존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포드는 지난해 약 900만대의 자동차 판매를 기록하고 있으며 비용절감을 통해 미국의 주요 자동차업체로는 유일하게 정부 지원없이 생존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포드의 1분기 순손실 예상치는 32억달러(주당 1.33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포드는 구제금융 자금지원이나 파산 보호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날 주가도 4.91%가 올라 주당 4.49달러 수준까지 치솟은 상태다. 지난 3월 4일 포드 주식이 1.87달러 수준에서 거래된 것에 비하면 무려 240%가 폭등한 상태다. 반면 파산 보호신청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는 GM은 이날 4.14%가 더 빠진 1.62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3월 4일 종가였던 2.20달러에 비해서도 26%대 하락이다.
프로페시 펀드의 제프리 스파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포드는 GM이나 크라이슬러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며 "소비자들은 정부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부도 위기에 내몰려 있는 회사에서 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노종빈 기자 unti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